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하동 야생 녹차밭.
하동 야생 녹차밭. ⓒ 정호갑
녹차를 마시니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스스로 녹차 체질이라 여기며 차를 가까이 하고 있다.

이렇게 멋모르고 차를 마시기 시작한지 20년이 흘렀다. 차를 마시는 시간은 행복하다. 커피와 달리, 차는 함께 마셔야 제 맛이 난다. 물을 부어 식히고 그리고 우러나오길 기다리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같은 생각에 흐뭇하고, 또 나와 다른 생각에 나의 부족함을 메운다. 주위의 벗들은 우리 집을 찻집이라 불러주며 찾아와 차 한 잔을 나누니 그 또한 고맙다.

그러다 3년 전에 중국에 갔다. 중국은 '차의 나라'였다. 우롱차, 보이차, 말리화차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우리보다 많이 싸서 좋은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이런 나를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면서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차에 욕심을 내어 6개월 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차를 사서 가지고 왔다.

3년만에 돌아오니 한국은 '넉넉살이(웰빙)'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맞게 언론에서는 녹차의 효용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제 녹차는 차뿐만 아니라 먹거리(식초, 국수, 냉면, 만두, 녹차 삼겹살), 화장품, 목욕 등등에 이르기까지 그 효용이 끝없이 개발되고 있다.

녹차는 우리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많이 마신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일본 녹차는 빛깔이 탁하여 정이 들지 않고, 중국 녹차는 향과 맛의 깊이가 엷어 손이 가질 않는다. 반면 우리 녹차는 맑은 빛깔에, 은은한 향 그리고 깊은 맛이 좋다.

이런 나에게 '하동 야생차 축제'가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하동 차시배지에서 열린다고 하니 안 가볼 수가 있겠는가? 마침 나의 이러한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직장도 임시 휴일이다. 야생차 축제라는 말에 3년 전의 입맛이 그대로 살아 전해 온다. 녹차의 맑은 빛깔과 그윽한 향이 나의 몸에 스며드는 듯하다.

하동 가는 길에는 이러한 나무숲 맞뚜레(터널)가 몇 군데나 있다.
하동 가는 길에는 이러한 나무숲 맞뚜레(터널)가 몇 군데나 있다. ⓒ 정호갑
하동읍을 지나 섬진강에 들어서니 나무 향기, 나무 숲 맞뚜레(터널), 섬진강의 맑은 물결과 하얗고 고운 모래에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이렇게 길에서부터 차를 마실 마음의 준비를 마련해 준다.

하동 야생 녹차를 판매하고 있는 전시장.
하동 야생 녹차를 판매하고 있는 전시장. ⓒ 정호갑
축제에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다구(茶具), 솟대, 녹차 묘목, 먹거리 장터 등등 둘러보는데, 다정한 웃음으로 반겨주는 녹차 전시장에 들려 차를 마신다. 맑은 빛깔, 은은한 향, 그리고 깊은 맛이 좋다. 잊혀졌던 그 맛이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

이곳에서 차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윤권진씨(명성농원 대표)에게 하동 녹차의 특징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하동 녹차는 다른 곳과 달리 야생차이며 그리고 수제차이기에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어떤 맛이냐는 물음에 "은은하고 깊은 맛이라고 할 수밖에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며 웃는다.

오늘은 축제라 평소보다 가격을 싸게 준다는 말에 조금 무리하여 녹차 가운데 가장 좋다는 '우전' 한 통을 샀다. 당분간 중국차를 뒤로하고 그리움에 젖은 하동 녹차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 절로 즐겁다. 또 이리저리 기웃거린다.

축제장에서 팔고 있는 하동 재첩.
축제장에서 팔고 있는 하동 재첩. ⓒ 정호갑
섬진강의 재첩에 발길이 머문다. 간에 좋다기에 다른 곳에서도 많이 먹어보았지만 그 맛이 옅어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먹는 재첩은 그 맛이 진하다. 이른바 '진국'이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을 해 주기에 샀다. 또 택배도 된다고 하여 명함을 받아 두었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 ⓒ 정호갑
이렇게 돌다 보니 식사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주위에 들어가 재첩국과 은어로 요기를 하고 다시 둘러본다. 영호남의 화합을 상징하는 화개장터에 들어서니 지리산에서 나는 많은 약초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집사람은 둥글레, 벌나무, 헛개 열매, 칡을 산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니 나의 건강에 마음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곳 인심 또한 넉넉하여 말 한 마디만 잘 하면 값도 깎아주고, 덤도 많이 준다. 넉넉한 인심에 절로 넉넉살이가 된다.

화개장터에 팔고 있는 약초들.
화개장터에 팔고 있는 약초들. ⓒ 정호갑
하동 야생차 축제에 하동 녹차를 이렇게 소개하여 놓았다.

하동 화개는 우리나라 차시배지로 차 재배에 알맞은 기후와 토질을 갖고 있다. 다경(茶經)에 차나무는 바위틈에서 자란 것이 으뜸이라 했는데 하동의 차나무는 경사진 골짜기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야생의 것들로 직근성으로 뿌리가 곧게 내리기 때문에 옮겨 심으면 죽어 옛날 여자가 시집갈 때 차씨를 정절의 상징으로 혼수 속에 담아 갔다.

맑은 빛깔, 은은한 향, 그리고 깊은 맛에 곧음까지 갖춘 하동 녹차에 취한 넉넉한 하루였다. 나의 삶에는 이러한 녹차 맛이 언제 스며들런가?

덧붙이는 글 | <하동 야생차 축제>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 하동 차시배지(쌍계사)에서 열립니다. 가는 길도 아름답고 축제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넉넉살이(웰빙)가 절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묵은 때를 벗기고 마음을 다시 맑게 다스리기 위해 한 번 가보시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소개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