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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토플 응시원서를 내기 위해 한미교육위원단 사무국 앞 길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 이날 하루 종일 사무국 건물 앞에는 원서접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9일 오후 토플 응시원서를 내기 위해 한미교육위원단 사무국 앞 길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 이날 하루 종일 사무국 건물 앞에는 원서접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청주에서 버스타고 12시에 도착했어요. 근데 번호표가 없으면 접수를 안 시켜준다는거야…. 이거 접수 안되면, 기자 양반, 이거 기사 써야 돼요."

9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에 있는 한미교육위원단 토플(TOEFL) 접수대.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장건일(51)씨는 외고를 지망하는 아들의 토플 응시원서를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차례가 돼서 접수대로 다가간 장씨는 얼른 응시원서부터 내밀었다.

"이거 됩니까? 접수 됐어요? 빨리 해 주세요."

거듭되는 장씨의 질문에 원서를 받던 직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됐습니다. 가보세요. 다음 분."

장씨가 돌아서 나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 입구에는 장씨처럼 응시원서를 들고 밀려드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학생부터 직장인, 주부에 이르기까지 2000여명에 이르는 줄은 공덕지하철역까지 약 300여m 되는 차도를 구불구불 돌아 길게 늘어섰다. 덕분에 2차선 도로는 자동차의 경적소리, 교통경찰의 호루라기 소리와 고함소리가 엉켜 큰 혼잡을 빚었다.

"대구에서 6시발 KTX를 타고 아침에 올라왔어요. 서울에 도착하니까 벌써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더라구요. 5시간 넘게 기다려서 겨우 접수시키는 중이에요."

대학교 4학년생이라는 이상미씨는 "그래도 접수가 돼서 다행"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평가방식 바뀌기 전에 점수 따자?

응시원서를 2000명만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시민이 애꿎은 경찰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
응시원서를 2000명만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시민이 애꿎은 경찰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정호
평소 한산하던 거리가 이처럼 난장판이 된 것은 갑작스런 토플 공고 때문. ETS(미국 토플 출제기관)를 대신해 국내 영어자격시험을 주관하는 한미교육위원단은 어제(8일) 오후 인터넷을 통해 예정에 없던 토플 일정 및 접수공고를 내며 "9일 하루 동안 사무실에서만 직접 접수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평소 지방에서 팩스와 인터넷으로 응시원서를 접수하던 응시자들이 대거 몰려 큰 혼잡이 빚어졌다. 더구나 이번 시험을 마지막으로 토플이 CBT에서 IBT(internet-based Testing)로 바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 많은 응시자들이 몰렸다. IBT는 종전의 토플에서 문법이 제외되고 '말하기'가 추가돼 차세대 토플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응시자들이 대규모로 몰려온 것도 토플 방식이 바뀌기 전에 점수를 따놓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탓이다.

주관사의 준비 부족도 접수현장의 혼란을 부추겼다. 한미교육위원단 사무국은 처음부터 2000명만 제한해 응시원서를 받겠다고 했지만, 새벽부터 기다린 응시자들로부터 거세게 항의를 받아야 했다.

두 아들의 토플 응시원서를 접수하러 온 이아무개(48·주부·강남 개포동)씨는 "7월과 8월 두 차례 시험 접수를 한꺼번에 받는다고 하는데 8월 시험밖에 접수하지 못했다"며 "새벽부터 줄을 섰는데 2000명에서 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학을 준비중이라는 최원석(25·대학원생)씨도 "10시 30분부터 5시간 넘게 기다렸다"며 "끝까지 기다려서라도 원서를 접수시키겠다"고 말했다.

접수 마감됐지만 응시자 계속 몰려... 한미교육위원단 '골머리'

시험 일정을 갑작스럽게 공고하면서 팩스나 전화접수를 하지 않은 것도 응시자들의 불만을 샀다. 김순동(41·인천 거주)씨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갑작스럽게 부탁을 받고 친구 아들의 원서를 접수하러 왔다"며 "전화나 팩스접수가 안된다고 해서 직장일도 접고 나와 있다"고 털어놨다.

주부 이씨는 "우리 같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야 괜찮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응시하라고 일처리를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학부형은 "응시원서를 접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자식 대학은 보내야하지 않겠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한미교육위원단 사무국은 자신들도 몰랐다고 해명했다. 사무국 관계자는 "우리도 어제 ETS로부터 급하게 연락을 받아 공고를 띄웠을 뿐"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ETS에 직접 문의하라"고 답변을 피했다.

이날 사무국은 선착순 2000명까지 번호표를 나눠줘 응시원서를 받았지만, 접수자들이 계속 밀려들고 문의가 쇄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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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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