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번 쑥부쟁이를 주셨던 냉천 할머니를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해지는 오후 자전거를 타고 다시 그 마을을 지나는데 할머니가 계셔서 인사를 했습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때 주셨던 쑥부쟁이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자네. 우리 집에서 차 한잔하고 가지" 하시면서 잡고 있던 호미를 내려놓고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집 앞에서 머뭇거리고 서 있는데 어서 들어오라면서 차를 끓이러 부엌으로 가십니다. 두 번째 만난 저를 어떻게 믿고 집으로 선뜻 들어오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갑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커피 한 잔을 주시더니 밭에서 상추를 뜯어 줄 테니 가져가라고 합니다. "집에 상추 있어요"라고 말해도 좀 가져가라며 밭으로 나가십니다. 저도 찻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마당에는 상추, 마늘, 가지 등 온갖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당 한 곳에는 하얀 수국이 피고, 붉은 작약도 만발합니다. 상추를 뜯어오신 할머니와 나란히 마당에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뜯어오신 상추와 참나물을 봉투에 담아줍니다.
"꽃이 참 예쁘지 저 하얀꽃 말이야."
"네. 참 예쁘네요."
"저 꽃 이름이 뭔지 알아."
"수국이잖아요."
"우리는 상여 꽃이라고 부르지."
"상여 꽃이요?"
"그래 꼭 생긴 것이 상여 꽃 같잖아."
"하얀 꽃이 수북해서 꼭 상여에 매단 꽃 같단 말이야."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상여 꽃을 닮았네요. 요즘은 저런 상여 꽃 볼일도 없죠?"
"그렇지 지금은 다 장례식장에서 해버리니까 상여 본 지도 오래 되었네."
"작약도 꽃이 참 예뻐. 젊은 총각 닮았구먼 그래."
"아니에요. 할머니 닮았어요. 할머니 닮아서 아주 고운데요."
할머니는 저의 이야기가 싫지는 않은지 고운 미소를 지으십니다.
"저기 보이는 산이 오산이죠. 가보신 적 있으세요."
"음. 내가 아주 젊었을 때 가봤지. 처녀 때 말이야. 동네 친구들이랑 놀러 간 적이 있지. 거기 가면 뜀 바위라고 있는데 그때 동무들은 잘도 뛰더구먼."
"그 친구들 지금도 만나세요."
"거의 다 죽고 없어. 연락도 안돼."
85살의 할머니는 20살로 시절로 돌아간 듯 잠시 말을 흐리고는 다시 말씀을 합니다.
"언능 죽어야 할 것인데. 늙으니 목숨이 너무 길어. 자식들한테 피해나 주지 말고 죽어야 하는데 말이야."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할머니는 일제시대 때 결혼을 하셨고, 오사카에서도 5년을 사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본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알아듣는다고 하시더군요. 일본어 한 마디 해보라고 청하니 손사래를 치시며 하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저에게는 하나의 외국어일 수 있지만 할머니에게는 '상처를 주는 언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어두워집니다.
"할머니 이만 가볼게요" 하며 일어서는데 할머니는 "다음에도 꼭 다시 와, 노인네 혼자 사는데 여기 저기 먹을 것이 너무 많아" 하시면서 그냥 지나지 말고 꼭 다시 찾아오라며 신신당부하십니다.
두 번 만난 저를 집으로 초대해 차를 내주시는 할머니, 아마 시골 인심이란 이런 것이겠죠. 사람을 믿고 사는 것 말입니다. 할머니가 챙겨주신 커다란 인심봉투를 손에 들고 비틀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돌아옵니다. 마을길은 아카시아가 만발하여 달콤한 향기가 진동합니다. 입에서는 휘파람이 절로 나옵니다. 아마 할머니의 인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연히 두 번 만난 할머니, 세 번째도 만날 수 있겠죠?
덧붙이는 글 | 당신의 거래가 세상을 바꿉니다. 참거래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