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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칼로스쌀로 지은 밥(왼쪽)과 우리쌀로 지은 밥
ⓒ 김정혜

"밥맛이 괜찮다고요? 아니던데…. 얼마 전 호기심에 한 포대 샀다가 맛없어서 그 쌀로 떡 해먹었잖아요."

얼마 전 딸 아이와 함께 소아과에 갔을 때였다. 진료 차례를 기다리던 몇몇 엄마들이 수입쌀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 엄마가 수입쌀을 먹어봤다는 것이다. 그런대로 밥맛이 괜찮다는 그 이야기에 모여 앉은 엄마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아무리 수입쌀이 맛있다고 해도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 쌀을 먹어야 우리 농촌이 살지요."
"그건 그렇지만, 안 그래도 살기 어려운데 가계에 도움이 된다면 못 먹을 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수입쌀로 지은 밥이 맛있을 때 이야기죠. 밥맛 없으면 아무리 싸도 소용없을 거예요, 아마."

주부들의 고집 "내 가족에게 맛좋은 밥을"

한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쌀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맞는 말이고 가계에 도움이 된다면 수입쌀이긴 하지만 먹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고집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수입쌀이든 우리 쌀이든 밥맛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입쌀이 아무리 싸더라도 밥맛이 좋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내 가족에게 맛좋은 밥을 먹이고픈 마음. 그건 대한민국 주부의 공통분모일 것이다.

수입쌀인 미국산 칼로스가 지난 4월부터 시판됨에 따라 그에 대한 언론 보도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보도의 한 가지 공통점은 미국산 칼로스가 우리 쌀 시장에서 외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찰을 거듭하며 저조한 낙찰률을 보이고 있고 양재동 양곡도매상엔 수입쌀을 반품하려는 소매상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 한 인터넷경매 사이트에서 파는 칼로스쌀. 20kg 3만 7천원에서 1주일만에 3만원대로 떨어졌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볼 때 수입쌀이 우리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 신문은 "값싸고 품질좋은 칼로스 쌀이 국내 시장을 초토화할 것이란 공포는 결국 기우였다"고 성급한 결론까지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산 칼로스가 이처럼 외면당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바로 밥맛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들어온 미국산 칼로스는 밥맛에서 우리 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칼로스쌀 주부 체험단'을 조직하다

도대체 미국산 칼로스로 지은 밥맛은 어떨까? 직접 먹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냉정한 평가를 내려보고 싶었다.

나 혼자보다는 아무래도 여러 사람의 객관적인 평가가 투명할 것은 분명한 일. 해서 지난주 딸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부탁하여 주부 10명이 '칼로스쌀 체험단'에 동참하기로 했다. 다른 식구들에겐 수입쌀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반응이 어떤지 냉정하게 평가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음은 물론이다.

집 근처 양곡소매상이나 대형할인점에선 아직 수입쌀을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나 살 수 있음을 알았다. 지난 8일 가격은 10kg에 1만7천원대(15일 현재 1만5천원대). 국산 쌀의 평균가격을 따져 볼 때 대략 2천원 정도 싼 가격이었다.

주문한 지 이틀 만에 수입쌀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우리가 산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쌀로 생산연도는 2005년이었고 도정일은 2006년 3월 2일로 되어 있었다.

▲ 10가족에게 나눠준 미국산 칼로스쌀.
ⓒ 김정혜
먼저 쌀알을 손바닥에 한 줌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쌀 상태는 아주 깨끗해 보였다. 반면 윤기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2일 도정을 했으니 벌써 70일이 넘었다. 수입쌀이 선박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기까지 최소한 40일이 걸린다고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우리 쌀의 도정 경과 기간은 평균 2주라고 한다. 우리 쌀에 비해 윤기가 없고 쌀이 말라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쌀은 타원형으로 통통한 반면 수입쌀은 길고 홀쭉한 것이 크기가 우리 쌀 두 배는 됨직했다. 또 약간 노르스름한 우리 쌀에 비해 수입쌀은 하얀빛이 났다.

문득 군것질거리가 여의치 않던 어린 시절 엄마 몰래 집어 먹었던 생쌀의 그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생각나 조금 집어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그러나 너무 야문 탓인지 잘 씹히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자 싸라기처럼 부서지는 것 같더니 온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씹으면 씹을수록 달짝지근한 단맛이 배어 나오던 그 옛날 생쌀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까다로운 아버지 "와 이리 매가리가 없노?"

