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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황연구회 손범주 회장의 연주모습
한국생황연구회 손범주 회장의 연주모습 ⓒ 김기
영화 취화선, 빼어난 명장면들이 많기로 소문난 명작이다. 아직도 취향 맞는 사람끼리 만나면 오가는 대화 속에 자주 오르는 기억할 만한 영화이다. 그 취화선 속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장승업 역의 최민식과 기생으로 분한 유호정이 각각 단소와 생황을 가지고 연주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 구성 상 그 장면은 마치 농익인 연애의 은유로 보이기도 한다.

그 인상적인 장면에서 연주된 곡은 <수룡음>이라고 한국 전통음악이다. 또 그렇게 생황과 단소로 함께 연주하는 것을 생소병주라고 부른다. 실제 그 장면을 위해 배우 유호정은 1년 가까이 생황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유호정에게 생황을 가르친 이는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이자, 작년 출범한 한국생황연구회 회장인 손범주이다.

생황은 하모니카처럼 들숨과 날숨 모두에서 소리가 나는 특성을 가진 아주 독특한 우리 악기이다. 중국, 일본 등지에도 보이는 생황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박통을 재료로 악기 몸통을 만들었다.

대략 1700년 정도의 전통을 가진 악기이나 생황이란 악기는 전쟁에 의해 깊은 상처를 가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생황의 국내 생산이 끊겨 조정은 청나라부터 이 악기를 수입하게 하였으나, 악기와 함께 더 중요한 악사 양성에 실패하여 민간에서는 그 생황을 청나라부터 밀수하여 사대부가의 장식이나 권번의 기생들에게 유행하게 되었다. 생황은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에 자주 출현한다. 그만큼 당대 풍류에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악기였다.

정악인 천년만세를 대금, 양금과 더불어 생황으로 연주하는 모습
정악인 천년만세를 대금, 양금과 더불어 생황으로 연주하는 모습 ⓒ 김기
생황은 조선 초기에는 17관을 사용되다가 이후 청나라에서 수입된 것은 21관, 최근 창작음악에 주로 사용되는 생황은 24관으로 구성되어있다. 생황은 전통음악에는 현대의 느낌을, 현대음악에서는 전통의 색깔을 입히는 기묘한 능력을 가진 악기이다.

생황을 봉황의 소리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인 만큼 봉황처럼 돋보이긴 하나 동시에 겨우 명맥만 유지해온 어려운 시절을 오랫동안 겪었다.

그나마 한국생황연구회 손범주 회장이 중국을 오가며 고집스럽게 생황 복원에 공을 들여온 결과 작년 제자들과 함께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을 멀고도 멀다. 생소병주 <수룡음> 외에는 이렇다 할 음악을 갖지 못한 까닭에 전통악기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그렇다 보니, 자연 생황만을 연주하는 연주자도 없다. 지금까지는 피리연주자가 생황을 곁들여 연주해오고 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불우한 길을 걸어온 생황이지만 현대 국악에 있어서는 밝은 전망을 가진 것도 생황이다. 국악계의 악기 연구 및 복원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고, 창작국악의 화음부에 생황의 쓰임이 날이 갈수록 너른 공감을 형성해가고 있다.

탱고를 세계인의 음악으로 만든 곡, 리베탱고 등 피아졸라 곡을 연주하여 청중의 큰 박수를 받은 25일의 한국생황연구회 연주모습
탱고를 세계인의 음악으로 만든 곡, 리베탱고 등 피아졸라 곡을 연주하여 청중의 큰 박수를 받은 25일의 한국생황연구회 연주모습 ⓒ 김기
특히 국악계가 눈 여겨 볼 사표 중에 하나인 탱고음악의 세계화 과정에서 반도네온이란 악기가 가진 특성이 한몫을 해냈듯이, 그 악기와도 대단히 비슷한 음색을 가진 생황에 대한 관심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중심에 선 핵은 한국생황연구회와 손범주라는 연주인이다.

한국생황연구회가 작년 창단 때에는 생황만으로 종묘제례악 전곡을 연주함으로써 생황이 가진 전통성에 대한 표상을 세웠다. 그리고 올해에는 생황이 가진 악기적 스펙트럼을 넓게 펼쳤다.

아직 일반에게 생황은 낯설다. 그런 까닭에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25일 열린 한국생황연구회의 두 번째 음악회에는 많은 청중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대에 선 연구회 회원들은 오랜 연습해온 기량을 최대한 펼쳐 보이고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음악회에는 정악곡인 <천년만세>와 예의 대표곡 <수룡음>을 17관 생황으로 연주하고, 민간음악인 북청사자놀음 변주곡 등 전통음악과 더불어 탱고의 대표곡인 피아졸라 곡 <리베탱고>, <오빌리언>, 영화음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집시 음악, 생황을 위한 이준호의 창작곡, 김영동 작곡의 명상음악 등을 연주하였다.

연주가 끝난 후에 많은 청중들이 무대 앞에 진열해 놓은 생황에 몰려들어 구경하는 모습에서 이 날 연주의 감동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작은 감동으로 인해 생황의 꿈은 이미 나래를 펴고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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