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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실나무 위에 있는 새둥지에서 새끼들이 태어났다.
ⓒ 조영상
농사란 있을 법하지 않은 지리산 산중 악양골에서 매실농사를 짓고 있는 방호정(42)씨를 찾았다. 앞으로는 지리산 성제봉이 뒤로는 구제봉이 보이는 협곡과 같은 골짜기에 있는 산 매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매실농장을 찾아 산중을 헤맨 터라 숨고르기를 할 겸 매실나무가 심겨진 작은 계곡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맑은 계곡물, 멀리 보이는 지리산 산봉우리들, 하늘 가득히 초롱초롱 달린 청매실들 그리고 자연이 주는 고요한 침묵 속에 가슴을 내 맡기고 오랜만에 황홀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서 아주 오래 전, 어렸을 때 시골에서 들었음직한 작은 새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일까?

그 소리를 찾아 주변을 몇 발자국을 뗐을 때 어슴푸레 나뭇가지 사이에 걸친 새 둥지를 발견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런 새 둥지가 2개나 더 있었다. 수십 년간 사진을 전문으로 해온 터라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와, 이제 멋진 사진 한 건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실례를 무릅쓰고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며 둥지 위로 접근했다. 아뿔싸! 그 둥지 속에서 껍질을 깨고 새끼들이 세상으로 나와 하늘을 향해 생명의 손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생한 모습은 사진, 자연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지 난생 처음하는 경험이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러면서 '바로 자연이다. 자연이다'라는 탄성을 가슴 속으로 쏟아놓으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실나무를 '자연'으로 돌려보낸 방호정씨

▲ 방호정씨가 재배하고 있는 토종매실.
ⓒ 조영상
농장주 방호정씨와 함께 주변을 더 돌아보며 여러 개의 새 둥지를 더 발견하고는 질문을 던졌다. "농사짓는 곳에 어떻게 산새들의 둥지가 이렇게나 많습니까?" 방호정씨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 밭을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았는데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매실농사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진딧물과 응애가 초봄에 집중되는데 이것을 방지하지 못하면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봄에 집중적으로 화학농약을 살포하는 것이 일상사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매실나무에 새 둥지가 함께 한다는 것은 산중 농사꾼들에게서조차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방호정씨은 농장을 물려받고는 이 매실나무를 자연으로 되돌려 놓기로 했다. 그리고 6년 동안 그 작업을 해, 이제는 국가가 인정하는 전환기유기농(17-16-2–09) 인증을 받은 상태다. 전환기 유기농인증은 제초제는 물론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검증의 표시이다.

그는 산에 있는 야생 매실에는 진딧물과 응애가 없는데 왜 재배하는 매실에는 벌레가 많이 있을까란 고민 속에 그 벌레를 인위적으로 죽이는 일반적인 방법보다는 근본적으로 벌레들과 공존 공생하는 방법, 나무 스스로가 벌레를 이겨내는 자연적 방법을 선택했다.

나무가 특정한 벌레에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이유는 실제 나무에게 있다고 본 것. 그동안 거름과 화학비료를 많이 넣어 나무가 연약한 생장을 한 것이 그 원인이라고 보고 나무를 강하게 키우는 데 주력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화학비료를 완전히 끊어버리고 완전 자연적인 비료로 대체한 것이다.

자연적 비료 '산야초'를 이용하다

▲ 볏짚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제초를 한다.
ⓒ 조영상
가장 귀한 것, 필요한 것은 가까운 데 있다. 바로 산야초다. 자연적인 비료란 다름 아닌 늘 상 지리산 기슭에 가득했던 산야초들이다. 이 풀들을 베어 물 속에 넣고는 산 부엽토 등을 넣어 토착미생물 접종을 한 후 덮어놓아 물 속으로 산야초의 영양분이 녹아 나오게 하고 이 액체를 물에 수십 배 희석하여 비료로 활용한 것이다.

그 결과 매실의 크기는 전보다 작아졌지만 벌레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고 맛과 향이 강한 매실을 수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 년 지나 수확량도 정상을 회복하고 작년은 대풍작을 거두었다고 하는데 올해는 전보다 더 많은 수확량을 기대한다고.

방호정씨의 농사 방법은 무조건 자연으로 되돌려야 옳다는 단순한 생태적 방식이 아니다. 자연적이어야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농사가 가능하다는 구체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산매실의 맛과 향에 감동, 소비자들게 확실히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방호정씨는 소비자들이 더욱 완벽한 매실액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유기농 설탕까지 실비로 공급하는 정성을 보이고 있다. 그의 농장에서는 유기농 매실에 유기농 설탕으로 만든 완벽한 매실액이 가능했다.

매실농사가 단순히 화학비료를 끊고 산야초를 거름으로 삼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거름을 줄여 나무를 강하고 단단하게 자라게 하면 진딧물과 응애의 피해는 어느 정도 줄여 나갈 수 있으나 매실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매실 위에 흑반점을 만들어 내는 흑점병과 잎사귀를 말아 버리는 깍지벌레의 피해를 극복하기란 만만치 않다.

방호정씨는 균에 의한 질병을 특정한 균의 과다점유로 보고 그 균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를 입히는 균이 많이 번식하도록 방치한 내 나무, 내 농장에서 문제점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나무와 잎사귀 등에 다양한 균이 번식하도록 지리산 부엽토에 다양하게 공생하는 미생물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부엽토를 한 줌, 쑥으로 만든 야채효소, 바닷물을 물에 넣고 반나절 배양을 시키면 자연의 미생물이 수십만 배 증식이 되는데 이 액을 나무줄기와 잎사귀 등에 동절기부터 봄까지 여러 차례 살포했다.

다양성의 힘으로 '매실 흑점병'을 극복하다

▲ 방호정씨와 함께하는 박진수씨
ⓒ 조영상
그 결과는 놀라웠다.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다양성의 힘으로 극복한 것이다. 방호정씨는 병해를 입히는 균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균이 다른 균들과 자연스럽게 공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육지의 미생물과 바다의 미생물을 종합하여 나무에 상시적으로 뿌려줌으로써 병해를 일으키는 균의 과다점유를 방지했고 결과적으로 흑점병을 극복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즘 들어 특히 급증하기 시작한 깍지벌레, 수많은 농부들이 그 피해에 전전긍긍하던 깍지벌레까지 방제된 것. 월동을 하는 깍지벌레집이 뒤집히면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방호정씨는 그 또한 자연의 다양성의 힘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새 둥지와 함께 크는 산매실,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운 조화와 풍요를 만들어 내기까지 방호정씨의 노력은 남달랐다. 그 고민의 방향은 바로 자연으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다. 자연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는 다양성, 다양성의 만들어 내는 생명들간의 공생과 균형, 자연의 순리 등의 힘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농사의 길을 열어낸 것이다.

생전 처음 생생히 목격한 새 둥지 새끼들의 힘찬 외침, 지리산 기슭의 장엄함과 계곡의 맑고 깨끗함, 자연이 주는 고요한 침묵과 안식, 청매실 원초적 향 내음, 자연을 벗 삼은 한 사람의 진실한 삶 등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방호정씨는 말한다. 처음엔 농사가 기술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농사에는 기술을 넘어 심오한 정신세계가 있었고 그 속에 자연의 순리와 삶의 길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는 지금은 퇴색해버리고 있는 한 마디가 생각났다.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www.naturei.net)함께 기고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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