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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 등 봄나물과 야생화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목장입니다.
ⓒ 김영래
일요일(21일)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가족의 일요일은 평온한 때가 거의 없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혹은 첫째·셋째 일요일에 가게를 쉬는 처갓집 호출 또는,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전화로 인해 늘어지게 쉴 수 있는 일요일을 보낸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아버지 전화가 아닐까 했는데 이번엔 장모님의 호출이었다. 무릎이 아파서 일하시기도 불편한데 처외삼촌이 운영하는 목장에 고사리를 꺾으러 가시자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장모님이 그 몸을 해 가지고 어딜 가시느냐고 졸린 목소리로 성화를 댔지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아내는 급해진 마음에 아이들부터 깨우기 시작했다. “자 빨리 일어나 오늘은 고사리 꺾으러 간다” 아이들이 낑낑대며 투덜거렸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못 들은 척 했다. 곧바로 아내는 협박성(?) 행동을 시작했다.

아내는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들의 호출이 있으면 그 기다림에 늦을까봐 언제나 이런 행동을 취했다. 시간을 세면서 아이들에겐 “그럼 다 집에 있어 엄마 혼자 간다” 라면서 재촉을 했다.

▲ 노란 애기똥풀꽃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 김영래
우리는 매년 처외삼촌 목장에서 고사리를 꺾어 유난히 많은 제사상에 올리는데 요긴하게 썼다. 그 전엔 엄마가 산에서 조금씩 꺾어온 것으로 사용해왔다. 처갓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아홉 시가 넘어 20여분 차를 타고 목장에 도착했다. 어제는 친척과 친구 몇 분이 고사리를 꺾어 가셨다고 하셨다.

목장으로 통하는 작은 고개를 올라가니 입구에는 노란 애기똥풀이 인사를 했다. 아이들에게 이 꽃을 꺾으면 노란 애기똥 같은 액이 나오기 때문에 이름이 애기똥풀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예전에 시골에서 소 풀을 벨 때도 이 풀은 독이 있어 조심했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그것을 꺾어서 직접 노란액을 확인해 보았다.

풀밭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고사리를 꺾은 흔적이 있었지만 우리 몫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허리춤에 비료포대로 바구니를 만들어 차고 고사리를 꺾어 담았다.

▲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며 아이들은 마냥 신났습니다.
ⓒ 김영래
자루가 필요해서 축사로 자루를 가지러 가는데 여기저기 보이는 고사리가 자꾸 눈에 들어와 발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쭉 뻗은 놈이 하나 보여 손이 닿으면 그 옆으로 여러 개의 고사리대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 놈들도 심심한지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꺾이지 않으려는 듯 아니면 나와 숨박꼭질을 하려는 듯 내가 한번 꺾고 지나간 곳인데도 다시 돌아가다 보면 서너 개의 고사리가 불쑥 솟아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신났다.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푸른 초원 위에서 맘껏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한 나절에 한 자루를 꺾었다. 목장엔 고사리 뿐 아니라 여기 저기 산초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기름집을 운영하는 처갓집은 가을에 이곳에서 딴 열매로 꽤 많은 자연산 산초기름을 짜서 판매도 하고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신다.

▲ 심봤다고 크게 소리치라고 했더니 그게 뭔소린지도 모르고 목장이 떠들썩하게 아이들이 떠들어댑니다.
ⓒ 김영래
또 잔대 싹들이 많이 보여 고사리 포대를 내려놓고 아이들과 같이 캤다. 한 뿌리를 캘 때마다 아이들은 인삼같이 생겼다며 들고 엄마에게로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고 왔다. 어렸을 때는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이것을 캐서 고추장을 발라먹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목장의 경계로 소나무 숲 밑엔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잎 밑에 하얀색 종 같은 꽃이 조롱조롱 매달린 둥그런 밭이 나타났다. 마치 금낭화 꽃과 비슷한 배열로 매달린 꽃이 화려하지 않고 누룽지 같은 구수한 맛만큼이나 조용하고 순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 둥글레는 모양새 만큼이나 조용하고 수수해 보입니다.
ⓒ 김영래
점심은 삼겹살을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잔대 싹을 곁들여 쌈을 쌌고, 두릅무침도 참기름과 뒤섞여 고소한 맛을 더했다.

성찬 후 겉잠을 잠깐 잔 뒤엔 아이들은 집에 두고 어른들만 올라가 두 시간 정도 꺾고 내려왔다. 하루에 두 자루를 꺾었으니 올 해 제사상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내 손으로 직접 장만한 것이라 더 뿌듯했다.

이불 속에서 늦잠을 자는 달콤함보다 자연의 소중함과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었던 즐거운 휴일이었다.

▲ 한 자루는 처가집에 가져가고 또 한 자루는 엄마한테 가져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모였는데 며느리 자랑이 늘어졌습니다. 아내는 시간을 잘 맞췄다며 좋아했습니다.
ⓒ 김영래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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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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