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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 앞그림.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 앞그림. ⓒ 북폴리오
지금 방 안에는 무엇이 걸려 있나? 물건은 둘째 치고 분명 그림이나 액자, 족자 등 한두 개는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그림들을 왜 걸어 놓은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미관상 집안을 치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특별히 예술품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그리하였을 것이다. 또 실제로 값비싼 예술품이나 진품을 사다가 걸어놓을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옛날 서민들은 어떠했을까? 상류층처럼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을 살 수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이런 그림들을 흉내 낸 투박하지만 실용적인, 그래서 그들의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그림을 저잣거리 등에서 값싸게 혹은 비싸게 사다가 걸어놓는 정도였을 것이다.(지은이는 조선 후기 변화된 환경 속에서 일반 평민들도 생활 장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수요 요구가 생김에 따라 소위 환쟁이들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민화'를 '서민'의 영역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다. "'서민의 욕구'가 아닌 '서민적 욕구'가 반영된 그림"이며 "인간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반영한 그림인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그 소재지가 어디고 향유층이 누구든 간에 "그림 속에 서민적 정서와 세속적 욕망이 반영되어 있으면 넓은 의미에서 민화"임을 알 수 있다.

모란도, 가회박물관 소장.
모란도, 가회박물관 소장.
'인간 본연의 욕구'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두 가지 욕망으로 압축시킨다. 하나는 '생명 지속'이요, 다른 하나는 '안락과 풍요의 유지'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십장생도'('신선사상'과 관련됨)와 '수성노인도'(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남극성을 의인화하여 그린 그림으로 '천인감응사상'과 관련됨)를, 후자의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모란도'('부귀' 상징), '화조화'('부부화합' 상징), '화병 그림'('가내 평안' 상징) 등을 들고 있다.

화조도.
화조도.
이 책은 여러 문헌 속에 나타난 민화의 흔적들을 살펴보는 동시에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민화들을 본문에 집어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그만큼 풍부한 민화를 책 속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적인 한 부분은 현대인의 입장에서(사실 서구인의 입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민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대인의 사회적, 경제적, 생활적 상황에서 민화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하에서 우리가 흔히 민화를 '해학적'이라 바라보는 시선을 잠시 뒤집기도 한다. 즉 당대인이 민화를 대하는 시각은 오늘날 현대인이 바라보듯 웃음을 자아내게 하여 사람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공간을 아늑하고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서, 현실적 염원을 담아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에서 그리고 감상하는 진실된 그림이 민화인 것이다. (36쪽)

현대인들이 민화를 '해학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민화가 "고정관념을 깬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대상을 보는 화가의 시점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좌우상하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화의 멋(지은이는 멋을 '시각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 '심리적' 반응으로 본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가진 실력보다 더 잘 그리려 애쓰지 않은 순진하고 소박한 표현, 자유분방하고 치기어린 묘법(描法) 속에 숨어 있는 당당함"에 있다.

'민화'의 이러한 특성을 생각하면서 '생활문학'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생활 속의 글쓰기' 예를 들어 선대에서 찾자면 선인들의 '사설시조'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오늘날도 유사한 점은 있다고 본다. 특별한 기교 없이 자신의 생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진솔한 시로 쓰고 솔직한 글로 짓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이러한 맥락에 닿는 것이리라. 좀 못나 보여도 좀 서툴러 보여도 그것 내부에 지닌 모습은 삶의 진실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혁필 문자.
혁필 문자.
그건 그렇고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 서둘러 눈이 간 곳은 '문자도'이다. 문자도란 "한문자 또는 한문 문장을 회화화하거나 도안화하여 표현한 것"을 이른다. 책은 '혁필문자도' '도석문자도' '백수백복도' '윤리문자도' 등을 보여준다.

'혁필문자도'는 한자와 그림이 자획에 따라 연결되는 모습이 인상 깊고 획을 따라 덩달아 빛깔을 내는 무지개색도 독특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혁필화의 특징은 "덧붙여 그린 그림의 아름다움보다 문자 자체가 지닌 의미를 중시"한다.

'백수백복도'는 '수(壽)'자나 '복(福)'자를 한 화면 가득히 써놓은 문자 그림인데, 같은 글자이기는 해도 다양한 도안과 모양새로 제각각 그 글자체를 달리하고 있어서 다채로운 가운데 전체적인 조화와 짜임새가 있었다.

까치호랑이 그림, 브루클린박물관 소장.
까치호랑이 그림, 브루클린박물관 소장.
이번엔 민화하면 떠오르는 그림,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이 그림은 민간에서 주로 제작했던 세화(歲畵) 중 하나로 까치와 호랑이, 소나무를 기본 구성 요소로 한다. 까치호랑이 그림의 까치는 일반적인 화조화의 새가 지닌 의미와는 달리 '즐거움과 기쁨'을 상징한다.

그런데 주목되는 부분은 지은이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이 그림의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우선 "민화의 경우 소재 자체의 성격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복되고 좋은 일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제한 후, 호랑이로부터는 보답한다는 의미의 '보(報)'를, 까치로부터는 희조(喜鳥) 즉 '희(喜)'의 의미를 가져와 둘을 결합하면 '기쁨으로 보답한다'는 '희보(喜報)'의 뜻이 만들어지는 그림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민화에도 원칙은 있다. 화조도의 경우 새를 그릴 때 철저히 한쌍주의를 고집한다. 이는 부부화합을 통하여 가내 평안을 꿈꾸는 서민적 욕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민화는 생활적이고 세속적이다. 소박한 삶을 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의 욕망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에서 그려내고 있는 이런저런 삶의 그림들은 과연 어떤 것이고 그러한 삶 속에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러한 욕망을 담아서 내세우고 있는 상징물들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끔 하는 책이기도 하였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허균 / 펴낸곳: 북폴리오(대한교과서(주)) / 펴낸날: 2006년 5월 20일 / 책값: 15000원 / 출판사 홈페이지: www.bookfolio.co.kr


허균의 우리 민화 읽기

허균 지음, 북폴리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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