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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용성-이명순 부부의 병실에서의 정겨운 모습.
방용성-이명순 부부의 병실에서의 정겨운 모습. ⓒ 김재경
병실에서 부부의 정겨운 모습.
병실에서 부부의 정겨운 모습. ⓒ 월간 <우리안양> 제공

안양 학의천의 샛노란 개나리와 관악산 자락을 곱게 물들인 진달래의 자태를 시샘하듯 복숭아꽃, 살구꽃에 이어 벚꽃까지 앞다퉈 피었다. 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다.

[삶은 꽃보다 아름다워] 혹독한 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피어오르는 꽃이 아름답듯 힘겨운 세파를 딛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마흔다섯살의 방용성·이명순 동갑내기 부부의 삶은 '장애인의 날'을 맞아 화사한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명순씨는 안양시 부흥동 새마을부녀회원이며 자율방범대원이다. 또 과천경찰서 시민경찰로서, 환경보호단체와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오랫동안 봉사의 꽃을 활짝 피웠기에 그녀의 삶은 늘 햇살처럼 밝았다.

그녀의 고단한 삶은 올해 1월 5일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장애인 부부, 사랑하다] 함께 했던 봉사자들조차 장애인인 명순씨가 역시 장애인인 남편과 난치병의 아들 사이에서 힘겹게 가정을 꾸리고 있음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녀는 결혼 전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왼손가락을 모조리 잃었다. 일터에서 알게 된 시누이 소개로 만난 남편은 선천적으로 오른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었지만, 법이 없이도 살만큼 온순하고 성실했다. 술·담배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교과서처럼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었다.

비록 신문배달로 생계를 꾸리지만 알콩달콩 두 딸을 낳고 살면서, 장애의 아픔은 서로를 끈끈한 사랑의 동아줄로 묶는 원동력이 되었다.

[난치병 아들 현덕이] 행복도 잠시, 막내인 아들 현덕(현재 13살)이는 '식도협착증'이란 난치병으로 식도가 막혀 물 한 모금조차 넘길 수 없이 태어났다. 신생아 때부터 8개월 때까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들의 양육은 부부의 신문배달 수입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웠다.

명순씨는 신문배달 이후 돈이 될 만한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아들은 위를 잘라서 식도 관을 만드는 대수술을 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작고(신장 120cm) 왜소(체중 21Kg)했다.

"언제 쯤이면 안 토하게 되나요?"

먹는 것을 놓고 모자간에 벌이는 실랑이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먹고 이내 아이가 잠들면, 토할까봐 다시 흔들어 깨우는 엄마의 염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덕이는 콜록콜록 기침과 함께 먹었던 것을 울컥 토해낸다.

잠드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는 이해할 수 없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낮에는 그런 대로 괜찮지만 밤만 되면 계속 토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들이 밥먹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다.

현덕이는 가물가물 졸린 눈으로 "언제쯤이면 안 토하게 되느냐"고 묻는다. 엄마는 "크면 괜찮다"고 애써 대답을 했지만, 불면의 밤은 계속되었다. 아들이 말하기 전에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음에 그저 가슴 아플 뿐이다.

뱃속의 음식물이 다 나올 때까지 토하고 또 토해야 잠들 수 있는 현덕이가 토해 놓은 이불이며 옷가지가 수북히 쌓인다. 이럴 때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이고, 자고 싶은 대로 재울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은 캄캄한 어둠만큼이나 무겁다.

밤마다 눈물과 고통 사이를 넘나들며 현덕이는 폐가 울리도록 기침을 계속했다. 소변이 마렵다는 감각조차 못 느껴 더러는 싸기도 한다. 아기 때는 먹기만 하면 계속 토하니까 부모는 교대로 식사를 해야 될 지경이었다.

