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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렬 판사
이정렬 판사 ⓒ 연합뉴스
법원직원 감금 주장에 대한 대법원과 법원공무원노조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유학중인 한 판사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진단하는 글을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글의 주인공은 바로 이정렬 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억대 내기골프 사건에 대해 상습도박죄를 적용한 대법원 판례를 깨고 역시 무죄를 선고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판사다.

이 판사는 28일 법원노조(www.bubwon.org) 홈페이지에 올린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A4용지 6장 분량의 글을 통해 "일반직을 보는 눈과 인식을 바꾸자"는 주장을 펼쳤다. 현재 이 판사의 글은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어봤으며 30여개 댓글이 달리는 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사법시험 합격부터 지난해 휴직하기까지 자신의 이력을 소개한 뒤 "장황하게 이력을 적은 것은 23살이라는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28살에 판사가 된 후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음을 말씀드리기 위함"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단독판사 시절 같이 일하는 계장님, 주임님, 법정경위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그 분들은 저를 늘 상석에 앉도록 했고 나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마찰이 생길 때마다 그 분들을 심하게 질책했는데도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하다고만 할 뿐이었다"고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는 "전근을 가기 전 주임님들께서 도맡아 이삿짐을 싸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어린 나이에 왕으로 군림하며 즐기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판사는 "99년 서울중앙지법 판사 시절 한 계장님이 송곳을 들고 기록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주임님이 할 일을 왜 계장님이 하느냐'고 핀잔섞인 말을 했더니 '우리 재판부 일인데 아무나 하면 어떠냐'고 답했는데 그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며 "그 때까지만 해도 판사, 계장, 주임의 일이 나누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따지고 보니 어느 누가 해도 관계없는 일이라는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직원'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판사는 직원이 아닌가 하는 반발감이 생겨 싫어하고 '일반직'이라는 말도 판사는 무슨 특별하고 특수한 직책인지 하는 의문이 생기고 판사가 계장님들이나 주임님들의 상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재자가 될 자격이 없어 '결재'라는 말도 싫어한다"며 이번 서울남부지법 사태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이번 사건의 판사님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다만 그 판사님이 쓴 글 중에서 어떤 생각으로 '지시, 지휘·감독, 지도'라는 말을 쓰셨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말씀들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봐 일반직은 지시, 지휘·감독, 지도의 대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결국 부하직원이라는 뜻과 같다"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 판사는 "적어도 판사에게 지휘·감독의 대상이 되는 부하직원이 없고, 판사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본 바도 없으며 그런 권한을 행사해 본 바도 없다"면서 "이번 사건의 원인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판사와 일반직의 관계'에 대한 관행에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은 다른 사람들의 분쟁 해결을 주된 업무로 하는 곳인데 요즘 우리 직장은 그 안에서 생긴 분쟁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스템상의 문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판사와 일반직 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이번 일은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고 진단했다.

또한 "아직 재임용도 받지 않은 성숙되지 못한 판사이고 나이 마흔도 되지 않은 어린 사람이지만 일반직은 판사의 부하직원이 아니니 일반직을 보는 눈과 인식을 바꾸자는 말씀을 감히 드린다"며 판사들에게 제안했다.

아울러 "판사님들이 다른 판사님들을 보면서 다들 뛰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하듯이 우리 직장에 근무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대단한 인재인데 그런 인재들에게 받아쓰기와 송곳질과 같은 기계적인 일만을 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며 "일반직은 지금 당장 판사의 업무를 해도 손색이 없어 그 분들도 당연히 존경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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