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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일본 <교도통신>은 최근 비밀해제 된 미국 공식문서를 살펴본 결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일본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도쿄 특파원 보도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국내 언론도 이를 소개했다.

특히 1972년 8월 31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하와이에서 정상회담을 하던 날 열린 국무부 극비 내부협의를 정리한 메모에 따르면, 키신저는 "모든 배신자중에서도 쟈프는 최악"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 '자프''쟈프''잽' 제각각 표기해

▲ 한컴사전에서 찾아본 'Jap'
ⓒ 한글과컴퓨터/민중서림
여기서 '쟈프'는 일본인을 낮춰 부르는 속어로 우리말로 옮긴다면 '쪽발이'나 '왜놈'에 해당하는 말이다. 아무리 비밀회의였다지만 국무부 수뇌들 모임에서 이런 속어까지 동원하며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냈다는 것은 아무래도 민감한 일이다.

일본 사람을 낮춰 부르는 영어 표현은 'Jap'이다. 태평양 전쟁 때 널리 쓰였는데 진주만 기습을 당한 뒤 맺힌 감정을 타고 퍼져 나간 말답게 'Jap'이란 표현에 '비겁하게 기습한다'는 뜻이 들어있기도 하다.

'Jap'의 발음은 '잽'에 가깝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 발음을 나름대로 하기 때문에 '쟈프'나 '쟈후' 정도로 발음한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이 <교도통신>을 인용하면서 일종의 이중번역 문제가 생겼다. <연합뉴스>와 <문화일보>는 '쟈프'로, <동아일보>는 '자프'로 표기했다. <한겨레>가 '잽'으로 적어 그중 나은 모습을 보였다.

최근 신문들은 일반 보도 기사는 통신사 것으로 대신하고 자체 취재 역량을 심층 기획이나 탐사 보도로 돌리는 추세다. 통신사에선 정확한 기사를 공급할 책임이 있겠지만 기사를 가져다 쓰는 신문들도 사실 확인을 하고, 점검해야 한다.

이번처럼 이중 번역으로 인한 오해는 그 중에서도 아주 기초적인 것에 속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정확한 사실을 전하지 못하는 1차 문제와 이후 기사를 검색할 때 혼란을 주는 2차 문제를 낳는다.

'잽'으로 옳게 표기한 <한겨레>는 헨리 키신저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표기했는데 직급 표기는 시점을 정해 당시 직책을 소개하거나 통틀어 가장 높았던 직책을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키신저 하면 대략 국무장관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 미국 국무장관으로 적었다면 나았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국어능력인증시험(KET) 시행본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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