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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동물원에 있는 판다
상하이 동물원에 있는 판다 ⓒ 상하이 동물원
쓰촨성과 후난성, 티베트 동부의 고지대 등 중국의 극히 일부분에서만 서식하는 판다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진귀한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1800마리가 야생에서 살고 있으며, 동물원에서 보호받고 있는 판다는 180여 마리이다.

짝짓기 때를 제외하고는 깊은 대나무 숲에서 혼자 생활하는 독특한 습성 때문에, 동물학자들도 야생 그대로의 판다를 연구하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판다 서식지에 사냥꾼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원칙상 수출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판다를 외국에 보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대단한 호의의 표시이다. 일본과의 국교 회복, 장쩌민 주석의 미국 방문, 홍콩 반환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만 최대한의 축하를 표하기 위해 판다를 상대국에 선물하곤 했다.

판다 공방전

그런데 이 판다 선물을 둘러싸고, 최근 중국과 대만 사이에 가시 돋친 공방전이 오갔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5월, '제3차 국공합작'이라고도 불렸던 당시의 국민당 주석 렌쟌의 베이징 방문에서 비롯된다. 한때 중국의 지배권을 두고 치열하게 내전을 벌였던 공산당과 국민당의 고위 간부들이 대만 독립파의 고립과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다시 한 번 손을 맞잡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중국 당국은 대만에 한 쌍의 판다를 선물하기로 결정하고, 쓰촨성에 있는 우롱 판다 연구 센터에서 가장 우량한 종을 선택, 수컷을 투안투안으로, 암컷을 위엔위엔으로 이름 짓고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중국어로 투안위엔(團圓)은 '흩어졌던 가족의 재회'를 의미한다. 선의의 선물이라고는 하지만, '대만 독립 절대불가'와 '통일 달성'이란 암묵적 의지가 담겨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두고 대만 민진당의 총통 첸슈이벤은 중국을 향해 저열한 정치 프로파간다라고 맹비난했다. 중국이 진정으로 우호적인 양안 관계를 원한다면 대만으로 향해있는 미사일부터 철수시키고, 군사비에 쏟고 있는 막대한 예산을 야생 판다 보호를 위해 쓰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지난 3월 31일, 대만의 농업위원회는 국제동물보호법에 입각해 판다 수용이 불가능함을 공식 발표한다. 희귀 동물인 판다를 관리하기에는 대만 동물원의 준비가 부족하고, 야생 상태에서 그대로 사는 것이 판다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그럴 듯한 이유도 곁들여졌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대만의 결정에 중국 당국은 즉각 비난을 퍼부었다. 민진당과 첸수이벤이야말로 정치적 목적 때문에 대만인의 70%가 동의하는 판다 선물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이베이의 한 동물원에서는 작년부터 중국에서 파견된 판다 전문가를 중심으로 만반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던 참이었다.

표류하는 양안 관계

작년 4월 중국에서 '반국가분열법'이 통과된 이후, 중국은 대만과의 실질적인 관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해왔다. 여기에는 대만 농가의 주요 생산품인 과일을 무관세로 수입하거나, 대륙 여행 금지를 해제하는 등 대만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방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판다 선물 역시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2007년 국민투표 실시, 2008년 독립 선언이라는 야심찬 정치 프로그램이 있는 민진당과 첸슈이벤은 중국의 전향적인 조치에 사사건건 반발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작년 말 대만 기업의 중국대륙 진출과 자본 투자를 엄격히 제한한 데 이어, 급기야 올해 3월에는 '국가통일위원회' 활동을 전격 중지시켜 양안 관계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민당 정부 시절 대륙과의 통일 정책 개발을 전담하기 위해 신설된 이 위원회는 2000년 민진당으로 정권 교체 후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에 있긴 했지만 위원회 활동 자체를 중지시킨 것은 충격적이었다. 독립 선언 시, 무력행사를 경고했던 중국을 향한 일종의 도발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양안 관계가 단지 중국과 대만 간의 양자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대만의 위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던 것은 72년 닉슨과 마오쩌둥의 베이징 회담이었다. 당시 베이징으로 향하던 기내에서 닉슨이 손수 작성한 메모에는 '베트남-타이완'의 거래 내용이 담겨있다.

즉 당시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던 미국이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데 중국이 도와주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은 대만 대신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은밀한 빅딜은 성사되어 중국이 유엔의 상임이사국으로 등극하고, 대만은 순식간에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아시아의 고아'로 전락하고 만다.

이를 계기로 크게 고양되기 시작한 '타이완 내셔널리즘'은 급기야 2000년 '타이완의 아들'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첸수이벤의 정권 교체로 이어졌고, 힘겹게 연임에 성공한 그는 앞으로 남은 2년의 임기 안에 국민투표 실시와 헌법 개정, 즉 '중화민국'에서 '타이완 공화국'으로의 독립을 목표로 모험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중국과, 2008년까지 '급진적 탈중국화'을 목표로 하고 있는 대만. 양자의 충돌은 동아시아 화약고를 폭발시키는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중국을 내세우는 대만 독립 세력들이 현저하게 친미-친일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만 독립파들은 시위 현장에서 성조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일부는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기도 한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일본의 아소 외상은 최근 국회에서 대만을 '민주 국가'라고 지칭,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 역시 표면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는 있으나, 대만을 쉽게 포기할 리 없다. 대만은 여전히 대중국 외교에서 최고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예상되는 미국으로서, 대만은 중국의 앞바다에 365일, 24시간 떠있는 최적의 항공모함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만은 미국에서 수입한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양안 관계의 복잡한 역학 속에서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곧 미국 방문에 나선다. 정상회담을 둘러싼 양국 간의 신경전은 벌써 뜨겁다. 3월에는 양국의 인권 상황을 겨냥한 상호 비방전이 이어졌고, 후진타오 주석의 '국빈' 대우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회담에 앞서 미국은 일본과의 탄탄한 동맹 확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인도의 핵개발 인정 등, 워싱턴으로 향하는 후진타오 주석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뒤질세라 중국 역시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입장을 추궁하고, 러시아의 푸틴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튼튼한 연대를 과시하며, 후진타오를 맞이하는 부시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갈 곳 잃은 판다는 어디로?

표류하는 양안 관계처럼 투안투안과 위엔위엔도 갈 곳을 잃었다. 야생 속에서 유유히 살고 있던 두 마리의 판다가 별안간 인간사에 휘말려 지저분한 정치 공방으로 얼룩진 뒤, 목적지마저 상실한 것이다. 예정되었던 타이베이행은 기약 없는 미래로 연기되었다. 그렇다고 이미 10개월 동안 동물원에서 길든 판다를 다시 야생으로 보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 한다. 이래저래 인류(人類)라는 종은 지구상의 동물 중 가장 유순한 판다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만 모양이다.

두 마리의 판다, 그들의 이름은 투안위엔(團圓), '흩어졌던 가족의 재회'였다.

덧붙이는 글 | 중국 교민지 <코리아 타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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