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마르둑씨는 인류에 대해서 사전에 상세한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과학문명의 힘을 빌었다고는 하지만 단순한 언어번역으로는 알 수 없는 다양한 문명을 가진 지구인과의 대화법을 알고 각 지역의 해당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더군요.”

마르둑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대답하려 할 때 남현수의 질문은 좀 더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마르둑씨가 짓는 웃음이라는 것도 ‘하쉬’행성에서는 사실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웃음이라는 것은 인간세상에서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단지 즐거워서 웃는 웃음도 있고, 상대를 깔보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짓는 웃음도 있으며 자신의 내적 심정을 감추기 위해 웃는 웃음도 있지요. 하쉬행성인 신체가 지구인들과 비슷하다고 해도 이러한 사회적 양상까지 흡사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요? 지구의 어느 소수부족은 슬플 때 웃고 기쁠 때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 잠깐, 잠깐만요.”

장광설로 이어지는 남현수의 말을 마르둑이 끊자 대담에 참가한 사람들은 오히려 잘됐다는 심정으로 마르둑을 바라보았다.

“전 문화인류학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마르둑의 농담에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웃자 남현수는 귀밑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전 지구인들을 기만하러 1천 광년이나 되는 거리를 냉동상태로 날아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고향 마르둑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모선에 상주하며 가끔씩만 제 앞에 얼굴을 비추는 세 명의 동료들은 심한 향수병 증세도 보이고 있지요. 하지만 저까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일종의 소명감 같은 것을 담고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이죠.”

마르둑의 말에 사람들은 숙연해 졌지만 남현수는 더욱 오기가 솟아올랐다.

“그렇다면 7만 년 전에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구에 온 것입니까?”

마르둑은 살짝 입주위의 근육을 펴며 남현수의 의중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남현수를 똑바로 바라본 후 손을 살짝 포개어 책상위에 올려놓은 채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고고인류학자인 남박사님께는 실망스럽겠지만 당시 저희들의 선조들은 인류의 선조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 기술적 문제로 인해 지구에 대해 깊이 있게 관찰하진 못 했지요.”

남현수는 자신이 의중을 넘겨짚어 말하는 마르둑의 말에 속으로 감탄했지만 여태까지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은 얘기를 할 기회가 온 것에 한편으로 기뻐했다.

“제가 그 말에 대해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힐 사실이 있습니다.”

남현수는 질문지 사이에 끼워놓았던 사진들을 꺼내놓았다.

“이 사진을 보십시오.”

남현수가 꺼내든 사진은 두개골일부와 갈비뼈일부, 그리고 한쪽 다리뼈가 남아있는 고대 인류의 화석이었다.

“이 사진은 제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발견한 7만 년 전 인류의 화석입니다. 물론 7만 년 전 인류의 화석은 중간화석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단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다리뼈에 난 상처입니다.

남현수는 화석의 다리뼈가 크게 확대된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다리뼈에는 희미하지만 약간 그을린 듯한 상처가 표시되어 있었다. 남현수는 마치 죄인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변호사인 마냥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전 이 상처를 분석하기 위해 스펙트럼 분석까지 의뢰했습니다. 여기서 질산칼륨성분이 검출되었지요. 그게 뭘 뜻하는 지 아십니까?”

마르둑은 남현수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남박사님이 이 자리에서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없군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