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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의 원조? 세계 최대 짝퉁시장이란 말을 듣고 있는 중국 상하이의 상양시장이 오는 6월 30일이 되면 생긴 지 9년 6개월 만에 폐쇄된다.
ⓒ 유창하

▲ 짝퉁 CK 속옷을 사기 위해 열심히 고르고 있는 외국인들.
ⓒ 유창하
중국 상하이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누구나 한 번쯤 '세계 최대 짝퉁시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상양시장(襄陽市場)에 들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상하이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누군가 찾아오면 꼭 상양시장을 빠뜨리지 않고 끼워 넣어 반나절 쇼핑코스로 안내를 하곤 한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동서양 외국인 모두에게 인기 있는 상양시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중심가인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에 위치하고 있다. 총 7300여 평 면적에 1천여 점포가 들어서 있어 주말에는 10만 여명의 고객들이 대거 몰려온다는 대규모 짝퉁시장이다.

이곳에서는 경찰들이 버젓이 지키고 서 있기도 하지만 세계 각국의 가짜 명품들이 거리낌 없이 거래되고 있다. 페라가모 넥타이, 롤렉스 시계, 구찌 지갑, 던힐 라이터, 몽블랑 만년필, 켈러웨이 골프세트 등 크기가 중소형인 제품의 모든 세계적인 명품을 갖추어 놓고 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천여 점포에 주말 10만여명 찾는 세계 최대 짝퉁시장

그런데 이 상양시장이 들어선 지 꼭 9년 6개월만인 2006년 6월 30일, 드디어 문을 닫는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이전설', '폐쇄설' 등이 꾸준히 나왔지만 흐지부지 되고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완전히 문을 닫는다는 상양시장을 찾아가 보니 정말 폐쇄 분위기가 확연히 들어난다. 시장 입구 벽면에는 '2006년 6월 30일로 폐쇄한다'는 상하이시 행정당국의 공고문이 붙어있다.

또 '00호 점포부터 00호 점포까지는 00일 점포보증금을 지급한다'라는 시장 관리 회사의 공지문도 붙어있다. 일부 상점은 벌써 이전하여 이사 간 지역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상점에다 적어 놓은 곳도 눈에 띈다.

올해 초에 개최된 상하이 공상관리 행정회의에서 저우타이통 상하이 부시장은 "상양시장은 이전이 아니라 폐쇄한다"라고 강하게 폐쇄 의지를 피력한 적이 있다.

상하이 부시장 발언 이후 상양시장 폐쇄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고객층인 상하이 거주 한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폐쇄는 초관심사였고, 해외 각국에서도 폐쇄 여부에 관심을 가지고 보도를 할 정도로 국제적인 뉴스 거리가 되었다.

중국 공상관리국의 통계발표에 의하더라도 '상양시장 물품의 80%가 상표권 침해를 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이곳은 지적재산권 분쟁 대상의 대표적 시장이었고 거래 물량도 찾는 고객수만큼이나 많은 곳이다.

이번 폐쇄 조치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전 세계로부터 '지적재산권 보호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에 의한 것이다. 또한 중국에 진출한 유명브랜드의 제소와 판결 결과에 따른 조치이다.

스위스 시계산업협회에서 '스위스 시계 짝퉁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라고 지목한 것처럼 미국, 일본, 한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지적재산권 보호단체와 기관들은 계속해서 자국 지적재산권보호 문제를 중국 측에 제기했다.

또한 유명브랜드인 스타벅스,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 명품 브랜드 회사들도 유사 제품 제조회사와 판매시장 등에 상표권 소송을 제기했고, 제기된 소송은 중국 측의 패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상양시장 폐쇄 조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상하이 정부는 짝퉁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짝퉁 원조국'이라는 중압감과 오명을 벗어나고 싶고, '우리도 짝퉁과 정말로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세계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더구나 2010년 열리는 세계엑스포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하이 시로서는 도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짝퉁과의 전쟁'을 거세게 치를 것으로 보여진다.

