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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99년 9월 10일 TV에 공개한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진 2단식 미사일.
북한이 지난 99년 9월 10일 TV에 공개한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진 2단식 미사일. ⓒ 연합뉴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또는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인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갖은 관측과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미국과 일본은 대북 제재를 거론하고 있느나 이것 역시 '만약 미사일을 발사 할 경우'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표면적으로 가장 관심거리는 북한이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다. 그러나 이런 요란한 무대의 뒤편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쪽은 중국이다. 중국이 과연 북한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즉 중국이 미사일 발사를 막을 것인지 아니면 묵인할 것인가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2주일 전 전화를 걸어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중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지난 13일 리자오싱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중지시키기 위한 영향력을 발휘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물론 미국은 6자 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에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뉴욕에 있는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와 직접 접촉해 경고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나라가 중국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른바 '중국 역할론'이다. 마치 현재 요란스러운 '미사일 무대'의 주연은 북한이지만 이 연극을 무대에 올릴 지 말 지를 결정하는 제작자는 중국인 것 같다.

지난 해 10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경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두 정상이 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지난 해 10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간 경협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진은 두 정상이 회담 전 악수를 나누는 모습. ⓒ AP=연합뉴스

위기 때마다 튀어나오는 중국 역할론

지난 2002년 말부터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민감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중국 역할론'은 마치 호리병속의 거인처럼 불려져 나왔다.

지난 2003년 초 북핵 해결을 위한 국제적 다자회담 준비가 논의됐고 북한이 이를 거부했을 때, 2005년 2월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했을 때, 지난해 가을 미국이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를 문제삼아 금융제재에 들어갔을 때, 그리고 현재 미사일 위기 속에서…'중국 역할론'은 예외없이 튀어 나왔다.

또 항상 따라 붙는 해석이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 행동만은 아무리 맹방이라고 해도 중국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중국이 북한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막았다는 증거는 없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위폐 문제다. 북한이 중국의 영토인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를 세탁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위폐 제조는 범죄행위이며 중국에게도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주기 때문에 미국의 강경 조치에 중국도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북·중 관계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관련 당사국들이 유연성을 발휘해 6자 회담을 재개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말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쪽에는 북한 뿐 아니라 미국도 들어간다. 즉 양쪽이 타협하라는 말이다.

사실 미사일 발사 자체는 주권 국가의 합법적 권리다. "북한에 압력을 가하라"는 압력을 받을 때 중국은 "타국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 중국이 간섭할 권리는 없다"며 뒤로 뺄 수도 있다.

이처럼 중국이 역할을 했다는 별다른 흔적은 없다. 그런데도 위기 때마다 다른 나라들이 계속 중국만 쳐다보게 된다. 다른 나라들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중국 역할론은 반복되고 이 와중에 중국의 동북아시아에서의 위상과 외교적 힘만 엄청나게 커졌다.

경제적 성장에만 정신없었을 뿐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외교에는 서툴렀던 중국은 6자 회담 개최국이라는 위치를 십분 활용하면서 어느 덧 '동북아 외교의 최고 강자'로 군림하게 됐다.

북한경제가 왜 미국에 의존하도록 만들지 못하는가

만약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중국 포위에 힘을 쏟고 있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오히려 중국의 위상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다. 시인 미당 서정주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키워 준 것은 8할이 부시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군은 북한에 주둔도 하지 않고있다. 중국과 북한은 합동 군사훈련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그들의 경제적 지원에서 나온다.

그 액수가 정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무상 원조 액수가 한 해에 최대 2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설, 양국 무역을 합해 북한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50%가 넘을 것이라는 관측, 북한이 한 해 사용하는 석유의 70~80%를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는 다는 추정 만 있을 뿐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경제적 지원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끌어내 세계경제에 포섭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에 꼼짝없이 의존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 의원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북핵해결을 위해 대북 특사를 파견하라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 의원은 부시 미 대통령에게 북핵해결을 위해 대북 특사를 파견하라고 주장했다. ⓒ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 의원 홈페이지

미국과 일본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말한다. 그러나 북한과 육지로 연결된 중국이 빠지면 효과는 별로 없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 공격 외에 실제로 쓸 수 있는 수단도 없으면서 계속 제재를 말한다면 이는 '종이 폭탄'에 불과하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도발을 즐긴다는 관측도 한다. 북한이 위기를 조장할 수록 미사일방어체제(MD) 등을 구축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중국도 북한의 도발을 즐길 것이다. 북한이 미국에 강하게 맞설 수록 역시 중국에 부여되는 '역할'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칼 레빈 상원의원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지난 14일 편지를 보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고위급 대통령 특사를 임명할 것으로 촉구했다. 이들은 "6자 회담이 대체로 성과가 없었다"며 외교 정책의 전환을 주장하면서 "우리는 아직 미국에 대한 공격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작업 중인 북한이 아니라 이미 핵무기로 무장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북한과 협상해야만 하는 악몽의 시나리오에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힐러리 의원의 말은 상당히 타당하다. 미국에 대한 공격 능력이 아직 미약한 북한과 협상할 때보다 미국에 대한 공격 능력이 충분한 북한과 협상 할 때 지불해야할 대가는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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