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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 사다리가 달린 주철건물들이 소호의 특징이다.
ⓒ 정송
언젠가 한국의 젊은 작가 이불이 휴거보스상의 수상작가로 선정되어 최고상의 강력한 후보라는 소식을 듣고 시상식을 보기 위해 어렵게 입장했던 그곳, 로비에 백남준 선생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갈 때마다 기분 좋았던 구겐하임 미술관 소호 분점이 지금은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매장이 되어 있었다.

구겐하임이 프라다로 바뀐 것은 소호의 변화에 대한 상징적 표상이다.

지난 시절 미국 미술을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었으며 시대의 사조를 선도한 미술의 거리 소호가 지금은 패션 스토어가 즐비한 명품의 거리가 되어 있다. 진취적인 갤러리들은 모두 떠나고 상업 갤러리와 골동품 상점만 남아 철지난 미술품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패션 스토어와 카페가 들어서서 부유한 뉴요커들과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주철 건물들은 웅장하고 시원스러운 공간을 미술품 대신 드레스로 채우고 자연석이 깔린 거리는 예술가들 대신에 쇼핑객들이 넘쳐난다. 과거의 낙서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가운데 깔끔하고 세련되게 정비된 거리의 정경은 나름대로 특색과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 깔끔하게 도색된 레스토랑.
ⓒ 정송
소호는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 많은 곳이다. 갤러리를 돌아다니다 지치면 한인 미술가 오성균씨의 화랑에 들러 그분의 작업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했다. 내가 지쳐 보이면 그분은 손수 라면을 끓여주곤 했다.

그 갤러리가 문을 닫은 후로는 한인 미술가들의 후원자요, 친근한 벗이었던 김양수씨의 언타이틀드를 주로 애용했다. 둘로 나뉜 공간의 한 쪽은 카페, 다른 쪽은 갤러리로 운영되던 그곳에서 백남준 선생의 퍼포먼스 뒷풀이가 열린 적이 있었다. 프로당구선수 쟈넷 리의 시범경기를 본 것도 그때 그곳이었다.

2년 전에도 예전 그대로였던 이곳이 지금은 주인이 바뀌고 인테리어가 달라져 있었다. 한쪽 공간만으로 갤러리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소호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닮아서 밝고 깔끔해져 있었다.

▲ 새롭게 바뀐 언타이틀드의 내부 정경. 여전히 갤러리 겸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 이규식
미술지의 요청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 원로 판화가 황규백 선생의 스튜디오도 근처에 있었으며 백남준 스튜디오도 그곳에 있다. 황규백 선생은 인터뷰에서 여생을 모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말씀하셨는데 희망대로 현재 영구 귀국하셨다고 들었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호는 아직도 나에게 정겹고 친근한 곳이다. 늦깍이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오랜 친구이며 요즈음 뉴욕 화단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설치미술가 황란의 작업실이 있어 잠시 발길을 멈출 수 있다.

▲ 미술작품과 함께 걸린 패션샵의 드레스. 작가는 한국 출신 미술가 황란이며 한지를 이용한 디스플레이가 돋보인다. 이 가게는 연중 작가와 함께하는 디스플레이를 운용한다.
ⓒ 이규식
소호와 비견되곤 하는 서울의 대표적 화랑가 인사동도 지금 변화하고 있다. 서로 다른 점은 소호는 패션의 거리로, 인사동은 음식의 거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언젠가 독일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작가 한분이 한국은 TV만 틀면 먹는 장면이 나온다고 하여 웃은 적이 있다.

미술이 밀려난 그 자리를 패션으로 채운 소호의 장래가 어떨지 흥미롭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거리로 변해가는 인사동의 미래도 궁금하다.

▲ 오래된 갤러리 앞에 설치된 조형물. 이 갤러리는 아직도 남아 상업적인 미술품을 판매하고 있다.
ⓒ 정송
▲ 역시 옷가게로 바뀐 백남준의 옛 전속갤러리, 이 발코니에서 백남준의 퍼포먼스가 열리곤 했다.
ⓒ 정송
▲ 누가 왜 붙여놨는지 모르지만 부시가 언급한 소위 '악의 축'들이 눈을 가린 채 실크스크린 되어있다. 우측 하단에 김정일의 모습이 보인다. 나름대로 심각한 내용이지만 기념으로 옆에서 찰칵... 9·11 이후 테러에 대한 증오의 분위기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 이규식
▲ 남쪽 캐널스트리트를 경계로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중국인 거리의 화가가 혁필로 그림 글자를 만들어 이름을 써 주고 있다. 성황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수입이 짭짤할 것 같다.
ⓒ 정송
▲ 어느 건물의 출입문. 튼튼하기도 하지만 그대로 미술 작품 같다.
ⓒ 이규식
▲ 이 옷가게도 설치미술가의 작품과 함께 디스플레이를 하였다. 소호에서 미술은 주인자리를 패션에 내주고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좋게 말하면 '미술과 패션의 조화' 또는 '미술의 대중화'라고나 할까?
ⓒ 이규식

덧붙이는 글 |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다녀온 여행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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