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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일본 야마나시 현은 일조량이 많아 포도 복숭아 버찌 등의 과일이 맛있게 잘 익는다.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면 지천에 널린 게 포도밭이고 복숭아밭이다. 이 곳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산지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또한 일본에서는 꽤 알아준다. 버찌는 특히 미나미알프스 시에 재배농가가 몰려있는데 그 시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 장영미
4월엔 '이치고 가리(딸기따기)', 5월 말에서부터 6월 중순까지는 '사쿠람보 가리(버찌따기)', 7~8월엔 '부도 가리(포도따기)'란 현수막이 농가마다 내걸려 손님을 부른다. 'OO가리'란 해당 과일을 일정시간 동안 일정액의 돈을 내고 맘껏 따먹는 것을 말하는데 일종의 '다베호다이(食べ放題:맘껏 먹기)'다. 그러나 대부분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먹지는 못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사쿠람보 가리'의 계절. 내가 참가하고 있는 한 서클에서 미나미알프스 시로 '사쿠람보 가리'를 다녀왔다. 자동차로 30분 정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카네시메엔'은 농원 전체에 파이프로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망을 쳐놓았다. 버찌도둑들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작년에도 버찌도둑들이 야밤을 타고 극성을 부려 피해를 입은 농가가 속출했었다. 농원주인인 테즈카씨는 이렇게 망을 쳐놓아도 도둑들을 전부 막지는 못해 올해에도 벌써 피해를 입었다며 혀를 찼다.

ⓒ 장영미
'40분에 2천엔(성인)'이 요즘 시세다. 끝물이 되면 가격도 조금 싸지겠지만 역시 맛은 떨어진다. 돈을 낸 후 종이컵을 하나씩 받아들고 주인이 안내하는 나무로 갔다. 이곳은 손님에게 나무를 지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다른 손님들과 섞여서 따먹는 것보다 일행들끼리 오붓하게 따먹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안내받은 나무는 일본내에서도 달고 맛있기로 유명한 '사토니시키'란 품종이었다. 그만큼 가격도 비싼 품종이다.

손이 쉽게 닿는 곳에서 몇 알 따먹어보았다. 역시 달고 맛있다. 잠결에 얼떨떨해하는 22개월된 아들녀석에게도 두어알 쥐어줬다. 처음엔 그저 멀뚱히 서서 상황을 파악하더니 이윽고 단맛에 눈이 뜨인 녀석은 쉴새없이 버찌를 입으로 가져갔다. 씨앗을 뱉어낼 줄 몰라서 꼴깍꼴깍 삼켜버리는 게 영 불안해서 씨를 발라내고 반쪽씩만 주었더니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 장영미
일행들이 사다리에 올라가 윗쪽의 달콤하고 커다란 버찌를 몇 알씩 넘겨주자 내가 손을 쓰기도 전에 통째로 입에 쏙쏙 넣어버리는 녀석. 배탈난다고 이제 그만 먹자고 말려도 도무지 듣지를 않았다.

주인은 우리 먹는 게 별로 신통치 않다며 부지런히 먹으라는데 함께 간 일행들은 별로 먹성이 좋지 않아보였다. 아마도 모두들 가격대비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그나마 우리집이 아들녀석 덕에 본전치기를 했을까 말까. 내 손으로 갓 따서 싱싱하고 맛있을 때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인지 다들 손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만족해하는 걸 보며 주인은 검붉은 아메리칸 체리며 품종개발 중이라는 몇종류의 버찌를 한웅큼 씩 따다가 손에 쥐어주었다. 맛은 역시 사토니시키만 못한 걸 보면 사토니시키의 아성은 조만간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

돌아오면서 일행들은 직판하는 버찌를 조금씩 샀다. 과일 알러지 때문에 못먹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딸아이가 맘에 걸려 나도 250g을 천엔에 샀다. 대부분의 과일 농원들은 직접 택배접수를 받아 전국 어디로든 부쳐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일본은 '츄겐 (お仲元)'이라하여 선물과 함께 여름문안을 하는 풍습이 있다.

ⓒ 장영미
한국으로 치면 추석선물과 같은 개념일 것 같다. 이때 과일도 선물로 많이 보내지는데 이렇게 농원에 직접 주문을 하면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을 냉장택배로 원하는 곳에 보낼 수가 있다. 일행 중 일부는 그곳에서 택배로 버찌를 부쳤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택배를 주문하는 동안 아들녀석은 주인이 따놓은 버찌 상자안에서 연신 버찌를 꺼내 먹고있었다. 손님들 먹어보라고 내놓은 것이긴 하지만 아저씨가 싫어할텐데... 그만 먹으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그치질 않는다. 보다못해 그 상자를 내 손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다. 아니나다를까 몇시간 후 결국 아들녀석은 서너차례 설사를 하고 말았다. 녀석, 에미 말 안들으면 탈난다는 걸 좀 깨달았으려나...

집에 돌아와 사가지고온 버찌를 몇 알 먹어보았다. 역시 직접 따서 먹은 버찌만 못했다. 과육도 조금은 물러졌고, 생기도 단맛도 훨씬 못했다. 이런 이유로 '사쿠람보 가리'가 장사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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