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 수가 많더라도 제대로 정리해놓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가치는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그 수는 적더라도 완벽하게 정리해놓은 장서는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식도 이와 마찬가지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글쓰기의 전제로 '삼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라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저자는 '다독'을 경계한다. 그는 '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라고 거침없이 표현한다. 서점가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종류의 책들이 출판되어 나오고 또한 그 책을 독자들은 소비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사고와 사색의 정신이 없이 책의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짙다. 그는 습관적인 책읽기를 하고 있는 독서가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서가 아니고 많은 지식을 섭렵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그것은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작지만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글쓰기와 문장론에 대한 뚜렷한 주장과 명쾌한 논리가 흡인력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감흥을 준다. 저자의 말을 더 들어보자.
"습득을 통해 얻어진 진리는 다른 여러 가지 지식과 결합시켜 비교할 필요가 있으면 이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완전한 의미에서 자신의 것이 된다. 그리고 완전하게 내 것이 된 지식을 원하는 사상에 맞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그리고 독서와 학습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색은 주관적인 개달음이다."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은 그의 저작 목록에는 들어있지 않은 책으로 그의 인생론집과 사색, 독서, 저술과 문체에 관한 부분을 옮겨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어서 그런지 짧은 문장 속에서 버릴 것이 없다. 간결한 문장과 명쾌한 논리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사색 없는 독서의 위험성과 비효율성, 쓸데없이 쓰레기만 생산해내는 작품과 평론, 글쓰기와 문체, 책상머리 바보, 참신한 소재와 진부한 소재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색하는 인생은 남다르다'고 말하는 쇼펜하우어는 "독서로 삶을 허비하는 것은 여행 안내서를 통해 어떤 지방의 풍속에 정통해지는 여행 안내인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안내인들은 그 지방의 풍물과 역사를 빠짐없이 알고 있지만 정작 그곳의 토지가 어떤 상태인지, 봄에는 어떤 꽃이 피는지, 겨울이 되면 눈은 얼마나 오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반면에 사색하는 인생은 '자신의 두 발로 그 지역을 직접 여행한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정신이 보여주는 특징은 '판단을 결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힘으로 결정한다고, 그것이 사색한데 따르는 결과라고 강조하고 있다. 글쓰기는 곧 자신의 사색을 녹여서 써야 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독서와 글쓰기는 어떤가. 얼마나 사색을 녹여서 글을 쓰는가.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으리라. 내 자신은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하리라. 쇼펜하우어는 '책을 통해 습득된 사상은 묘비에 글을 새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저술가에겐 두 가지 타입이 있다고 말한다. 사물의 본질을 밝혀내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 무언가를 쓰기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첫 번째 타입의 저술가는 '고유한 사상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글쓰기의 가치를 두는 사람이며, 두 번째 타입은 '돈을 목적으로, 즉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 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타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