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30일 낮 12시 30분]
30일 오전 9시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수륙양용 장갑차 20여대가 푸른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후 이들 장갑차들은 2km에 이르는 만리포 해수욕장 백사장으로 굉음을 내며 진입한다. 장갑차는 육지에 닿자마자 가상 위협포를 발사한다.
육지에 닿은 장갑차의 뒷문이 열리자 완전 무장한 한국군과 미군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온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합참의장을 비롯할 군 관계자 200여명은 박수를 친다. 한미 군인들의 해상 침투훈련을 지켜보는 이들의 얼굴은 흐뭇하다. 그러나 갑자기 이들은 한 곳을 바라보며 얼굴이 굳어졌다.
"한반도 평화체제 역행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하라!"
"대북 선제 공격 연습하는 군사훈련 중단하라!"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과 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관계자 20여명이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연합전시증원연습(RSOI) 및 독수리연습(FE) 현장에 기습 진입한 것이다. 이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역행하는 RSOI & FE 즉각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펼쳐들고 군사 훈련 현장에서 기습적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특히 이들은 바다에서 육지로 진입하는 미군 장갑차 한 대를 맨몸으로 막았다. 이들은 장갑차를 멈춰 세우고 "Yankee go Home!"(양키는 집에 가라), "Stop war Exercises!"(전쟁 훈련을 중단하라)를 외쳤다. 또 완전 군장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육지로 달려가는 미군의 옷을 붙잡기도 했다. 이어 미군 장갑차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의 종이와 꽃을 부착했다.
갑자기 군사 훈련을 제지당한 미군들은 장갑차에서 나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잠깐동안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기도 했다.
군사 훈련장에 진입한 시민단체 관계자 때문에 당황한 것은 한국 군 관계자들도 마찬가지. 흐뭇한 표정으로 지휘본부에서 한미 양군의 해안침투 훈련을 지켜보던 병사 및 장성들의 표정은 일순 일그러졌다. 지휘본부 여기 저기서 "저거 뭐야?", "뭐 하는 사람들이야?", "빨리 끌어내지 않고 뭐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군 쪽은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강제로 끌어내지 않았다. 대신 영관급 장교 몇 명이 시민단체 관계자들에게 "우리도 군사 훈련 모습을 보고 토의를 해야 한다, 서로 돕고 살자"며 "(앰프 소리를 키우고) 소란을 피우면 토의가 안 된다, 군사 훈련장에 진입한 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항의하며 해산을 '부탁'했다.
시민단체들의 군사 훈련장 진입 기자회견 및 시위는 오전 9시 50분께 까지 계속됐다. 이들은 수송정에 실려 육지로 진입하는 탱크를 막아서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탱크가 육지에 내리지 못했다.
만리포 해수욕장 위로는 군사 헬기의 저공비행이 이어졌다. 백사장 위에는 관광객 대신 장갑차 20여대가 도열했다. 그리고 푸른 바다에는 군함 몇 척이 떠 있었다. 한국과 미군 병사들은 완전 무장한 채 고함을 지르며 군사 훈련에 열중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들을 향해 "전쟁연습 중단하라!"고 외쳤다.
한국군 합참의장을 비롯한 미군 관계자들은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이들의 100m 뒤쪽에는 '리베라'라는 상호의 러브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러브호텔 옥상에는 대형 자유의 여신상 동상이 횃불을 들고 선 채 3월 30일 만리포 해수욕장의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