▲ "밥이 와 이리 매가리가 없노" 칼로스 쌀밥을 드신 아버지의 한마디.
ⓒ 김정혜
그날 저녁밥을 하려고 쌀을 씻는데 쌀뜨물부터 우리 쌀과 다른 것을 느꼈다. 진하고 뿌연 우리 쌀의 쌀뜨물은 된장을 끓이거나 여러 가지 국을 끓이는 데 아주 유용하다. 반면 수입쌀의 쌀뜨물은 아주 맑고 깨끗했다.

도정 기일이 오래된 탓에 밥물의 양을 조금 많이 하여 밥통 스위치를 눌렀다. 밥이 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쌀은 밥이 끓기 시작하면 구수한 밥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는 반면 수입쌀은 전혀 밥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밥이 다 되고 밥솥뚜껑을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릇에 밥을 푼 상태에서는 우리 쌀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것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저녁상을 사이로 친정 부모님과 딸아이가 둘러앉았다. 한 숟가락 입에 넣어 보았다. 첫 느낌! 별다른 것이 없다. 반찬 없이 밥만 꼭꼭 씹어 보았다. 그 또한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밥그릇이 반이나 비워졌다.

그 때쯤 뭔가가 느껴졌다. 밥이 싱겁다.

우리 쌀로 금방 지은 밥은 밥만 먹어도 맛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쫀득쫀득한 맛이 입안에 감기는 것처럼 고소하고 달짝지근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미국산 칼로스쌀로 지은 밥은 뭔지 모르게 싱겁다. 아무리 씹어도 밥맛이 밍밍하다.

그 때 친정아버지께서 명쾌한 한마디로 밥맛을 표현하셨다. "밥이 와 이리 매가리가 없노."

즉, 맥이 없다는 말은 밥에 힘이 없다는 뜻이다. 삼시 세끼 밥이 보약이라며 모든 힘의 근원은 밥힘이라 굳게 믿고 계신 아버지다. 늘 드시던 밥이 아님을 퍼뜩 알아채는 아버지의 그 입맛이라면 미국산 칼로스에 대한 밥맛도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나흘쯤 더 아버지의 입맛을 확인하고 싶어 미국산 칼로스의 정체를 굳이 말씀드리지 않았다.

미국산 칼로스로 밥을 해먹은 지 사흘째. 끼니마다 아버지는 밥맛이 이상하다고 타박아닌 타박을 하셨다. 특히나 미리 해놓은 밥으로 점심상을 차렸을 땐 밥을 반이나 남기셨다. 친정어머니와 딸아이는 하루가 지나서야 밥맛이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맛이 없느냐는 내 질문에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했다.

▲ 미국산 칼로스쌀(왼쪽)과 우리쌀. 칼로스 알곡 크기가 조금 더 크다.
ⓒ 김정혜
우리 쌀이 7-3 판정승, 그러나 아직 마음 놓긴 일러

미국산 칼로스를 나누어 먹은 엄마 10명의 의견과 우리 식구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칼로스 쌀은 우리 쌀보다 쫀득쫀득한 맛이 없었다. 즉, 밥이 끈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차이는 전분의 일종인 아밀로스 성분 때문이다. 이 성분이 적을수록 밥이 찰진데 미국산 칼로스는 우리 쌀에 비해 아밀로스 함량이 높다. 그 외 의견으로는 ▲구수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밥이 푸석거린다 ▲밥맛이 싱겁다 ▲밥에서 약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등이 나왔다.

다른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별다르지 않다. 덧붙인다면 저녁에 미리 지은 밥을 아침에 먹었을 때, 밥은 겉으로 보기에 표가 날 정도로 풀기가 없이 푸석거려 보였고 먹었을 때도 역시나 씹히는 맛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보온 상태가 아닌 찬밥으로 다음 끼니를 먹었을 때는 오히려 쫄깃한 맛을 내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 10명이 다 같은 결론을 낸 것은 아니다. 엄마 3명은 밥맛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더불어 수입쌀 값이 많이 떨어진다면 사먹을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기나긴 싸움, 우리 쌀의 경쟁력은

바야흐로 수입쌀과 우리 쌀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초반 기세 싸움에서 수입쌀이 우리 쌀에 밀린 듯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놓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단, 승부에서 끝까지 이길 수 있는 것은 품질 경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보다 앞서 중요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대한민국 주부의 마음이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윤기 자르르 흐르는 좋은 쌀로 지은 하얀 쌀밥을 내 부모, 내 남편, 내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대한민국 주부의 소박한 마음. 그것이 결국 수입쌀에 맞설 우리 쌀의 가장 큰 경쟁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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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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