▲ 신발가게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 고급브랜드 짝퉁 운동화가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 유창하

A급은 밑서랍에 잡화를 취급하는 가게 진열장 위에는 C급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고, 밑서랍을 열면 A, B급 물건들이 쏙쏙 나오기 시작한다. 지금은 파장 분위기라 웬만하면 다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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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분위기 확연... 예전 수준의 30% 가격에 땡처리 중

지난 17일 기자가 파장 분위기의 상양시장을 찾았을 때, 입구부터 예전과 다르다. 예전 같으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인임을 단번에 알아차린 호객꾼들이 "오빠~ 시계, 가방 있어 '루비통' 싸다, 창고에 있다"고 한국말을 하며 팸플릿을 보여주면서 따라붙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호객꾼들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나중에 점포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에 경찰이 호객행위 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여 30여명이나 구류를 살게 했다"고 한다. 지난 15일에 개최된 상하이협력기구 회의개최와 시장폐쇄조치가 시기적으로 맞물려 강력 단속을 펼친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가게마다 전 품목 할인 판매를 한다고 종이에다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놓았다. 상품 옆에는 아디다스 3벌에 100위안(한국 돈 1만2천원), 나이키 신발 150위안(한국 돈 1만8천원), 푸마 가방 30위안(한국 돈 3600원)라고 붙여놓았다.

그리고 상품 옆에는 영어로 디스카운트는 안 된다고 표기해놓았다. 지금 가게마다 표시된 상품의 가격표는 예전에 이곳 상인들이 손님에게 부르던 가격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따져보면 현 제시 가격이 적정 수준이라는 말이 된다.

물론 제품의 질이 다를 수도 있다. 짝퉁도 얼마나 진품에 흡사하냐에 따라 제품등급이 A, B, C 등급으로 각각 나뉘어져 판매되었기에 가격만 가지고는 단순 비교를 하지 못하지만 상양시장에서 가격 흥정 없이 '땡처리'를 하고 있는 것은 상양시장 개설 이래 처음 실시하는 바겐세일인 듯하다.

곧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많다. 예전처럼 상인들이 가격을 높이 부르지도 않고 웬만하면 재고품을 팔려고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 한 신발가게에 들르니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인다.

신발가게에서 한 외국인이 나이키 짝퉁 신발을 구입하고 나더니 명함을 받아 두는 장면도 눈에 띈다. 가게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더라도 찾아가겠다는 뜻이다. 이미 상하이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이미테이션 제품의 매력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 '땡처리' 중인 푸마 가방을 30위안에 판다고 적어놓았다. 지금 상양시장은 이달 말 폐쇄조치로 상양시장 내 전 품목 바겐세일 중이다. 하지만 판매가격을 적어 놓은 제품들은 예전처럼 쉽게 할인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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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지물 경고문 시장입구에 들어서면 프라다, 구찌, 몽블랑 등 수십가지 명품을 예시하며 가짜 브랜드를 파는 행위를 금하고 처벌한다는 공상국의 안내 공고문이 붙어있다. 하지만 이 안내문은 수년째 그대로 입구에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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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잘 깎는 한국인들, 부르는 가격의 20~30%에 구입

지난달 까지만 해도 상양시장 상인들은 손님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에 따라 대략적인 할인 가격 마지노선을 정해 팔았다. 동양인과 생김새가 확연히 드러나는 서양인에게는 부르는 가격의 40~50% 정도에 팔고, 일본인에게는 30~40% 정도, 한국인에게는 20~30% 정도에 팔았다.

한국인은 상품가격 할인 흥정을 잘 할 뿐만 아니라 상품 질을 보는 눈도 있어 그런지 몰라도 호가의 30% 정도로도 가격흥정이 되어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고 상양시장 거래 생리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의 경우이었다.

