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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스파크타격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스파크타격을 하고 있습니다 ⓒ 김관숙
푸르름이 한창인 한강둔치에서 우리 동네 회원끼리 5명씩 팀을 만들어 게이트볼 경기를 했습니다. 회원들 중 부부 회원은 나와 남편뿐입니다.

한 달여 전입니다. 내가 게이트볼을 배우자고 하자 남편은 '새벽 수영을 다니는데 게이트볼은 뭘'하면서 일 년치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회비와 용구 장만 비용을 생각하고는 배우지 않겠다고 나왔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또 기왕이면 남편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 눈 딱 감고 부부회원 등록을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일을 저지르고 나자 남편의 태도가 싹 달라졌습니다.

게이트볼 회장이 연습하라고 스틱과 볼을 빌려주자 남편은 서울에서는 알아주는 게이트볼 심판이신 우리 동네 노인회장님에게 자세와 치는 법을 배우고 게이트볼의 기초에 관한 책도 빌려다가는 탐독하고 인터넷에서 이미지도 보고 틈틈이 둔치에 나가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저런 집안 일로 그런 남편을 별로 따라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간의 노력 때문인가 봅니다. 남편은 처음으로 경기장에 나온 실력치고는 꽤 잘합니다. 남편이 좋은 타격자세로 1번 게이트를 아주 가볍게 통과를 하자 회원들이 환호를 합니다.

"야아, 잘 하셨어요!"

남편은 쑥스러우면서도 신이 났던지 통과한 볼을 부리나케 쫓아가서는 또 칩니다. 볼은 안정감 있게 2번 게이트 근처에서 정지합니다. 또 한번 환호가 터졌습니다.

"아주 잘 하셨어요!"

회원들 입니다
회원들 입니다 ⓒ 김관숙
그러나 나는 1번 게이트 통과에 자꾸 실패를 했습니다. 왜 그렇게 볼이 게이트를 살짝 살짝 비껴만 달아나는지 나는 내 타순이 올 적마다 '야, 제발 좀 들어가 줘라' 하고 중얼거리면서 1번 게이트를 겨누고는 합니다. 아 나도 연습을 많이 할 걸.

다른 회원들은 모두 2번 게이트 쪽에서 환호를 터뜨리며 딱 딱 터치소리를 내며 아웃이 되기도 하는 등, 2번 게이트 쪽 라인 밖에서 자기 타순을 기다리고 있는데 나만 외롭게 혼자 1번 게이트 라인밖에 있습니다.

또 실패한 볼을 쫓아가서 집어 들고는 라인 밖으로 나오는데 2번 게이트까지 통과를 하고 자기 타순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내게로 옵니다.

"스틱이 너무 길어, 이리 줘봐 줄여줄게. 그리구 말야, 그렇게 차례만 기다리고 있지 말고 그 틈에 다른 회원이 치는 걸 잘 보라구. 그래야 경기규칙을 알게 되지."
"규칙은 책에서 공부했는데 뭘."

"그래도 실제로 봐야 해."
"왜, 달라?"

"그런 게 아니구 아무튼 봐 두면."
"알았어, 알았어 일절만 해."

아주 잘 하셨습니다
아주 잘 하셨습니다 ⓒ 김관숙

"이럴 땐요. 이렇게 하는거예요."
"이럴 땐요. 이렇게 하는거예요." ⓒ 김관숙
드디어 1번 게이트를 통과 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야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아, 그 순간에 기분, 그 기분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새 3번 게이트 쪽 라인 밖에서 자기 타순을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습니다.

'어, 잘했어!'

회원들도 '잘 하셨어요' 하고 합창을 합니다. 나는 날아가는 기분으로 볼을 쫓아가 정지한 볼을 2번 게이트를 향해 칩니다. 굴러가던 볼이 기대도 안 했는데 누군가에 볼을 딱 때리고 좋은 위치에 정지합니다. 아, 얼마나 재밌는지 모릅니다. 하루 종일 하고 싶습니다.

30분씩 3게임을 했는데 우리 팀이 3번 다 졌습니다. 초보인 나 때문에 진 것만 같아 경기 끝나고 음료수를 나눠 마시는데 남들 다 웃는 이야기에도 웃음이 안 나왔습니다.

경기를 해보니까 소문처럼 게이트볼은 간단하고 쉽게 배울 수가 있는 운동입니다. 별로 힘도 들지 않아 나처럼 나이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즐길 수가 있습니다. 경기 중에 많이 걷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정말 게이트볼 회원이 되기를 백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용구를 장만하지는 않았지만 스틱과 볼이 비싼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회원들의 충고대로 게이트볼에 많이 익숙해진 다음에 회원들에 조언을 받아 적당한 가격대의 것으로 장만을 하려고 합니다.

남편도 아주 재미있다고 합니다.
남편도 아주 재미있다고 합니다. ⓒ 김관숙
오늘 남편은 자구를 타격해서 세트한 타구를 라인 밖으로 내보낸(스파크 타격) 통쾌한 기분까지 맛보아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본 남편의 얼굴은 생기충천하고 속된 말로 십 년은 젊어 보입니다. 나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운동을 하면 젊어진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가 봅니다.

나도 그렇게 젊어 보일까. 나는 도로변에 주차해 있는 승용차로 가서 차창에 얼굴을 비쳐 봅니다.

"왜, 뭐 묻은 거 같애?"
"아니, 그냥 봤어. 근데 참 재밌지?"

"응. 회원들이 잘 가르쳐 준 덕에 재미를 안 거지."
"맞아, 다들 어쩜 그렇게 친절하게 나오는지 몰라."

"해서 말인데 다음번엔 말야 우리가 음료수 준비를 해가는 게 어때?"
"좋지."
"근데 좀 피곤해 보이네, 피곤해?"

젊어 보이기는커녕 피곤해 보인다면 더 늙어 보인다는 말인데, 아니 들으니만 못합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정말로 피곤해서 아무 말이 없는 줄 알았던지 내가 들고 가는 스틱을 슬며시 뺏어서 들고 갑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나는 게이트볼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연습을 자주 하다 보면 실력도 늘고 또 자연히 건강도 챙기면서 젊은 기분으로 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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