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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 문제로 철도 현장이 뒤숭숭하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아픔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복잡한 뇌관을 마치 철도가 안고 가는 모습 같아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다. 이쯤에서 원만하게 마무리되었으면 한다.

20년 동안 현장에서 오직 철길만 달려온 직원이 CEO(이철 철도공사 사장)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나 다행인지 얼마 전부터 CEO를 지근거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밖에서 막연하게 생각해온 CEO와 직접 겪어 본 CEO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강렬한 파동이었고, 그 파동의 흔적을 따라 두서없이 적어본다.

물론 이 글의 이면에는 철도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또한 없지는 않다.

애초부터 직원이라는 한계 때문에 글의 방향이나 주제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도 미리 고백해 둔다. 아울러 '목적성 글' 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매우 조심스럽다. 글의 진실성과 객관성을 염두에 두고 본 대로 느낀 대로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두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철 사장, 낙하산 인사!"

▲ 지난 4월 25일 동해지역 현장 순회 때 사북역에서 이철 사장.
ⓒ 김만년
작년 이철 사장의 CEO 부임당시 몇몇 언론의 첫 일성이 "이철 사장, 낙하산 인사!"였다. 아주 지당한 표현이다. 내가 보기에도 낙하산 인사임이 분명했다.

원래 '낙하산'이라는 말은 군사용어이다. 전세가 불안한 지역이나 전략요충지에 특수임무를 띤 잘 훈련된 부대를 기습적으로 투입시켜 전세를 일시에 역전시키는 최정예 부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철 사장의 부임 당시에 철도는 전세가 가장 불안한 지역이었고, 그렇다고 국가적으로 포기될 수 없는 전략요충지임에 분명했다. 한마디로 거대한 공룡이 만성적인 부채와 조직의 동맥 경화증으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에서, '유전 게이트'라는 핵폭탄을 한방 더 얻어맞은 꼴이었다.

"300키로 쾌감질주, KTX 타고 부산까지 삐까번쩍 달리면 뭐하나"라며 전의를 상실한 3만2천 직원들의 우울한 절망감만이 각 역사마다 짙게 깔려 있을 때, 마침 이철 사장이 낙하산을 타고 전격 투입된 것이다.

철도라는 변방에 공사라는 화려한 옷을 입혀 놓았지만, 한해 동안 뼈빠지게 벌어 '고속철 이자'를 갚고 나면 쪽박 차기에 딱 맞는 꼴이 그때까지의 철도현실이었다.

이 기막힌 현실을 제일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철도직원들이었다. 왜냐하면 장밋빛 미래로 부풀려진 예산과 인원이 대폭 삭감되면서부터 그 불운한 징조가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냉정했다.

"공익성 유지-이윤창출-10조원 빚 갚기", 이렇게 상호 모순된 구조 속에서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를 몇몇 언론들은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분위기였다.

적자가 나더라도 철도의 공공적 목적은 그대로 유지하라. 자구노력을 통해 이윤을 최대한 남겨 고속철 건설부채도 갚아라! 제발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수탉이 알 낳기를 기대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철 사장은 부임 즉시 철도망을 따라 전국 투어에 들어갔다. 빠르게 전황을 파악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흐트러진 전열을 역동적으로 재정비해 나갔다.

'관료형 조직-기업형 조직'으로 재구축, '실명제 도입'으로 투명경영 토대마련, '책임 경영제 도입'으로 수익구조 개선, '지사제 도입'으로 인력 효율성의 극대화 등 폐허로 숯덩이가 된 전쟁터에 묵은 서까래를 걷어 내고 새 기둥을 당차게 세워나갔다.

막연한 구호성 전시행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과연 특수임무를 띠고 투입된 낙하산 인사다웠다.

한편으로는 그때까지 쉬∼쉬∼ 묻어두었던 철도 부채문제를 드러내 놓고 각계에 호소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곪은 것은 터트려야 한다는 논리였다. 고속철도 건설과정에서 생긴 10조원의 부채는 공익성을 위한 국가 인프라 사업임으로 그 절반이라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요지였다.

모처럼 철도에도 희망의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자구노력과 관련해 고용불안을 느낀 현장직원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내가 본 이철은 '철인(鐵人)'"

▲ 동해지역 현장순회 때 시설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는 이철 사장.
ⓒ 김만년
내가 이철 사장을 직접 본 것은 이때쯤이었다. 이철 사장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다름 아닌 '철인(鐵人)' 이철이었다. CEO의 주간 일정표를 보는 순간 나는 혀를 내둘렀다.

각종회의 주재, 현장투어, 철도관련 경영세미나 주최 등등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일정이 전투상황을 방불케 했다. 단 십 분의 여흥 시간도 없이 언제나 진지했고, 꼼꼼했고, 그리고 자신에게 엄격했다.

관성적인 추측으로 정치적인 행보나 하며 적당히 임기나 채우고 가는 철새 CEO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헌신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당찬 체구로 동서남북을 전방위로 종횡무진 누볐다.

지난 13일 새벽 3시,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들과 3시간에 걸쳐 심야 대화를 나누고 사장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승용차에 올랐다. 차창 가에 비친 CEO의 얼굴에서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을 위해서, 누가 알아준다고…' 이런 얕은 생각이 한순간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처음 사장 제의가 들어왔을 때,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철도는 덤터기 쓰는 자리라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못난 자리라고 안가면 그 또한 옹졸한 사람 아닙니까. 어디든지 내가 필요한 곳이 있고 또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응당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사석에선가 고백했던 CEO 이철 사장의 말에서처럼 지금 그는 덤터기를 쓰는 자리에 와서, 옳다고 믿는 일이기에 국민의 철도, 희망이 있는 철도를 만들기 위해 밤낮 없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융통성이 없고 고집불통에다가 무뚝뚝하기까지 한 그의 행보가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간다.

'낙하산 인사!'. 이 부정적인 단어를 이철 사장은 지금 긍정의 단어로 되돌리고 있다. 위기의 '철도 구하기'에 전격 투입된 이철 사장에게는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KTX 여승무원 문제, 경영정상화문제, 부채문제 등 산적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잃어버린 대륙 저 너머 민족의 애환이 서린 상상의 땅도 반드시 복원하기를 바란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로 가는 꿈의 횡단철도시대의 서막을 열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鐵人(철인) 이철'로 우리 철도인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만년 기자는 현재 철도공사 홍보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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