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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형출판
우연이었다. 빈손으로 나가기 무엇해 책 한 권을 뽑아들었을 때, 이 책이 걸린 것은 말이다. 'KBS 역사스페셜'을 책으로 엮은 7권 세트 중에서 전쟁과 관련된 6권이 걸린 것도 그랬다.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가 마음에 들어 함께 길을 나섰다.

마침 지하철을 타자마자 자리가 있었다. 앉아 책을 펴니 첫 번째 이야기가 '일본의 신라 침공, 발해가 막다'라는 내용이었다. 후쿠오카 부근에 있는 이토성은 바로 신라를 침공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지금도 그 주변엔 전쟁 준비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756년부터 시작된 침공 계획은 762년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것에 비해 실제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론으로 바로 건너뛴다면 일본은 발해와 함께 신라를 협공하기를 바랐지만 발해가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일본의 한반도 침공이 좌절되었다는 얘기다.

제작진이 주목한 것은 신라도(新羅道)와 탄항관문(炭項關門)의 존재다. <신당서>에는 발해에는 외국으로 가는 다섯 개의 길이 있었는데 그 중 신라 국경까지 이르는 '신라도'가 있었다고 하며, <삼국사기>에도 발해의 동경에서 신라 천정군까지 39개의 역이 있었다고 한다. '탄항관문'은 신라 경덕왕 때 신라 국경 지역인 천정군에 설치한 관문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 관문의 존재를 신라와 발해가 서로 교류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통일신라 시대'를 배우고 나서 발해를 덤으로 배웠다. 하지만 통일 신라가 삼국 영토를 모두 확보하지 못한 점과 발해가 옛 고구려 지역을 차지하고 고구려 후예를 자처하는 조건에서 이 시대를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로 봐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들도 있어 왔다.

지금까지는 신라와 발해가 서로 교류가 없었고 오히려 내내 대립했다는 학설이 있었지만, 최근 신라와 발해가 서로 교류했다는 입장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역사스페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 신라 침공을 준비하다가 좌절하는 과정을 통해 신라와 발해가 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교류를 했으며, 그런 바탕에서 일본의 침공을 좌절시켰다는 더욱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 신라도(新羅道)와 탄항관문(炭項關門). KBS 화면 캡쳐.
ⓒ KBS
'신라도' 이야기를 접하며 불발로 그친 '경의선-동해선 시험운행'을 떠올렸다. 신라와 발해가 교류를 통해 일본의 침공을 좌절시킨 상황과 남북한의 협력,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들, 이런저런 관계 재정립을 앞두고 있는 상황들을 이렇게 저렇게 겹쳐 보게 됐다. 공교롭게도 교류의 실마리가 '교통로와 관문'을 통하는 문제라는 점도 겹쳐 보인다.

나는 대학 다닐 때 당시 소장파요 소수파였던 이종석 강사에게 북한과 관련된 교양 강의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내재적 접근'을 강조하던 젊은 비주류 학자였는데, 불과 십여 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통일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계시니 그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종석 통일부장관에게 갖는 아쉬움이 있다. 강의하실 때는 '내재적 접근'과 함께 '단계별 진전'도 강조하시고, "한탕주의는 곤란하다"는 얘기도 해 주셨는데…. 실전에서는 오히려 서두르시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이 문제에서는 제일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일종의 자기 과신을 불러오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 어린이들이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를 견학한 뒤 제진역을 둘러보고 있다.
ⓒ 통일부
금강산 관광도 열고, 개성공단도 만들고, 어쨌든 철로도 하드웨어는 이어져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의선에 기차가 달려 긴장을 낮추고 국민들의 통일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좀 뒤집어서 긴장을 풀고 국민들 사이에서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모아나가면서, 그 결과로 기차가 달리는 경로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수도 이전 문제도 그렇고, 부동산정책도 그렇고, 일단 몰아치면 국민들은 따라올 것이라는 발상이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하고, 게다가 우리 내부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외부 세력까지 끼어들어 있는 '통일'이라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국민적 공감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기차는 달려야 하겠지만 일종의 이벤트로 달리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다시 <역사스페셜6>으로 돌아오자. 이 책에는 모두 15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면면을 보면 한반도를 노리는 외세에 맞서 우리 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조상님들의 노고가 절절하다. 또 열세를 극복하고 보란 듯이 승리를 거머쥐었던 기백과 영민함이 번득이고 있다. 때로 현실이 갑갑하고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지나온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용기를 배우는 것은 어떨지….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역사스페셜 6 - 전술과 전략 그리고 전쟁 베일을 벗다

KBS 역사스페셜 제작팀 지음, 효형출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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