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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경운기를 좋아했다. 힘이 부치는 지금도 들로 일하러 갈 땐 항상 경운기 운전만은 본인이 하기를 고집했다. 이제 70이 다되어가는 아버지였다.
식구들을 경운기에 태우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위세가 있었다. 자식들의 자가용 안에서보다, 경운기 위에서 아버지는 아버지다웠다.
내가 자란 농촌에서 아이들에게 경운기 시동을 거는 것은 꽤 중요한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요즘 경운기에는 시동모터가 달려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시동모터가 따로 있지 않았다.
결국은 힘으로 시동기를 돌려서 시동을 걸어야 한다. 탕 탕 탕 거리는 경운기 소리는 힘으로 플라이휠을 돌리는 노력 끝에 나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집 경운기는 여전히 시동모터가 없다.
시동기로 플라이휠을 힘차게 돌리다가 어느 순간 시동기를 놓는 것이 경운기 시동의 포인트다. 그 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과 경운기의 거대한 플라이휠을 돌릴 수 있는 힘이 경운기 시동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보통 경운기 시동을 걸 수 있는 나이는 초등학교 4~6학년 정도다. 나도 그때쯤 경운기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러면 조금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경운기는 말 그대로 경운을 하는 기계다. 경운은 땅을 파는 것을 말한다. 경운기의 초기 목적은 소를 대신할 기계장치를 원했기 때문에 경운기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처음 경운기의 경쟁 상품은 다름 아닌 논 갈고 짐 옮기는 소였을 것이다. 소와 경쟁해야 해서 경운기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 경운기는 1960년대부터 사용되었다는데 우리 집에 경운기가 들어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후로 논 갈고, 흙 분쇄하고(로터리치고), 평탄 작업 하고, 짐 옮기는 일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이 놈이 우리 집에서 동고동락한 것이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경운기는 이미 오래 전에 트랙터에 밀려 사양길이다. 그래도 시골에서 경운기 소리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논에서 사용하는 기계장치 중 경운기만큼 저렴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장비도 드물다.
하지만 소가 경운기로 대체된 것처럼 경운기 역시 트랙터로 대체되었다. 요즘 경운기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논 갈고 로터리 치는 큰 일들은 트랙터가 하고, 경운기는 고작 간단한 물건을 옮기는 데나 겨우 사용된다. 경운기로 논을 가는 것은 소로 쟁기질 하는 것만큼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그가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경운기를 타고 논으로 갈 수 있을까? 그의 근력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농업의 위기 때문이다.
평생을 농부로 사신 아버지가 논을 떠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 잠시 그를 공장으로 내몰았던 농업의 위기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많은 농부를 도시로 쫓아 버린 이농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농촌을 떠난 농민들의 사회적인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보라. 농촌에서 농부는 오랜 기간 동안 농사기술을 습득하고 물려받은 숙련된 고급 기술자다. 더구나 그는 농촌공동체에서 나름의 지위와 역할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존재다.
즉 해고 당한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노동력이 자동차 공장이 아닌 곳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듯 농민 역시 땅을 떠나 도시에 가면 무능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역사이래 가장 많이 해고당한 사람들은 땅에서 쫓겨난 농부들이다. 그들의 쓸쓸함과 슬픔으로 우리는 성장했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한지 전국민의 8%도 안 되는 농민조차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이야기하면서 농토에서 몰아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이미 깡말라서 더 이상 다이어트 할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농촌에 더 많은 살을 빼라고 강요하는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경운기 소리는 아직도 울리고 귀농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아직 희망은 있다. 나는 아직 아버지가 몰고 가는 경운기를 타고 논과 밭으로 가고 싶다. 농촌은 다이어트를 너무 많이 했다. 다이어트 할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하는 참거래연대에도 올립니다.www.farmm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