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만이 감돌았다. 오후 6시, 열린우리당 선거 상황실에는 방송사들의 출구 조사결과가 나온 뒤 지도부가 자리를 뜨기까지 30분간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도 함께 30분여 침묵을 지켰다. 오간 거라곤 당의장의 한 차례 헛기침에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 정도였다. 자리를 먼저 뜬 건, 김근태 최고위원이었다. 김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참담하다, 역사 앞에 죄인이 되었다"며 "오늘처럼 부끄럽고 두려운 적이 없었다"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김 최고위원은 또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거 전략을 총괄한 이광재 기획위원장도 중간에 전화를 받고 어디론가 급하게 사라졌다.
"지도부 중 누구도 자리 연연 안해"
정동영 의장은 30여 분 방송을 지켜본 뒤 당의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들의 요구에 정 의장은 짤막한 입장을 표명했다. 정 의장은 "표에 나타난 민심에 대해 겸허하게,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선거를 지휘했던 당의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심경을 밝혔다.
아울러 당의장으로서 "무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 의장은 "크고 작은 책임을 모두 질 생각"이라며 "자세한 얘기는 내일 오전 당의 공식 회의기구에서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은 ▲선거에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당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향후 대책은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결정해서 밝히겠다 등 3가지로 정리해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 의장은 끝으로 후보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정 의장은 "다만 한 가지,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너무 아까운 인물들이다, 아까운 인물들이 모여 최선을 다하셨는데 당의장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런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날 상황실에는 정동영, 김근태, 김혁규, 조배숙 최고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두관 최고위원은 빠졌다. 경남도지사로 출마한 김 최고위원은 경남도당에 꾸려진 상황실에서 선거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대변인이 전했지만, 선거 막바지 불거진 정 의장과의 불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배숙 최고위원은 "지도부 중 누구도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당 기구를 통해 상의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국민들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우상호 대변인은 "분위기가 매우 착찹하고 침통하다"며 "어떤 지도부도 한 마디 말을 꺼낼 수 없을 정도로 이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상황실에는 지도부를 비롯해 신기남 전 의장과 이광재 기획위원장, 정청래, 박명광 의원 등 20명도 채 안 되는 의원들만이 모습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