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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사랑에 깊히 빠진 사람(김정진씨)
국악 사랑에 깊히 빠진 사람(김정진씨) ⓒ 정연창
기자는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승용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차고지는 버스가 일렬로 주차 되어 있고 주변은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기에 의아한 생각에 소리 나는 곳으로 가봤다.

차고지 외진 곳에 봉고차를 세워 놓고 바닥에 앉아 꽹과리를 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운전복 차림으로 그늘도 없는 곳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듯 기자가 다가가도 모르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뭐하세요?"

운전복 차림으로 아스팔트위에 비닐매트 한 장 깔아놓고 혼자 '사물놀이'연습에 열중하는 이유가 궁금해 물어봤다. 그 분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물놀이' 연습중입니다!"
"저는 국악을 잘 모르지만 옆에서 듣고 있어도 흥이 절로 나네요!"
"우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은 흥과 멋이 조화를 이루는 소중한 것이지요."

같은 공영차고지에 근무하고 있었지만 그와 내가 얼굴조차 모르는 것은 회사가 틀리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승합'에서 14년째 근무 중 이란다.

"회사에서도 선생님을 자랑스럽게 여기겠네요?"

봉고차 안은 악기로 가득
봉고차 안은 악기로 가득 ⓒ 정연창
나의 질문에 멋쩍게 웃기만 한다. 그는 옆에 있는 봉고차를 열어 나에게 보여 주었다. 차 안은 장구, 징, 북, 태평소, 12발 상모 그리고 각종 의상으로 가득했다. 그는 12발 상모를 나에게 들어보라며 건넨다. 들어보니 머리로 돌리기에는 상당히 무거웠다.

"12발 상모를 돌릴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실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왜 버스운전을 하세요?"
"공연도 많이 다니고 '사물놀이'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생활이 불가능 한 것이 현실입니다."

12발 상모돌리기가 나의 특기
12발 상모돌리기가 나의 특기 ⓒ 정연창
국가에서 전통음악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의 관심 부족으로 훌륭한 기능을 보유 하고도 그것만으로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것. 나는 그를 취재하기로 마음먹고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차, 카메라를 안 가지고 온 것이다. 아쉬운대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저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선생님을 취재하고 싶습니다."
"난 그런거 싫어하는데···."
한사코 거절하는 그를 설득하여 사진을 찍었다. 장고치는 모습 좀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신명나게 장고를 두드렸다.

"덩~더~궁 덩~더~쿵"

나는 사진만 찍으려고 포즈만 취해 달라고 했는데 그는 금방 세상과 무관한 곳에 있는 듯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장고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흥에 겨워 춤이라도 추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우리 음악의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내가 장구를 치는지 장구가 나를 치게 만드는지
내가 장구를 치는지 장구가 나를 치게 만드는지 ⓒ 정연창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고...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고... ⓒ 정연창
"이번에는 '태평소'를 들려주세요."
"이거 공연을 혼자 무료로 감상 하겠다는 심보요?"

그는 구성진 태평소 연주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그에게 공연은 혼자 하냐고 뭇자 그는 '송파 국악원'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영울림'이라는 국악 모임에도 참석하고 있고 '김제 지평선 축제'에 참석하여 입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태평소 소리의 아름다움
태평소 소리의 아름다움 ⓒ 정연창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은 노인들을 위하 공연이라고. '우리사랑'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다. 이 동아리 활동은 어려운 이웃을 찾아 공연하는 모임이라고 했다. 이들은 6월 17일 휘문동에 있는 한 여고 강당에서 경로잔치를 연다고 한다. 이 경로잔치는 올해로 3회를 맞이한 것이라고.

취재를 마치고 인사 하고 돌아서자 그는 다시 악기를 손에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모든 이들의 숨은 고통과 한숨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기능을 보유하고도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남은 그 와, 떠난 나
남은 그 와, 떠난 나 ⓒ 정연창

덧붙이는 글 |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지만 걱정했던것 보다 괜찮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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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아름다운 사연도 많고 어렵고 힘든 이웃도 참, 많습니다. 아름다운 사연과 아푼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가감없이 전하고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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