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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참으로 놀라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손전화에 진동이 울리고 작은 창에 번호가 뜹니다. 오전 내내 부재중 전화표시로 여러 번 남겨져 있는 전화번호였습니다. 누굴까? 궁금해 하며 전화를 받았지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임아무개씨 맞습니껴?"
"네, 누구신가요?"
"백령도에서 근무했던 아무개 맞지예?"
"네, 그런데요."
"선배님, 네 종한입니더. 기억나십니까?"
"누구? 손종한이, 마산 살던 종한이?"
"넷. 지 종한입니더."


▲ 해병대시절의 전우들, 맨 앞에 사탕을 물고 있는 것이 필자, 바로 뒤에 눈이 큰 사람이 전화를 한 후임, 그리고 왼쪽 침상에서 고개를 내민 길죽한 얼굴이 고맙게도 내 전화 번호를 알아낸 후임이다.
ⓒ 임흥재
물경 20여 년의 시간의 터울을 훌쩍 뛰어넘어 아련한 추억 속의 후배는 그렇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 백령도. 그 전화 한 통은, 미당의 싯구처럼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인 백령도의 바닷가에 저를 세웠습니다. 짙은 해무(海霧)와 사나운 파도 그리고 적막한 초소, 이따금씩 들리는 잡음 섞인 무전기 속에서 젊은 날의 내가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불혹의 나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짧게 깍은 머리, 검게 그을린 얼굴, 후줄근한 군복에 단독군장을 한 젊은이가 흔들리는 호롱불 밑에서 상황일지를 적고 있습니다. 옆에서는 제대를 앞 둔 말년 병장이 졸린 잠에 연신 고개방아를 찢고 있습니다. 밤은 깊은 잠에 취했고 전선의 이방인들만이 잠들지 못한 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 백령도 물개바위 앞 해안가의 분초장 시절의 기자와 선임 박태호 하사, 보고싶은 선임 중에 한 명이다.
ⓒ 임흥재
그런 대로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해안을 벗어나 예비대로의 귀환이 결정되는 날부터는 다시 지옥을 경험해야 합니다. 하침,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나 소위 갈고리 계급장을 단 해병들의 내무반입니다. 이곳의 율법은 단 하나이지요. '기수', 그것이 곧 법이자 모든 것입니다. 기수에 의해 존재가치가 정해지고 그 존재의 역할과 재량이 규정되어져 있습니다. 배움과 연령과 출신 그리고 능력 등, 이 모든 것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지요.

아래 기수는 위 기수의 노예로 살도록 율법은 정해져 있고 위 기수는 군림하도록 시스템은 완비되어 있습니다. 합리와 정당은 개에게나 어울리는 동물적 이성이요 굴종과 이유불문이 인간적 본능인 이상한 세상이 그곳입니다. 밤이면 정신무장 정신개조라는 지극히 형이상학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폭력과 구타라는 아주아주 형이하학적 수단이 광란의 축제를 엽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만났습니다. 선배기수에게 제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제게는 후배기수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임관하여 12시간의 지겨운 항해 끝에 백령도에 내리고 불한당 같은 선배들만이 우글거리는 부대에 배치를 받았던 그 날의 불안과 공포처럼 저 역시 그에게는 불안과 공포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와의 첫 대면에서 제가 기억하는 것은 우선 큰 덩치와 그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인상과 커다란 눈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가장 단순한 사고와 가장 단순한 본능만이 필요한 그곳에서 가장 단순한 절차를 거치며 함께 살게 된 것이지요.

지금에 와서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은 흐릿한 몽타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세월은 제게서 기억이란 것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습니다. 겨우 기억하는 것은 그가 저와 같은 일반하사(병역의무만 마치는)였으므로 조금은 각별한 느낌을 가졌던 것도 같습니다. 고약한 선배들 중 몇몇은 군번순 '집합'을 통해 (직업군인으로 입대한) 후배가 제 앞에 서는 더러운 자괴감을 심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고 빨간 명찰을 먼저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저는 그에게 늘 황제처럼 군림하면 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때로는 저 역시 제가 받은 그 폭력을 고스란히 돌려준 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대에서 가장 기합 빠진 제가 후배들에게 기합이 빠졌다며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장 훈시와 굴종하는 삶을 무수히 강요하기도 하였을 것이지요. 그런 그와 또 다른 그의 동기가 제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 동기 중 짝꿍이었던 이순철은 곱상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거친 젊은 날을 살았던 특이한 친구였다. 연락이 안 되는 안타까운 동기이다.
ⓒ 임흥재
전화는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제게 젊은 날의 한 때를 추억하도록 하였습니다. 전화 속에는 그립고 또는 아직 미움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들어 있습니다. 성질 더러운 작전하사며 인간성 좋았던 화기반장이며 '빠진' 후배(기자) 덕분에 선배들에게 고생이 심했던 1기 선임들의 이름이 들려옵니다. 기억은 희미한 대로 차츰차츰 시간의 간격을 좁혀오고 가까워진 간격과는 반비례하여 그리움과 설렘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갑니다.

