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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대는 구례 들판에 나가 보니 자운영이 곱게 핀 들판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물을 뜯고 계십니다. 무슨 나물을 뜯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할머니에게 여쭤 봅니다.
"할머니 뭐하세요?"
"뭐하긴 나물 뜯지."
"무슨 나물인데요."
"이거 쑥부쟁이야."
할머니와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쑥부쟁이는 흔히 들국화라고도 합니다. 나물로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나물을 뜯는 곳을 보니 여기저기 지천으로 쑥부쟁이가 널려 있습니다. "할머니 이 동네 사세요?"라고 다시 여쭈어 봤습니다.
"구례에서 태어나서 여태껏 살았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내 나이 알아서 뭣 하려고. 85살이야."
할머니는 인근 냉천 마을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사는 냉천 마을은 고작 2km 정도 떨어져 있는 가까운 곳입니다. 평생을 구례를 떠나지 않고 살았어도 이곳이 더 없이 좋답니다.
할머니는 몇 해 전 할아버지와 사별 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나물을 캐고 있는 이곳은 할아버지 무덤이 있는 곳인데, 할머니께서는 홀로 되신 뒤로 매일같이 할아버지 묘소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뭐 간다고 죽은 양반이 알것어, 그냥 가면 맘이 편하니까 한 번 가보는 거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혼자 사신다고 하십니다. 매일 할아버지 묘소를 다녀오는 것이 하루 일과 중 밥 먹는 것처럼 빼놓지 않고 하시는 일이라고 하시네요. 평생을 함께 살고도 매일 무덤을 찾는다니, 할아버지 생전에 두 분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입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쑥부쟁이를 뜯고 계신 걸까요?
할머니와 저는 자운영이 가득 핀 꽃 들판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쑥부쟁이를 뜯었습니다. 제가 나물을 뜯어 할머니에게 건네니 오히려 할머니는 제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쑥부쟁이를 한 움큼 챙겨 주시면서 요리 방법까지 설명해줍니다.
"쑥부쟁이를 물에 씻은 다음에 끓는 물에 데쳐서 참기름이랑 마늘 넣고 진간장 넣어서 버물리면 돼. 집에 가서 꼭 해먹어."
저는 막둥이처럼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매일 찾는 분과의 약속이니만큼 꼭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나물을 무쳐 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쑥이나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끊여 먹은 적은 있지만 나물을 무치는 것은 한 차원 더 높은 요리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약속을 실행해 보기로 합니다. 쑥부쟁이를 우선 물에 씻었습니다. 그리고 데치기 위해 물도 끊였습니다. 요리책을 찾아보니 뜨거운 물에 넣어서 10초 정도 데친 다음 꺼내서 바로 찬물에 넣어야 나물 고유의 색이 살아난다고 합니다. 책을 따라 하다 보니 데치는 것은 간단하게 끝이 납니다.
그 다음 진간장과 참기름 그리고 깨소금을 넣어 버물려 먹어보니 맛이 끝내줍니다. 나물 요리가 끝난 것입니다. 순간 너무 쉽게 끝나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간단하다 말인가? 그런데 정말 맛이 좋습니다. 쑥부쟁이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고소한 참기름 맛이 어울린데다가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까지 더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첫 나물요리는 너무나 쉽게 끝났습니다. 더불어 할머니와 약속도 지키게 된 것이죠? 그런데 아직 한 가지 약속이 더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쑥부쟁이 나물을 아주 많이 주셨는데 제가 조금 밖에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집에 가서 먹어보고 맛있으면 꼭 다시 와서 뜯어가라고 했는데 먹어보니 정말 맛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쑥부쟁이를 캐러 그 마을에 가야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자운영처럼 고운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겠죠?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거래가 세상을 바꿉니다. "참거래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