그동안 상양시장 상인과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과 상인들의 흥정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기 돈 내고 물건 사는 고객은 비굴하게 보여 지고, 상인들이 오히려 고객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불러놓고 할인해 주면서 마치 자비를 베푸는 듯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짝퉁이라 하지만 파격적으로 깎는 재미가 있어 좋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루이비통 짝퉁 가방 하나 사기 위해 4~5군데를 다니면서 밀고 당기는 승강이를 벌이면서 진을 뺀다. 그러다 비록 호가의 20~30% 가격에 샀다고 하더라도 정말 제대로 산 건지 바가지를 쓴 건지 알 수 없어 찝찝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구입한 대만산 골프채 명품인 짝퉁 켈러웨이를 어깨에 걸고 바쁘게 걸어 나가고 있는 고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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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양시장의 주고객은 부유층 중국인과 외국인들이다. 명품을 유달리 좋아하는 서양인들이 이곳을 즐겨 자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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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쇼핑몰 단지로 탈바꿈 할 듯... 짝퉁은 어디로 가나

상양시장은 그동안 '세계적 짝퉁시장'이라는 불명예를 달고 불렸지만 어찌 보면 '상양시장'이라는 일종의 브랜드를 가지고 활발한 상거래가 이루어졌었다.

그런만큼 '과연 이들 상양시장 상인들이 순순히 시 당국의 시장폐쇄조치에 수긍하고 다른 길로 전업을 하는 등 조용히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상하이에서 짝퉁이 설 땅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시 정부의 초강력 폐쇄조치가 이어지자 상하이의 다른 기존 도매시장이나 소규모 시장으로 이전해서 같은 짝퉁 제품을 취급하려고 해도 예전처럼 시장주변 여건이나 법적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

상표권 침해를 막기 위해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법률회사들과 계약을 맺고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선전 등 4개 도시에서 상표권 침해에 대해 공동으로 법적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브랜드와 계약을 한 법률회사들은 중국 4개 도시에서 직접 짝퉁 적발에 나서기도 하고, 만약 짝퉁을 적발하면 그 경중에 따라 소송을 걸거나 행정기관과 시장관리소에 통보하여 고액의 벌금 부과, 문제의 짝퉁 판매 상인과의 임대계약을 취소하게 하는 등 다각적인 법적, 행정적 조치를 강구하므로 앞으로 정식시장에서의 명품 짝퉁 판매는 그다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그래서 현재 6월 30일이라는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은 상양시장 상인들은 개별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상하이 소재의 크고 작은 시장으로 점포를 이전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업종으로의 전업을 고려 중인 상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번에 폐쇄되는 상양시장 일대는 대형 쇼핑몰 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홍콩의 거대 자본이 상양시장 비밀창고로 쓰였던 이웃 주택 일대를 매입하여 이미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쨌든 세계적인 짝퉁천국이라는 명성을 들으며 매일 수만 명이 드나들던 상양시장은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세계의 큰 흐름 앞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다만 상양시장의 명성을 선점하려는 인터넷 가상공간만의 조짐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 수많은 짝퉁 명품 인터넷 쇼핑몰이 건재하듯이 중국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도 '상양'이라는 이름값 때문에 각축전이 벌어진다. '상양로', '상양시장', '상양' 등의 도메인 선점 경쟁이 벌어졌다.

중국은 과연 '짝퉁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상양시장 입구 도로에서 에세, 던힐 등 짝퉁담배를 팔고있는 노점 가판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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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는 주변 건물들 상양시장 주변 주택들이 철거되고 있다. 이곳 주택들은 시장 점포의 창고로 사용되었고, 호객꾼들의 비밀가게로도 활용되었다. 이 일대는 이미 홍콩자본이 매입하여 대규모 야간쇼핑몰센터가 들어서기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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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간 오마이뉴스에서 쉬었네요. 힘겨운 혼돈 세상,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일상을 새로운 기사로 독자들께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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