"있지예, 4월1일 우리 만나기로 했슴니더. 선배님도 와야지예."
"언제? 무슨 요일이지?"
"담주 토요일 아닙니꺼, 오실 거지예."
"글쎄, 토요일은 좀 그런데."
"뭔 소린교, 선배님들이 후배들 졸라 고롭혔으니 이제는 함 고롬을 당해야 안 되것습니꺼."
"이런 기합 빠진 놈."
"하하, 함 봅시다. 부모님 돌아가신 것 말고는 무조건 와야 합니더, 알았지예."
"알았다, 알았어. 어디?"


▲ 군대 시절의 쫄병,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재미난 친구였다.
ⓒ 임흥재
예정되어 있는 산행이 있어 머뭇거린 대답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보고 싶은 그리움은 어느새 그 모임에 가도록 내 마음을 정해버렸습니다. 책장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먼지 수북한 앨범 속에서 몇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리움은 이제 사무치는 지경에 이릅니다. 저도 가난하고 군대도 가난하고 나라도 가난했던 그 시절, 더욱이 궁벽한 백령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사진이래야 서너 장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 전화 속의 그들을 발견한 것이지요.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사진 속의 쫄병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함께 발견한 훈련소 시절의 내 짝꿍은 특히나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나온 해병대의 끈끈한 정은 유별난 것이지요. 기수가 모든 것을 규정하듯 또한 기수는 모든 것을 계속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특별한 것이기도 합니다. 동기회를 꾸리고 오래도록 회장을 맡고 있는 지금에도 연락이 안 되는 몇몇 동기들에 대한 아쉬움은 동기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골수에 사무칩니다.

사진은 그런 사무침으로 제게 다가옵니다. 짙은 눈썹과 쌍꺼풀 진 눈, 각진 얼굴이 배우 뺨치던 선배가 사진 속에서 군화 브러시를 칫솔삼아 이를 닦는 포즈를 보며 그의 여동생 얼굴이 떠오릅니다. 워낙에 인물 좋은 집안인지라 하침 최고의 선망이었던 그녀의 얼굴만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넘치는 젊은 날의 욕정 때문일까요? 혼자 실소합니다. 내친 김에 서랍을 뒤져 오래된 상자를 찾아냅니다. 편지들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파일럿의 아내로 나이든 그 시절의 문학소녀가 거기에 있고 남의 아내가 된 여대생의 연서도 들어 있습니다.

▲ 배우 뺨치는 미남인 이재환 선임이 군화 터는 브러쉬를 가지고 칫솔질하는 장난스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동생이 예뻐서 줄 서는 선·후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임흥재
다른 전선의 후배와 친구에게서 온 편지들과 약 오르라며 그날 헌팅한 계집애 이야기를 과장하여 늘어놓은 못된 친구들의 치기가 고개를 듭니다. 가끔씩 적었던 일기에는 내 젊은 날의 각오와 미사여구로 각색한 방종이 흩어져 있기도 합니다. 지금은 고속 카페리가 취항하여 가까워진 곳이지만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의 군생활은 가보지 않은 이에게 과장과 거짓을 섞어 환상을 심어주기에 적합한 소재였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의 편지에서 드러나는 일상에 괜시리 얼굴이 붉어집니다.

사곶해안이며 환상의 절경인 두무진이며 내가 분초장으로 있던 해안의 물개바위며, 상자 속에는 온통 그리움으로 물든 젊은 날의 나와 나의 사람들이 내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그 먼 데까지 면회를 와 심한 파도에 일주일 넘게 군부대를 체험해야 했던 그 시절의 연인은 어긋난 운명 앞에서 철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 백령도! 아, 그립고 애타는 나의 젊은 날이여!... 제대를 앞둔 어느 날, 나를 따라 입대했던 동기이자 친구에게 썼던 그 시절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기억하겠지? 진해훈련소로 향하던 날의 우리 모습 말이야... 우리 한번 멋진 인생을 살아보자. 감미롭고 달콤한 사랑에도 흠뻑 취해보고 소위 그 세속적인 출세라는 것도 해보고 실컷 방탕하다가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하는 때에는 다시 피땀 흘려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자꾸나."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런 삶을 살았을까? 며칠 후에 만날 사람들은 또 그렇게 살았을까? 보고 싶다. 보고 싶다.

▲ 선임 중의 한 명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김우택이던가? 식당에서 찍은 사진인듯.
ⓒ 임흥재

덧붙이는 글 | 4월 1일 모임이 끝나면 20여 년이 지난 백령도 전우들의 시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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