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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노조가 규탄대회 하는 모습을 경비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법원노조가 규탄대회 하는 모습을 경비대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 신종철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에서 법원공무원들간의 물리적 충돌사태가 벌어졌다.
서울남부지법 A판사가 직원 3명을 7시간 넘게 감금했다고 주장하며 공식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하 법원노조)이 법원행정처의 A판사에 대한 전보발령에 발끈하고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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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법원노조 산하 전국법원 각 지부장 등 50여명은 27일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A판사의 사과없는 전보발령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직접 면담하기 위해 대법원으로 집결했다.

당초 대법원에 요구한 면담시간은 오후 4시. 하지만 서울법원종합청사 소속 경비대원들까지 대법원으로 이동해 법원노조의 대법원 진입을 사전 차단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법원노조는 예정된 시간을 앞당겨 오후 1시 30분경 대법원에 진입했다.
대법원은 법원노조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려 했으나 막지 못했다.

이들이 진입한 후 집회가 시작돼, 구호 소리 등이 대법원 청사 전체에 울려 퍼지자 민원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될 것을 우려한 대법원은 동문 지하와 1층 출입문을 굳게 걸어닫았다.

대법원 청사에서 사상 초유 규탄대회

이날 법원노조는 정문 로비에서 ▲A판사의 공개 사과 ▲영장업무 당직 전담제 전국 법원 확대 실시 ▲대법원장의 입장 공개와 책임 있는 조치 ▲코트넷 게시물 무단삭제에 대한 사과 등 7대 사항을 요구하며 대법원장실로 이동을 시도했다.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대법원장실로 이동하려 하자 법원 경비대원들이 이를 막으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법원노조 조합원들이 대법원장실로 이동하려 하자 법원 경비대원들이 이를 막으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신종철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물론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나온 법원경비관리대원 40여명이 가로막으며 대치상황이 전개됐다. 이 자리에는 법원행정처 뿐만 아니라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등에서 나온 각 직원을 비롯해 과장, 국장 등 7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지켜봤다.

오후 1시 40분경 법원노조가 대법원청사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있을 때 대법원은 오후 2시에 판결선고가 있으니 확성기를 끄고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법원노조는 재판업무를 방해할 뜻이 없었기에 곧바로 확성기를 껐다. 하지만 2분 정도가 흐른 뒤 갑자기 경비대원들이 법원노조를 제압하고 밀어내기 시작하며 물리적 충돌사태가 빚어졌다.

충돌이 벌어지자 서초경찰서에서 3개 중대가 파견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하는 등 긴박한 상황이었고, 경찰서장이 직접 현장에 나오기도 했다.

규탄대회는 계속됐고 오후 3시 30분경 서초경찰서 간부는 이날 규탄대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대열 서울가정지부장 등에게 "시위가 계속되고 과격해지면 경찰로서는 어쩔 수 없다"며 강제연행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충돌은 오후 4시 5분경 또 벌어졌다. 삼엄한 경호 아래 전금식 법원경비관리대장이 오후 3시 53분경 확성기를 들고 규탄대회장 앞에 나서자 법원노조는 "비켜라, 물러가라"를 외쳤다.

전 대장이 "대법원 청사에서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있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죄 등에 해당되니 조속히 자진 해산하라"고 계속 외치자 법원노조는 스크럼을 짠 후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경비대원들이 이들을 가로막았고, 5분 가량 밀고 밀어붙이는 과격한 몸싸움이 진행됐다. 다행히 다치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서로에게 미안한 노조원들과 경비대원들

이를 지켜본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청사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고, 또다른 참석자는 "법원공무원들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판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날 법원노조는 항의서한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 선에서 규탄대회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대법원장실에서 직접 전달하지는 못했고, 최송립 서울중앙지법 지부장이 행정관리실장실에 내려 온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에게 전달한 것.

법원노조가 자진 해산한 것은 오후 4시 20분경. 기자 옆에 있는 경비대원의 무전기에서 "집회 끝났다, 문 열어줘라"는 목소리를 흘러 나왔다.

이날 격렬한 몸싸움까지 불사했던 법원노조는 자신들을 둘러싼 경비대원들에게 "같은 법원가족으로서 경비대원들이 고생한다"며 박수를 보내자 경비대원들도 쑥스러운 웃음을 보이기도 했고, 집회가 끝난 뒤에는 법원노조와 경비대원들은 서로 "미안하다"며 격려했다.

경비대원들은 "도와주진 못할망정 이렇게 일반직이 일반직을 막고 있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규탄대회가 끝난 뒤 기자는 대법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공보관과 행정관리실장을 찾았으나 대법원도 이날 긴급 회의 중이어서 만나지는 못했다. 다음날 대법원의 입장을 알아보려 했으나 대법원은 공식 입장을 자제했다.

한편, 이날 외부에 나갔다 돌아오던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원 정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지하 주차장 문을 이용해야 했다.

ⓒ 신종철
대법원장 항의서한 내용은

법원노조는 항의서한에서 "7시간 동안 갇힌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 대법원 차원의 조치도 없고,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과도 없는 것에 대해 분노해 모인 것"이라고 규탄대회의 성격을 설명했다.

이어 "보여주기식 행정만을 고집하는 법원행정에 대해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도 충분하고 그럴 대안도 갖고 있다"며 "일선에서 국민들과 살을 맞대고 근무하는 직원들의 의사를 대법원장께 알려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법관의 양심이 아닌 최소한의 양심으로 용서를 구하기만 했어도 이 사태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는 법원행정처장의 뻔뻔함에 법원일반직 전체가 분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노조는 "대법원이 보여준 행동은 면담 자체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출입문 봉쇄와 경찰력 동원이었다"며 "과연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서울남부지법 사태에 대한 대법원 차원의 사과를 발표하고, 해당 판사는 피해 직원들에게 용서를 구하라"며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건설하려면 법원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해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항의서한과 7개 요구사항을 함께 전달했으며, 대법원 차원의 책임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각급 법원별로 플래카드를 내걸고, 법원직원들이 리본을 부착하는 등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백연옥 여성위원장 "대법원 조사가 이 정도냐, 맞장 뜨자"

ⓒ 신종철
다음은 이날 규탄대회장에서 나온 중요발언들을 정리한 것이다.

곽승주 법원노조 위원장은 "A판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A판사를 매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정중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판사들이 스스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위원장은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국민을 섬기는 법원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사법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에 법원노조도 찬성한다"며 "그런데 국민에게 친절할 수 있는 근무환경은 조성해 주지 않고, 특히 간부들은 변하지 않으면서 하위직에게만 강요하기 때문에 들끓고 있던 때에 이번 사건이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집회 배경을 설명했다.

이성철 노조 사무총장도 "A판사는 한 인간으로서 겸손하게 사과해야 한다"며 또한 "전보는 징계가 아니라 구제 조치로, 이는 판사 챙기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는데 법원가족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조합원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백연옥 노조 여성위원장은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도저히 생각하지 못했다"며 "터널은 어디까지 가야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특히 "우리는 끝까지 대법원장에게 요구사항에 대한 대답을 들어야겠다"며 "법원행정처 윤리담당관실에서 조사한 게 고작 이 정도냐, 맞장 한 번 뜨자"고 경고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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