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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들판에는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밀밭'입니다. 구례는 밀밭이 흔한 곳입니다. 구례 들판 어디를 가도 밀밭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즘이 한 참 밀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밀은 구례나 고창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재배되지 않습니다.
밀은 이미 FTA 상황! 관세율 2%에 불과
밀은 1970년대나 1980년 초만 해도 들판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9만7천ha에 달했던 우리 밀은 값싼 수입 밀에 밀리고 밀려 1990년대 초반에는 씨를 구하기도 어려워져 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91년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가 어렵게 씨를 구해 경남 고성군 두호마을과 구례에서 처음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약 2천ha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중 구례에는 총 면적의 25%에 조금 못 되는 450ha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밀이 6·25전쟁 이후 미국에서 밀을 무상 원조한 이유도 있지만, 밀의 관세율이 2%에 불과하여 이미 FTA 상황이 된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2% 관세가 우리 땅에서 밀을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밀 관세율은 200%가 넘고 중국도 180%의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밀 수입량은 약 400만t에 달합니다. 우리밀 생산량은 약 1만t으로 약 0.25%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밀 소비량은 연간 35kg에 달합니다. 주식인 쌀의 연간 소비량이 80kg에 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35kg은 상당한 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식생활의 변화로 인해 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습니다.
밀은 쌀 수확이 끝나고 심는 작물입니다. 즉 보리처럼 가을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합니다. 보리나 밀처럼 가을에 파종해 봄에 수확하는 작물의 경우 병충해의 피해가 거의 없어 농약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표적인 무공해 곡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입 밀은 상황이 다릅니다.
벌레가 생기지 않는 수입 밀
우리가 밀을 수입하는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입니다. 미국에서 생산된 밀은 대부분은 남부지방인 뉴올리언스로 모입니다. 여기서 집하된 밀은 배를 통해 파나마운하를 통과해서 태평양(적도)을 통과해 국내항구(부산 또는 인천)로 들어오게 된다고 합니다. 수입 과정에서 통상 15∼40일 정도의 항해기간이 필요합니다.
적도는 누구나 알듯이 무더운 곳입니다. 배 갑판의 온도가 무려 50℃ 이상까지 올라가게 되는 상황에서 밀이 변질되지 않으려면 살충제, 살균제, 방부제, 보존제 등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여름에 쌀에 바구미가 잘 생기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자국소비용 밀과는 다르게 수출용 밀에는 이러한 약품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하고 있는데, 이것을 수확 후 농약처리 법제화(Post-harvest treatments)라고 합니다.
살균제로는 구아자닌, 디페노코나졸, 카벤다짐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벌레나 알을 죽이기 위해서는 메치오카브, 벤디오카브와 같은 살충제와 이 밖에도 마라치온, 아레스린 시화화칼슘, 염화메칠렌이 있습니다. 방부제로는 클로로포름, 클로로파크린 등 21가지의 농약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밀은 모두 이러한 처리 과정을 거쳐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정말일까 하고 의심하시는 분들은 집에 있는 밀가루에 벌레가 생기는지 확인하시면 바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우리밀과 수입밀, 빵으로 가공하면 가격 차이 거의 없어
수입밀 알곡이 40kg한 가마에 4∼5천원에 불과한데 반해, 우리밀은 40kg 3만9천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밀가루의 경우엔 수입 밀 1kg이 800원 정도이고, 우리 밀이 2600원 정도로 2.6배 정도로 낮아집니다.
더구나 이것을 가지고 빵이나 국수 등으로 가공을 했을 경우는 가격 차이는 오히려 더 줄어들어 몇 백원 차이가 나거나 거의 비슷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밀 운동본부에서 유통마진을 최소화해 수입밀과의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비용이면 부가가치를 너무 높이 보는 것이고, 이쪽에서 생산마진 폭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가격차이면 방부제 넣지 않은 우리 밀 먹을 만하지 않을까요?
"우리밀 소비량은 소폭 늘어나는 추세, 그러나..."
밀은 우리 땅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살아난 대표적인 작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생산량이 더 늘어날지 줄어들지는 여러분의 장바구니에 우리밀을 담느냐 아니면 수입 밀을 담느냐로 결정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수입 밀로 만든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면 우리 밀은 살아날 것이고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우리밀을 찾는다면 우리 밀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밀의 운명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수입쌀의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수입쌀을 모든 국민들이 외면하는 것이듯이 우리밀의 생존 방법도 여러분이 수입밀로 만든 상품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밀로 만든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밀로 만든 빵을 먹고 수입밀로 만든 식품을 거절한다면 당연히 우리밀 생산량이 증가 할 것입니다. 농가소득이 증가해 농민들의 삶도 나아집니다. 여러분 역시 수입 밀에 담긴 농약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연한 보너스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상품에게 하는 투표와도 같습니다. 참거래 연대(www.farmm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