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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부터 생산된 페이스 메이커 스피드 그래픽 카메라. 이 카메라는 베트남전에서도 쓰였다.
1947년부터 생산된 페이스 메이커 스피드 그래픽 카메라. 이 카메라는 베트남전에서도 쓰였다. ⓒ 서정일

6일은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기 위해 국가가 정한 공휴일인 현충일. 벌써 51회째다. 먼저 그 분들의 희생정신에 깊이 머리 숙인다.

전남 보성군 보성읍에 살고 있는 김경철(44)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카메라를 만졌으며 외갓집이 병원이어서 엑스레이 사진을 직접 현상·인화했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1982년부터 1991년까지 만 9년간 사진특기 하사관으로 군에서 복무했다.

이처럼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인연을 맺어온 사진과 김씨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지금 김씨는 사진과 관계없는 일을 하고 산다(김씨는 녹차를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상해서 넌지시 물어보니 "사진을 하면 각시가 고생하기 때문에 손을 놨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토록 좋아했던 사진인데 설마 '각시 고생시키기 때문에 그만뒀다'는 농담 같은 말이 진심일까 의심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의 대화는 사진 얘기가 전부다. 김씨는 한참 동안 그렇게 사진 얘기로 시간을 보내더니, 갑자기 보여줄 게 있다면서 장롱 깊숙이 감춰둔 골동품(?)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온다.

김경철씨가 카메라 작동법을 시연하고 있다.
김경철씨가 카메라 작동법을 시연하고 있다. ⓒ 서정일
미국에서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7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페이스 메이커 스피드 그래픽' 카메라. 낡고 찌그러진 모습에서 한눈에도 숱한 사연을 안고 있는 카메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카메라엔 많은 넋이 들어있습니다."

곧바로 월남전 이야기가 이어졌다. 자신이 하사로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참 선임하사가 카메라를 건네주면서 월남전 때 수많은 주검을 이 카메라로 찍었다는 말과 함께 소중히 간직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후 김씨는 교육할 때나 특별한 사진을 찍을 때 이외엔 이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분신인 양 캐비닛 속에 깊이 간직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신형 카메라들이 보급되면서 폐기처분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김씨의 간절한 부탁으로 이 카메라만은 창고에서 목숨을 연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대 후 한참 지나 우연찮게 카메라와 다시 만나게 된 김씨는 날마다 카메라를 닦고 매만졌는데 그 후 이상하게도 사진을 찍는 일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 찌그러진 곳 좀 보세요.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어요? 그리고 동료인 군인들의 주검을 직접 렌즈로 목격한 심정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김씨는 카메라를 사람 대하듯 말했다.

얘기를 듣고 있자니 김씨가 왜 사진을 찍지 않게 됐는지를, 그리고 이 카메라를 절대 팔지 않겠다고 말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잘 찍힌다고 하지만 김씨 본인은 결코 찍어본 일이 없는 카메라. 어쩌면 그에게 이 카메라는 현충일에 추모해야할 또다른 애국선열 혹은 부상당하거나 죽은 군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덧붙이는 글 | SBS U news에도 송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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