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이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미 양국 정부가 용산기지와 2사단을 이전해 중심기지(hub)로 삼고자 하는 평택이 자리잡고 있다. 평택 주민들은 또다시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 없다며 "올해에도 농사짓자"는 구호를 앞세워 영농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와 보수언론은 농민들이 반미단체에게 세뇌당해 반미 투쟁에 나섰다며, 현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를 붉은색으로 덧칠하고 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을 '국가안보를 무시하는 위험한 세력'으로 몰아 강경 진압의 근거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특히 보수언론의 공세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기지확장 반대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정부가 솜방망이로 대응하고 있다며, 강경 진압을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는 보수적 학자들까지 가세하고 있는데, 이들은 평택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을 친북반미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논란의 중심에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목적'이 자리잡고 있다. 평택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기지 재배치가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을 수월하게 하고, 미국의 대중국 봉쇄와 군사적 개입과 연관되어 있으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외피를 쓴 미국의 전쟁에 주한미군을 신속하게 차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재배치는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는 대한민국의 헌법뿐만 아니라, 동맹의 목적을 '한국 방위'로 한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까지 위반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언론과 학자, 그리고 국방부는 이러한 지적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반미를 위해 평택을 이용하고 있다는 케케묵은 '색깔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뉴욕타임즈>와 미국 학자도 친북·반미인가
한미간에 미군 재배치 논의가 본격화된 2003년 6월 중순, <뉴욕타임즈>는 주한미군 재배치가 대북 선제공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 신문은 6월 16일자에서 "북한은 미군이 후방 배치될 경우 평양 근처의 핵시설을 쉽게 폭격할 것이라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며 "북한은 이를 미국이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포모나 대학의 데이비드 아라세(David M. Arase) 교수 역시 2004년 8월 하순 한 세미나에서 "인계철선 역할은 감소됐으나 미국의 국지적 무력사용 가능성과 능력은 높아져 공세적 억지력이 확보될 것"이라며 "(미국의) 무력 사용능력 의지가 증대됐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의 대북 위협은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즈>도 아라세 교수도 친북·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한강 이북에 대규모의 미군이 주둔하는 상태, 즉 인계철선 개념이 유지되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입게 될 피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주한미군이 후방으로 재배치되면 미국은 대북 군사 행동에 이전보다 덜 신중하게 될 것이라는 '상식적인' 분석을 내놓았을 뿐이다.
인계철선 개념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미국이 한강 이북에 있는 2사단과 용산기지를 평택권으로 통폐합하기로 결정한 데에서 나왔다. 이를 한반도의 군사적 함의와 연관시켜 분석하면,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가 완료되면 미군은 북한의 장사정포를 포함한 야포 사정거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두 가지 추가적인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의 배치한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중추기지(hub)인 평택권은 물론이고, 공군력 투사 근거지로 삼고 있는 군산과 유사시 미 공군력이 증원될 수원과 광주에 PAC-3 배치를 완료한 상황이고, 추가적인 MD 배치도 추진하고 있다.
또다른 하나는 적지 않은 인적·물적 피해가 불가피한 'DMZ 관통 북진 작전'을 한국군에게 넘기고 미국은 서해와 동해로 우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미군 관계자는 "이러한 작전은 김정일에게 최악의 악몽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든 조치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들이다.
미국은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정보력과 정밀 타격 능력을 배가하고 있다. 북한을 중국, 이라크, 이란과 함께 최상등급의 정보 목표(intelligence targets)로 삼은 부시 행정부는, 정보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왔다.
또한 JDAM을 비롯한 정밀유도무기, 아파치 헬기의 전력 강화, F/A-18E와 F 수퍼 호넷 등 전천후 전투기 배치, F-15E 및 F-117 스텔스 전폭기 등 공군력의 신속 배치 능력 확보 등을 통해 공군력을 배가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 지역에 해군력과 공군력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유사시 한반도의 전개 시간도 대폭 단축해놓고 있다.
