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주화 역사는 4개의 핏빛 징검다리를 건넜다.
4·19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1991년 5월 투쟁. 징검다리를 건널 때마다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많은 '피의 대가'를 요구했다. 사람들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거나 때론 분신과 투신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다.
그 중에서 1991년 5월에는 유독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몸을 던져 한 떨기 꽃으로 흩어졌다.
시신을 곁에 두고 돌멩이와 최루탄이 오갔다
기폭제가 된 것은 4월 26일 노태우 정권 타도와 학원자주화투쟁 과정에서 진압 경찰에 맞아 죽은 고 강경대 열사. 그는 이날 백골단 5~7명에게 쇠파이프로 전신을 구타당하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숨을 거뒀다. 5월 투쟁의 뇌관이 점화되는 순간이다.
사건 이후 29일 전남대 박승희씨를 시작으로 5월 1일 김영균(안동대), 3일 천세용(경원대), 8일 김기설(전민련 사회부장), 18일 이정순씨 등이 차례로 분신해 민주화의 파편으로 사라졌다.
강경대의 주검을 망월동 묘역에 안장시키려는 것에 대해 노태우 정권은 도리질을 치며 반대했다. 5월 14일 서울에서 막았고, 다시 19일 광주에서 막아섰다.
아래 사진은 18일에 장례식을 마친 후 19일 도착해 광주 나들목에서 저지당하는 장면들이다. 결국 시신은 하루를 꼬박 싸우고 난 후 20일에야 안장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모레면 강경대 열사가 숨진 지 15년이 된다. 외람되게 그 때는 유해를 곁에 두고 돌멩이와 최루탄을 던져대는 비극을 연출했다. 망월동 가는 길이 참 멀었던 때다.
아직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았는데
(…전략)"제폭구민" 연두빛 경제학과 과 티가
유난히 너의 얼굴과 잘 어울려
임마 인물 났어 하면서도
이제 막 풋내 나는 대학 새내기
버팀목 되어 줄 친구 서로 만났다고
단단한 어깨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했는데
그러나 주어지지 않았다. 그럴 시간조차 너에게는
팔베개하며 전공책 넘길 때
까맣게 달아나곤 하던 봄햇살 손끝으로 가리키며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
보듬고 배우고픈 많은 것들 눈짓으로 나누던
그런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간
네가 누렸어야 할 정당한 시간조차
너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너는 빼앗겨 버렸다.
사랑할 것이 너무도 많은데
교정을 비추던 5월의 햇살, 강의실,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사랑할 것이 이다지도 많이 네겐 남아있는데
강탈당했다 산맥같은 스무 해
4월 26일 네 젊음 갈기갈기 찢긴 그 날
- 강경대열사추모사업회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새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고 김남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