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문이당
“엄마. 뭐 해요?”
“흰머리 뽑아. 이놈의 흰머리가 언제 이렇게 소복하게 나왔을까.”

“흰머리가 그렇게 많아요? 그럼. 엄마 조금 있으면 할머니 되는 거예요?”
“그래. 할머니 되는 거야. 그러게 엄마 말 좀 잘 듣지. 네가 말 안 들어서 엄마 흰머리 이렇게 많이 생긴 거야.”

“알았어요. 이제 착한 딸 될게요. 엄마는 착한 딸이 제일 좋다고 했으니까.”
“그래. 우리 딸, 제발 착한 딸 좀 돼줘.”

“그런데 어떤 딸이 착한 딸 이예요?”
“착한 딸? 아빠 엄마 말 잘 듣는 딸!”

올해 여덟 살인 딸아이. 요즘 들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할만큼 말을 안 듣는다. 무슨 말이든 또박또박 토 달기는 예사다. 거기다 시키는 일도 고분고분 하는 법이 없다. 얼마 전. 지나가는 말로 딸아이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너 땜에 흰머리가 퐁퐁 솟는다. 솟아!’

아닌 게 아니라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물론 새치긴 하지만. 그나마도 새치까지 볼모로 삼아 아이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자행하는 나란 사람. 엄마로서 참 한심스럽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수록 엄마로서의 역할이 점점 더 어려워지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자식. 애물단지라 했던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행복과 불행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녀석. 정말이다. 건강하고 착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좀 더 은밀히 말하면 부모의 기대와 꿈을 져버리지 않고 잘 자라주면 좋겠다. 그 자식이 바로 착한 자식이니까.

그런데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기대와 꿈을 펼치는 걸까. 그 기대와 꿈이 온전히 자식만을 위한 것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부모 스스로를 위한 기대와 꿈은 아닐까.

언제였던가. 오전 한때 대한민국 엄마들을 모조리 TV앞으로 모여들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성호 교수였다. 교육열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대한민국 엄마들. 그런 엄마들에게 그 어려운 아이들 교육문제를 어찌나 재미나게 들려주던지 한마디로 유쾌 상쾌 통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 아이는 꼭 저렇게 키워야지.’그런데 그 ‘저렇게’가 어렵다. 그저 순리대로 키우라는 교수님의 충고가 아직 귓전에 윙윙거리건만, 그 순리라는 게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이성호 교수의 <자녀교육의 비법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이 교수의 예전 그 방송을 마치 다시 보는 듯 하다.

저자는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기대와 꿈속에 몇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단, 그 기대와 꿈이 자녀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인 경우라는 단서를 붙인다.

첫째. 너를 우리가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 둘째. 부모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셋째.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을 갖는 것인데 그렇게 믿고 그렇게 된다고 늘 확신하고 다짐하면 그대로 된다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 이 세 가지이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진정 자녀를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어느 누구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꿈으로 나타나는 부모의 자식사랑에 대해 누가 감히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자식에 대한 그러한 기대와 꿈은 부모들의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적 사고"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든 고통받기를 싫어한다.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설혹 그것이 잘 안되어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것을 되도록 가볍게 당하고 그것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본능이다. 부모들은 바로 자녀들로 인해 생기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미연에 막으려고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그 자녀가 훗날 부모에게 고통을 주게 될지도 모를 모든 가능성들, 모든 원인들을 철저하게 방지하고 싹을 자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자신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본능적인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따라 자녀들에 대한 기대와 꿈을 펼치는 것이다.


<자녀교육의 비법은 없다> 이 책은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와 꿈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식이 세상을 향하여 온전한 기대와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 그 자식에 대하여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냉정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식들이 이 세상을 향해 웅대한 기대와 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그저 많은 지식을 외워서 머릿속에 보관하기보다는 그 지식을 꺼내서 처리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사고력을 키워 줘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와 발상은 우리가 어떤 현상을 부정적으로 지각할 때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어떤 부정적인 상황에 놓이더라도 항상 그것의 다른 쪽, 밝은 쪽, 긍정적인 쪽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면 훨씬 다양한 생각들을 발산시킬 수 있다.

둘째, 자녀가 시련을 겪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자녀가 그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성장하면서 실수나 실패를 통해 아픔을 겪게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특히 실수를 한 다음에 그 뒤처리에서 겪는 아픔을 아이들이 스스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큰 실수를 할까봐, 지금 당장 겪는 고통이 안쓰러워 아이에게 그 고통으로 인한 또 다른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그래서 이어지는 고통을 부모가 대신해 주려고 나선다면 아이의 성장과 성숙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는 것이다.

셋째,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혼자 살려고 해서는 안 되고 더불어 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관계든 그 관계는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양태로 변화되고 발전되고 개발될 수 있음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유로운 창의적 발상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려면 보다 폭넓은 관계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계에 자녀의 관심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다음으로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또 생활 속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가능한 많은 것을 경험하도록 해주라는 것, 세상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듯이 자식교육 역시 때를 기다리면서 단단한 기초를 세우는 것이 훗날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것, 작은 일에 항상 크게 기뻐하고, 감동하면서 언제나 자신감을 갖고 열정으로 모든 일에 임할 때 교육은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다.

<자녀교육의 비법은 없다>. 책의 역설적인 제목이 오히려 더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스물 여섯 개의 토막글 하나하나를 읽다보면 자녀교육의 해법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에 무릎을 치게 된다. 더불어 저자의 실 경험을 예로 들어 적절한 문제를 제시하고 나아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해법을 찾게 만드는 저자의 설득력이 또한 흥미롭다.

자녀들은 부모와의 삶 속에서 상호작용을 통하여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성장한다. 결코 말로써 가르치지 않아도 상호작용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한 학습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와 자녀간의 이러한 상호작용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호작용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자, 그렇다면 자녀에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주겠는가. 저자는 후기에서 자녀교육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자녀교육은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녀교육은 학교에서처럼 자녀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말로써 강의하듯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녀 교육은 그에 따른 무슨 교과서가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부모가 선생이 되어 가르치면 되는 것도 아니다. 자녀교육은 어디까지나 삶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되고 이루어져야만 한다. 즉, 부모들이 일상생활에서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자녀 교육의 비법은 없다

이성호 지음, 문이당(200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