용성-이명씨가 부부가 살던 집안의 모습.
용성-이명씨가 부부가 살던 집안의 모습. ⓒ 준인테리어제공
[남편의 교통사고]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최근까지 20여 년 간 신문배달을 했다. 하지만 중이염을 오래 앓았던 터라 피곤하면 상태가 악화된다.

한때 남편은 지인의 도움으로 공장에서 플라스틱 조립을 했지만, 오른손 장애를 발견한 사장에 의해 해고되었다. 취업의 설렘도 잠시, 그 충격은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용성·명순 부부는 8평 영구임대아파트의 작은 공간에서 밤마다 현덕이와 씨름한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선잠이다. 그래도 장애인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하며,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이들 부부는 5식구의 생계를 위해 어둠 속으로 나란히 신문배달을 나간다. 이들 부부에게는 지방지나 부수가 적은 자투리까지도 돈이기에 마다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일해야 부부 합산 월수입은 90만원 내외다.

남편은 사고가 나던 날도 오토바이에 가득 신문을 싣고 평상시처럼 어둠 속을 달렸다. 순간, 유리조각에 오토바이 앞바퀴가 펑크가 났고, 땅바닥으로 퉁겨져 나갔다. 하필이면 장애가 있는 오른쪽 어깨뼈가 산산이 부서졌다. 남편은 병원에 입원해 철심을 박았지만 8주 가량 더 치료를 받아야 할만큼 중상이었다.

[우리 힘으로 살고 싶다] 아내는 신문배달이 끝나면 딸들을 깨워서 학교에 보내고, 남편의 식사를 돕기 위해 병원으로 달려간다.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수북한 빨래며 살림살이가 그녀를 맞는다. 명순씨는 당뇨병에 설상가상으로 관절염까지 겹쳐 다리를 옆으로 옮겨야 겨우 누울 정도로 지쳐 있었다. 때로는 기어다니기도 어려워 엉엉 울기도 했다고 한다.

잠을 푹 자는 게 소원인 그녀는 잡념이 생길 틈 없이, 또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원봉사에 몰두한다.

주변에서는 "이젠 생활보호 대상자도 됐으니 그만 쉬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남에게 기대지 말고, 일할 수 있는 한 우리 힘으로 살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할 뿐이다.

요즘은 또래 아이들보다 현저히 작아서 땅꼬마라고 놀림을 받던 현덕이는 정신적 치료도 필요해서 병원(서울)에 입원중이다.

명순씨는 "현덕이 일로 가끔 남편과 옥신각신하거나 때론 큰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힘들어도 곁에 있을 때가 더 맘이 편했다"며 커다란 눈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준인테리어에서 집을 고쳐준 후 모습. 신혼집 분위기가 난다.
준인테리어에서 집을 고쳐준 후 모습. 신혼집 분위기가 난다. ⓒ 준인테리어 제공
[고맙고 또 고마운 내 딸들] 용성-명순 부부는 "세상 어떤 위인보다 존경하는 인물이 '엄마'라고 큰딸이 말했다"며 흐뭇해 한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인 두 딸이 밝게 자라주니 이들 부부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남편은 "학교에 보내는 가정통신문에 딸들이 부모가 장애인임을 떳떳하게 밝히며 적은 수입에 맞춰서 아껴쓰는 자세가 고맙다"고 말한다.

얼마 전 이들 부부에게 고마운 일이 있었다. 평촌의 한 인테리어 업체에서 5식구의 살림집을 말끔히 고쳐준 것이었다. 이에 부부는 "남에게 기대지 않고 우리 힘으로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집을 말끔히 고쳐줘서 얼마나 고맙던지요"라고 이구동성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두 손을 꼭 잡은 장애인 부부의 모습이 한 쌍의 원앙처럼 다정해 보인다. 비록 장애가 불편할지언정,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마음이 건강한 부부의 모습이 어쩌면 봄날의 화사한 꽃보다도 더 아름다워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열심히 사는 장애인부부의 삶이 아름다워 장애인의 날에 썼습니다. 월간 <우리안양>에도 송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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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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