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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은 구름 속, 그 속에 피어 너울거리는 붉은 철쭉꽃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은 구름 속, 그 속에 피어 너울거리는 붉은 철쭉꽃 ⓒ 서종규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한 주를 보냈다. 지난 주에 찾았던, 남도 철쭉이 장관이던 일림산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다음 주에는 활짝 핀 철쭉꽃으로 붉게 물들 것이라는 철쭉 꽃망울들의 외침이 들렸고, 일림산을 다시 찾아 그 철쭉꽃 물결에 빠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유혹에 이끌렸다.

활짝 핀 철쭉꽃의 장관은 어떤 모습일까? 산봉우리들이 계속 붉은 철쭉꽃으로 뒤덮여 하늘까지 물들게 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떠할까? 꽃망울 사진만 찍어온 지난 주 일림산 기사에 대한 미련, 활짝 핀 일림산 철쭉을 반드시 찍어와야 할 것 같은 그 무언가가 마음을 더욱 죄어왔다.

그렇지 그 붉은 철쭉은 우리나라 산천에 자생하는 산철쭉이다.
그렇지 그 붉은 철쭉은 우리나라 산천에 자생하는 산철쭉이다. ⓒ 서종규
9일, 마음을 굳혔다. 내일 오후에 일림산으로 출발하리라. 그런데 저녁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한밤중엔 천둥 번개까지 세상을 울린다. 틀려버렸구나. 새벽에 눈을 떠보니 빗방울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5월 10일 점심 무렵부터 빗방울이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1시 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12명을 부추겨 광주에서 출발했다. 순전히 그 붉은 철쭉꽃들의 향연을 찾아 막무가내로 떠난 빗길 운전 여행이었다.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 봉우리엔 가득 붉은 산철쭉꽃이 너풀거린다.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 봉우리엔 가득 붉은 산철쭉꽃이 너풀거린다. ⓒ 서종규
보성과 장흥의 경계에 있는 일림산은 신록으로 너울거렸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온 산이 구름에 가득 싸여 있었다. 계곡에 흐르는 물은 어디나 폭포수가 되어 콸콸거렸다. 물줄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시원스럽게 떨어졌다.

오후 3시, 전남 보성군 웅치면 용추계곡에 도착했다. 한치재에서 일림산 정상까지는 5.4km의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그 길로 올라가는 건 무리였다. 더구나 몇십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의 산행이어서 멀리 있는 보성만이 보일 리 없다.

눈에 들어오는 구름과 붉은 철쭉꽃의 애무가 천상의 누각같다.
눈에 들어오는 구름과 붉은 철쭉꽃의 애무가 천상의 누각같다. ⓒ 서종규
용추계곡의 다리를 건너니 삼나무 숲이 나타났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숲에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날씨 때문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추계곡에서 일림산 정상까지는 3.2km 정도. 골치재를 지나 작은봉까지 약 1.7km를 올랐다. 용추계곡을 출발할 때에는 꽃잎이 다 떨어진 철쭉나무에 연한 녹색의 잎이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오르더니, 작은봉으로 오르는 길부터는 붉은 철쭉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오전까지 내렸던 빗방울이 아직 꽃잎들에 그대로 맺혀 있어서 '두두둑'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오전까지 내렸던 빗방울이 아직 꽃잎들에 그대로 맺혀 있어서 '두두둑'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린다. ⓒ 서종규
구름으로 가려 쉽게 허용하지 않은 철쭉꽃의 장관
구름으로 가려 쉽게 허용하지 않은 철쭉꽃의 장관 ⓒ 서종규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 속, 그 속에 피어 너울거리는 붉은 철쭉꽃. 그 붉은 철쭉은 우리나라 산천에 자생하는 산철쭉이다. 통칭 '철쭉'으로 불리는 꽃의 종류는 200가지가 넘는다. 그만큼 많은 철쭉꽃들을 개발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철쭉은 우리나라 산천에 가장 많이 자생하고 있는 꽃으로 우리가 어렸을 때 '개꽃'이라고 이름붙였던 꽃이다. 진달래는 잎이 나기 전에 꽃만 피어 화전(花煎)으로 먹을 수 있었기에 '참꽃'으로 불렸고, 산철쭉은 잎이 난 뒤에 꽃이 피면서 독성이 강해져 먹을 수 없는 꽃이라 하여 '개꽃'으로 불렸다.

구름이 앞을 가려 봉우리도 보이지 않고, 능선 아래도 보이지 않고, 오직 산철쭉꽃 사이로 난 길만이 앞에 드러났다. 구름이 머무르고 있는 봉우리 가득, 붉은 산철쭉꽃이 너풀거린다.

일행들은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일행들은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 서종규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오면, 오전까지 내렸던 빗방울이 아직 꽃잎들에 그대로 맺혀 있어서 '두두둑' 물방울 듣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들어오는 구름과 붉은 철쭉꽃의 애무가 천상의 누각같이 보였지만, 사진으로 찍으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저 멀리 봉우리들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그 많은 구름에 가려 흐릿한 모습만 화면에 가득하니, 이 붉은 철쭉꽃의 향연을 무슨 수로 다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인가. 일행들은 사진 찍어달라는 말도 않고 입을 다물었다.

사방은 구름으로 가득하고, 내 몸은 구름이 되어 붉은 철쭉 위에 머무르네.
사방은 구름으로 가득하고, 내 몸은 구름이 되어 붉은 철쭉 위에 머무르네. ⓒ 서종규
오후 4시 30분, 일림산 정상(667m)에 올랐다. 사방은 구름으로 가득하고, 내 몸은 구름이 되었다. 붉은 철쭉꽃 위를 스치며 날아갔다. 저 멀리 있는 제암산도, 남해 바다인 보성만도 모두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단지 사방 몇 미터에 붉은 꽃잎들만 가득 나풀거렸다.

일림산 정상에서 한치재로 가는 능선에 붉은 철쭉꽃이 가득한데, 도중에 용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지난 주 능선에 가득했던 수많은 꽃망울들이 활짝 피어 흔들거리고 있는 장관, 그 절경을 다시 찾은 내 마음은 내려가는 발길을 붙잡아두려고 하였다.

아, 한 순간, 휘날리던 구름 사이로 살며시  저 멀리 보성만에 두둥실 떠 있는 섬들이 드러나고
아, 한 순간, 휘날리던 구름 사이로 살며시 저 멀리 보성만에 두둥실 떠 있는 섬들이 드러나고 ⓒ 서종규
아, 한 순간! 휘날리던 구름 사이로 살며시 드러난 일림산의 한 봉우리, 그 봉우리 가득 펼쳐진 붉은 철쭉의 장관, 그리고 저 멀리 보성만에 두둥실 떠 있는 섬들, 하늘이 내게 허용한 찰나의 시간. 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오후 6시 다시 용추계곡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무언가 허전해 다시 찾은 철쭉의 장관 일림산, 그러나 구름에 가려 쉽게 다가설 수 없던 철쭉꽃의 장관, 그렇지만 순간의 시간 동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행운. 나도 이제 서서히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어가나 보다.

휘날리던 구름 사이로 살며시 드러낸 일림산의 한 봉우리, 그 봉우리 가득 펼쳐진 붉은 철쭉의 장관
휘날리던 구름 사이로 살며시 드러낸 일림산의 한 봉우리, 그 봉우리 가득 펼쳐진 붉은 철쭉의 장관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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