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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들의 채소시장이었으며 반찬가게였습니다. 전통적으로 논에서 하는 일이 남자의 일이라면, 밭에서 하는 일은 여자의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텃밭 일은 어머니가 담당하고, 아버지는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논에서는 아버지가 주도적이 되는데, 밭에서는 어머니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보면 팀장과 팀원의 역할이 논과 밭을 경계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밭에서 파를 심거나 고구마를 심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 즉 파를 직접 심고 고구마를 심는 일 등은 어머니가 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편안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거나 어머니가 심은 것을 다시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논이라면 상황은 달라져서 논에 볍씨를 뿌리는 일은 아버지의 몫입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보조를 할 뿐이죠.
저는 보통 상업농인지 아닌지를 텃밭 농사를 보고 판단합니다. 보통 대규모의 상업농을 하는 분들은 텃밭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돈이 되지 않는 텃밭 농사에 대해서 평가절하를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농민이라고 해도 상업농을 하는 분들은 "돈이 되는 농사에 집중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싼값에 농산물을 구입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농부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농부는 거의 없습니다. 아마 여기에 상업농의 마인드와 전통 농민의 생각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작물을 직접 재배합니다. 그 종류는 수십 가지가 훌쩍 넘습니다. 쌀 농사까지 짓고 있는 저희 집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농이라는 경제적인 한계도 있지만, 땅에 대한 애착과 농부로서의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한 번은 텃밭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의 수를 헤아리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재배하는 어머니도 그 숫자를 잘 모르시더군요. 현재 우리 집 텃밭에서 키우고 있는 것들만 봐도 다양합니다.
뒤뜰에서 키우는 것 중에 포도나무 한 그루, 도라지, 당귀, 양파, 돌나물, 대파, 부추 정도가 기억이 납니다. 앞뜰로 오면 더 다양해지는데요. 오이, 참외, 토마토, 방울토마토, 가지, 완두콩, 콩, 감자, 마늘, 고구마, 상추, 양상추, 가을마늘, 고추……. 제 머릿속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이 정도입니다만 아마 이것의 배에 해당하는 작물이 100평도 안 되는 그 땅에 있을 것입니다.
텃밭은 거의 완벽한 채소시장이자, 반찬가게
밭에만 가면 싱싱한 반찬거리가 항상 있는 것이죠. 어머니는 이런 완벽한 밭을 위해 때마다 정확하게 씨를 뿌리고 돌봐주며 수확을 합니다. 단 한 평도 땅을 놀리는 법이 없고, 시기를 거스르거나 잘못 심는 경우도 없습니다. 작물의 특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심어야 작물이 가장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는지를 알고 계시는 거죠.
대파의 경우엔 대파 씨를 뿌린 다음, 거기에서 나오는 대파를 다시 옮겨 심어야 합니다. 미리 씨를 뿌리고 옮겨 심어야 하는데, 이때의 경우도 대파를 크면서 뽑아서 먹을 것을 생각해서 7∼10개를 무더기로 심습니다.
그리고 심을 때는 한 쪽 발로 이미 대파를 심은 고랑을 밟으면서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파는 옆으로 펴서 심어야 합니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모든 작물은 심는 방법이 다 따로 있다고 합니다. 완두콩의 경우에도 너무 늦게 수확하면 콩이 말라 버리기에 정확한 시점에서 수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는 이런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머니지만 밭 가꾸기에서는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게십니다.
저는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밭에 대한 지식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런 지식은 돈이 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생존이라는 문제에 직면한다면 가장 중요한 지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휴대폰이나 자동차, 컴퓨터를 삶아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다양한 농산물을 키우는 텃밭의 경우에 병충해도 없는 편입니다. 웬만하면 농약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배추처럼 벌레가 완벽하게 먹어 버려서 수확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비하게도 다른 곳에 심은 작물은 잘 자라고 벌레의 공격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밭에는 동네에서도 보기 힘든 두꺼비와 도마뱀이 나올 정도로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벌레도 직접 손으로 잡아주고, 가급적이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의 신비한 텃밭에 놀랍니다. 그래서 밭을 이리 저리 배회합니다. 그 종류의 다양성과 씨를 뿌리고 거두는 그 완벽한 타이밍, 그리고 땅과 작물, 인간의 조화에 놀라는 것입니다.
벼농사와 텃밭 농사를 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인간 삶의 모습 중 가장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농산물 노마진 직거래 장터를 운영하는 참거래연대 (www.farmmate.com)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