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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양극단이 존재한다. 보수·진보 또는, 좌파·우파 그리고 지역주의의 대립이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그런데 이어령은 <디지로그>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양극화 현상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IT혁명' 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한국 사회는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진입했다. 디지털의 상징인 '인터넷'만 해도 놀라운 속도로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인터넷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곰곰이 살펴보면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 디지털이 자리잡을 때, 우리 사회에 있던 아날로그가 방치됐다는 것이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자. 아날로그는 어떻게 됐는가? 순식간에 사라져가야 했다. 아날로그를 '구식'의 동의어로 봤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절' 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분법적이고 적대적으로 판단하는 풍조로 이어졌다. 마치 다윈의 적자생존이론처럼 디지털형 인간은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는다는 주장이 진실처럼 여겨질 정도로 사회는 디지털을 '숭배'하고 아날로그를 '무시'했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서나 아날로그가 통했지 IT혁명에서는 방해물에 불과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일상화될 때 '문화지체'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디지털 시대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단번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이라는 열차를 갈아타지 못했다. 변화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적응하고 싶어도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따라갈 수 없었던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디지털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은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처럼 쓸모없거나 도태된 인력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이어령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어령은 더 이상 디지털도 아니고 아날로그도 아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친 '디지로그(Digilog)'를 미래의 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와 같이 어느 하나를 추종하는 것은, 반대로 다른 하나를 무시하고 것은 미래 사회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지로그'는 하나의 제안이 아니라 살기 위해 움켜쥐어야 할 생명 줄인 셈이다.
그렇다면 디지로그는 어떤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요즘 유명 포탈사이트가 오프라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과 연계해 인터넷 책 서비스를 하는 것을 상기해보자.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서로를 적대적으로 바라봤다면 이 만남은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 매체들은 아날로그의 대표격인 서점과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며 그들을 비웃었다. 책의 종말을 선언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은 살아 남았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책을 '책'의 형태로 보려 한다. 그래서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변할 필요성을 느꼈을 게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 더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서로 공생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래서 디지로그로 시선을 바꾼 것이다. 디지털은 인터넷 등의 기반을 이용해 책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아날로그는 무엇을 하는가? 디지털의 기반을 기회삼아 책을 구입하는 정서를 만든다. 이것은 확실한 '윈-윈'만남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둘이 힘을 합함으로써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이 한결여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로그는 삭막한 인터넷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사람의 향기가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 될 것이 뻔하다. 양극화된 문제가 하루 아침에 변할 리는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 어려움은 상상하지 않아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로그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또한 그것이 살 길이라고 여긴다면 어렵더라도 놓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제 마인드의 변화가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디지털을 숭배하고 아날로그를 경시하는 마음을 버리고 함께 끌어안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더 이상 디지털형 인간이 성공하고 아날로그형 인간은 구식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미래는 디지털의 것도 아닌, 아날로그의 것도 아니다. 디지로그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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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로그 digilog (보급판 문고본)
이어령 지음, 생각의나무(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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