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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싹싹 싹이 난다. 촉촉촉 촉을 내민다. 아니 불을 밝히듯 촉을 밝힌다. 촉촉한 봄비를 맞고 울쑥불쑥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이다. 쑥쑥 쑥이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앞면은 푸르게 뒷면은 하얗게 손바닥 뒤집듯 벌써 묘기를 부린다.
티격태격 옥신각신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사람보다 더 많은 새싹의 해를 향한 선의의 경쟁을 보노라면 부지런히 살아야지, 열심히 살자며 희망이 용솟음친다. 마음을 다잡아 다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귀염둥이를 살피면 제 키 큼을 자랑하지 않는다. 아직 땅의 일부인 고만고만한 움이 마치 하늘과 거리가 더 멀어 지구와 함께 사는 걸 이득으로 생각하며 샛바람에 떨 염려가 없음을 복으로 알고 있잖은가.
에오라지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생명을 머금고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됨을 고마워한다. 때묻지 않은 순수의 결정체는 오늘도 농부만큼 6개월 동안 열심히, 부지런히, 온 힘을 다하여 자라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속삭인다.
바늘처럼 쏙쏙 올라오는 건 보리와 밀뿐만이 아니다. 억새와 갈대를 필두로 잔디와 띠, 그리고 참나리에 원추리, 둥굴레, 부추, 파, 양파, 마늘, 산마늘, 비비추 따위 백합과와 난초가 극성을 부린다.
봄 하늘을 찌를 듯 드세다. 소나무와 잣, 전나무, 낙엽송도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손톱만도 못한 자잘한 것이 땔감이 되고 집짓는 목재가 된다니!
여기에 널찍한 잎을 양쪽으로 나눠가지는 새순을 더하면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또 다시 자웅을 겨루는 순박한 소망을 담은 숙명의 대결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치열하다. 따스한 해를 받으면 더 짙푸르고 밤이슬을 한 모금 마시고는 몰라보도록 우리 아이들처럼 훤칠하게 자라 있다.
싹수가 누런 것도 있고 애초부터 발갛기도 하다. 보랏빛을 띤 이도 있다. 아직 껍질을 온전히 벗지 못하고 벙거지를 둘러 쓴 아이도 있다. 앙증맞기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어찌나 작은지 저게 제 구실을 할까 모르겠다. 여직 이렇게 작은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까?
씨도 겨울잠을 잤나보다. 그래 겨울잠을 노천에서 자야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올라온다고 했지. 그래서 사람들은 씨앗을 뿌리기 전에 흙에 종자를 묻어둔다. 발아율이 한껏 올라가 거개가 별 탈 없이 올라온다.
씨는 적당한 온도만 필요치 않는다. 알맞은 수분을 버리지 않고 움켜쥐고 있다가 제 살을 삭혀서 먹고 껍질과 껍데기를 썩혀서 마치 병아리가 달걀껍질을 제 혼자 힘으로 깨트리듯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발짓을 하기도 하고 제 어미 뱃속인 양 쿵쿵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쑥쑥 밀고 오라오는 기운이 어찌나 세던지 단단하게 굳은 흙덩어리를 들어올린다. 뿐인가 돌멩이도 확 밀쳐버린다.
어제는 비를 흠뻑 맞더니 한껏 대지가 보드라워졌다. 씨앗과 새싹이 더 바빠졌다. 물 한 모금 입에 가득 머금었다가 ‘아르르’ 입을 움직였다가 물방울을 “투-”하고 뱉으면 가는 물방울이 잘게 부서지며 흩어지듯 가을날 귀뚜라미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때론 둥글게 어떤 건 뾰쪽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두 잎 크기는 어찌나 닮았는지 가늠하기가 힘겹다. 다시 접어도 둘은 반쪽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쪽이 약하면 다른 힘센 쪽이 거든다.
아, 사람들은 벌써 벚꽃구경이다 뭐다 꽃에 환시, 환각을 맞은 듯 혼절상태지만 나는 봄이면 새싹을 찾아 얼굴을 들이밀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기엔 나물도 있고 산소가 있다. 피톤치드가 있고 지구의 힘이 있다. 우주의 영원불멸이 있다.
행여 내 잘못으로 새싹을 밟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듯하게 자라다오. 무럭무럭 커라. 누군가에게 삼십년 혹은 백년 뒤에 쓰임새가 있다는 걸로 그대는 소임을 다한 거다. 내 아이들에게 숲처럼 서로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리라. 조화로운 삶을 느끼도록 하리라.
시골집 담장, 숨 막히는 도시 길가, 논두렁 밭두렁, 남쪽 평야와 두메산골 깊은 골짜기 응달에도 새싹이 돋았다. 이제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활짝 피어나라. 벌써 사슴뿔도 이렇게 자라 있지 않느냐.
새 출발하려면 봄에 돋는 싹을 보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을 것이요, 보잘것없는 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시골아이고향(☜ 바로가기)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향의 맛과 멋, 추억을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