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미관계는 최소한 대북정책으로 한정한다면 격랑에 휩싸인 것 같다. 미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4일 KBS TV에 출연해 "남북정상회담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안에, 연내에 개최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과거보다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일 몽골을 방문중이던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면 북한도 융통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싶어 상당히 기대를 갖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음 달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다"며 "미국과 주변 국가들 여러 가지 관계가 있어 정부가 선뜻선뜻 할 수 없는 일도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저도 슬그머니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원칙적 찬성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의지는 보여주지 않았던 노 대통령의 언급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지난 11~12일 남북한 정부는 개성에서 제12차 남북철도·도로연결실무접촉을 열었다. 양국은 열차 시험운행을 5월 25일 경의선·동해선에서 각각 실시하기로 했다. 경의선은 서울과 북한 압록강가에 있는 신의주를 연결하는 철도고 동해선은 북한의 함경남도 안변과 남한 강원도의 양양을 잇는 노선이다.
그동안 남북은 지난 2004년 10월, 2005년 10월 등 두 번이나 철도 시험운행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회피하면서 무산됐다. 두 철도가 군사분계선을 지나는데 안보상의 문제를 들어 북한 군부가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따라서 만약 이번 25일 철도 시험 운행이 실제로 실시되고 더 나아가 오는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철도를 통해 방북한다면 이는 남북이 물리적으로 연결되었음을 상징하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3년 넘게 계속된 한·미 관계 이상설
노 대통령이 몽골 발언을 하던 날 개성공단을 방문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개성공단사업은 반드시 성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대북인권특사가 개성공단을 비판한 것에 대한 맞대응으로 볼 만한 발언이었다.
이런 남한 정부의 움직임은 야당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진영에서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한미관계 이상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대북 인권 특사는 여러 번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즉 한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을 돕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대단히 강경한 것이다.
즉 미국은 북한이 위조 달러 제조 등 불법 활동으로 돈을 버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개성공단 등을 통한 합법적인 돈벌이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김정일 정권 교체 의도는 없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최근 태도는 김정일 정권을 '질식사'시키려는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레프코위츠 특사의 발언이 부시 행정부 내의 일부 강경파의 견해일 뿐이라고 일축해왔다. 그러나 <조선일보>에 따르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11일(미국 시각) 미 하바드 대학 강연에서 "개성공단의 노동조건은 비단 제이 레프코위츠 북한인권특사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최근 탈북자 7명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지난 4월 말 망명을 허용받은 서재석씨는 "남한 사회의 탈북자들에 대한 냉대와 차별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서재석씨의 의견은 개인적이다. 그러나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을 망명자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동안 탈북자 7000명을 받아들였으며 이는 남한 정부가 북한 인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던 남한 정부를 충분히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마치 한미 정부는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한미관계를 침착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의 튀는 행동 때문에 한미동맹이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은 지난 2003년 2월 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만 3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한·미 정부 마주 달리는 것 같지만...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주한미군은 철수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나라다. 또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평택으로 이전하는 주한미군에게 기지터를 내주기 위해 한국 정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현지 주민들을 쫓아냈고 이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현 한국 정부의 한미관계에서 주의해 볼 것은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미분값과 적분값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분을 하면 항상 대립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적분을 하면 서로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과 김 전 대통령의 방북 등 일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미간의 갈등이 끝까지 '충돌'로 기록될지 현재로서 판단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한승주 전 주미 대사의 발언은 시사적이다. 그는 1993~94년 김영삼 정부 때 외무부 장관을 지냈고, 2004~2005년 주미대사를 지냈다. 한 전 대사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의 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은 때로는 보수진영과 갈등을 빚었다. 한 전 대사는 지난 9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한미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질문 참여정부 들어 '자주 대 친미'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답변 "레토릭(수사)과 실제 행동 간에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이 정부가 들어설 때 자주와 친미로 양분화하고 심지어 숭미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결국 행동으로는 이라크 파병도 했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인정했다. 요즘엔 한·미 자유 무역협정(FTA)협상까지 시작됐다. 이런 변화는 우리나라 외교정책노선의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자주성을 수사적으로 강조한 것이 역설적으로 현실적인 외교를 하는 데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미국사람들에게 늘 하는 얘기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FTA를 추진할 수 있고,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고, 이라크 파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자주적이고 역설적인 레토릭을 썼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가 한편으로는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미국 측에서 볼 때 이런 흐름은 껄끄러울 수 있겠지만 미국도 2004년 말쯤부터는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질문 노 대통령의 화법을 미국이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얘긴가?
답변 "미국이 우리 쪽에서 나오는 레토릭을 실용적으로 소화해내면서 그것의 긍정적 측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레토릭상으로 자주적인 입장을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실용적인 정책을 펴는 것을 미국이 이해하게 되면서 실무적 관계를 잘 유지해나가는 것 같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나 똑같이 강조하는 것이 북한의 6자 회담 복귀다. 물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과 과정이 일부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목적이 같다면 수단에 있어 일부의 차이는 크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