유사시 미군의 피해는 대폭 줄일 수 있는 반면에, 선제공격 능력은 배가되는 형태로 주한미군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전쟁 불가피... 대비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3년 1월 16일 이준 국방부 장관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는 국회 국방위 증언에서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이 안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며 "우리 군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계획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도 대비책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발언이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발언 시점이다. 그는 도날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2002년 12월 5일 회담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략기획지침' 문서에 서명했고, '우발계획'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이러한 내용은 럼스펠드가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우발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힌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앙일보>는 이준 장관의 발언 다음날인 2003년 1월 17일, 한미 양국이 북한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리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새로운 작전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이를 '우발계획'(Contingency Plan)이라고 명명하면서 2003년 7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추후에 작전계획 5026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계획의 골자는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시 북한이 보복에 나설 경우 수도권을 방어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논란이 되었던 5029 역시 선제공격 계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계획은 북한 내부에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해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북한 내 위험 세력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군사 개입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이나 미군 단독으로 군사 작전에 나선다는 것은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처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선제공격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데에는 부시 행정부가 이른바 '예방전쟁'의 관점에서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기 전에 무력 사용을 통해 그 위협을 제거한다는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한 데에 핵심적인 이유가 있다.
'무력 사용 옵션'은 다시 나올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관철시켜온 부시 행정부가 "필요할 경우" 선제공격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략을 공식적인 국가안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고, 그 대상에 북한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2년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뿐만 아니라, 2006년 NSS에서도 거듭 확인된 원칙이다.
또한 2001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는 북한을 이라크와 함께 "고질적인 군사적 우려"(chronical military concern)로 규정하면서 핵 선제공격 대상에도 포함시킨 바 있다. NSS와 NPR이 미국의 군사안보전략을 담고 있는 핵심적인 문서라면, 이러한 내용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한미동맹이 공격형 동맹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주한미군이 미국 군사력의 일부이고 미국의 신군사전략이 한미동맹 재편의 가장 큰 원인이라면, 한미동맹이 미국 신군사전략의 예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 문제가 발생한 직후에 동맹 재편을 제안했고, 북핵 문제가 악화될 때에도 한미동맹 재편을 가속화했다.
물론 이러한 분석이 미국의 대북선제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은 아니다. 미국이 위기시 김정일 위원장 등 지도부의 은신처 및 핵무기나 물질의 저장시설 등 '핵심 표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북한의 반격에 따른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선택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 군사력이 분산되어 있고, 북핵보다 이란 핵문제를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아울러 한국·중국·러시아 등 국제사회의 반대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미국 국민 다수가 북한을 위협으로 간주하면서도 무력 사용을 반대하는 것도 미국의 북폭 가능성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고, 2005년 9월 19일 채택된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에 대한 무력 불사용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북핵 문제가 끝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무력 사용 옵션은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시 대통령은 2003년 3월 초 외교적 해결을 확신한다면서도 "외교가 실패할 경우 군사력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그것은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핵 물질 및 기술의 이전을 차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이를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차원의 선제공격론이 제기될 수 있다.
가능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의 성격과 이를 위한 주한미군 재배치의 목적이다. 주한미군의 기지 재배치 및 전력 변화가 과거보다 북한에 무력 사용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고, 작전계획에 선제적 군사행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주한미군의 변화가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라면, 한미동맹이 대북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바꾸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북폭 직전의 위기일발... 1994년의 교훈을 벌써 잊었나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연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에 의해서든, 북한에 의해서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 자체로 '절대악'이다. 그리고 만약 위의 분석이 타당성을 갖는다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하는 조치이다.
어느덧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는 역사가 있다. 1994년 위기 당시 미국은 한국 국민도 모르게 북폭을 진지하게 검토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의 북폭에 나서지 못한 이유는 지미 카터의 중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반도 유사시 전방 배치된 병력을 비롯한 미군의 막대한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당시 미국 측의 워게임 결과에 따르면, 북한측의 피해를 제외하더라도 미군 약 5~10만명, 한국군 약 50만명, 남한 주민 수백만 명 등이 사망할 것으로 봤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을 제압하는 데 90일이면 된다고 보면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인적, 물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북핵 문제가 재발하고 평화적 해결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방 배치된 미군이 후방으로 빠지고 엄청난 규모로 공격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미국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공식적인 안보전략으로 채택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 끝까지 잘 했다고 우기고 있다.
과연 이러한 미국의 이성에 한반도의 운명을 맡겨도 좋을지, 평택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를 붉은색으로 덧칠하기 바쁜 '자칭' 보수주의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에 대한 정부나 주한미군측, 그리고 보수 언론과 학자들의 반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