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국부론>의 지은이는 그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바로 '음식'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의 요지는 간단하다. 음식(먹을거리)이 건강한 나라는 부강한 나라이며, 반대로 그렇지 못한 나라는 약한 나라라는 것이다.
즉, '뭘 먹으면 좋을까?' 이 간단한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나라가 그렇지 않는 나라보다는 훨씬 '부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과연 음식이 무엇이기에 한 나라의 운명을 뒤바꿀 만큼 막강하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일까.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은 나라의 몫
이 책은 오늘날 병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식탁문화의 문제점과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각종 농약과 화학물질에 오염된 식재료들과 자본주의, 상업주의에 찌들어 사람보다 물질이 우선인 음식유통계의 전반적인 문제점 등이 논리적으로 전개되어있다. 지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모든 병폐와 모순발생의 원점은 바로 '국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예전부터 나라의 일이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업의 오래된 구호는 반드시 농업이 국력의 기반이라는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정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예부터 나라의 일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 안전한 음식의 문제가 국가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146쪽)
먹을거리와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밀접히 관련되어있다. 그러한 예는 역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및 유럽 강대국의 치열했던 커피산업의 틈바구니에서 하루아침에 빈민국으로 전락해버린 에티오피아와 케냐가 그렇다. 그들 나라는 과도한 커피재배로 인하여 척박해진 토지에 주식이었던 쌀을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세계 최하위의 빈민국가가 되었다.
같은 유럽이라 할지라도 영국 및 프랑스에서는 감자를 가난의 상징으로 여긴 반면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를 전투 식량으로 활용해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그 이후 감자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인기 있고 유용한 식량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아일랜드는 감자 기근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1/3이 줄어드는 참사를 맞기도 한다.
또 16세기 귀족들의 애호식품이었던 쇠고기 스테이크를 자신들의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자들에게 다량으로 공급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와 북미 대륙을 거대한 쇠고기 생산지로 바꾸어버린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켈트족과 북미 원주민 인디언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었다. 이처럼 음식은 미시적으로는 한낱 개인의 기호나 취향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지만 거시적으로는 한 나라의 정치, 사회, 권력, 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는 것이다. 즉, 음식은 문화이자 예술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주권이기도 하고 권력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우리나라 먹을거리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그 원인을 먹을거리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농업정책과 이를 뒤에서 기묘하게 조정하고 있는 미 제국주의에 있다고 말한다. 특히 오염되고 병들어가고 있는 식문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이익과 사욕만을 챙기는 부류를 '마피아'로 서슴없이 지적하고 있다.
종자를 개량할 때 그에 맞는 농약까지 함께 개발하여 판매하는 종자개량업자와 농약업자, 농업을 포기하면서 한 재산 챙길 기회를 노리는 부패한 새마을파, 농촌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농민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부패한 일부 농협, 합성조미료 생산자, 회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단체급식 서비스, 현란한 수사여구로 소비자들의 눈과 입맛을 현혹시키는 광고업자들, 농업을 지키기는커녕 개발의 선봉장 역할을 하는 재경부와 농림부, 그리고 일부 몰상식한 건축회사 등이 그들이다.
음식국부론,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자
지은이는 '현재의 수학화되고 통계화된 경제학은 이데올로기 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패권주의적 경제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음식의 안전이나 먹을거리의 공급 문제는 가정주부의 눈, 즉 여성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실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각을 '여성의 눈'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적인 실천대상으로, 지은이가 '건강한 밥상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 표현하고 있는 '생협'에 그 희망을 걸고 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국민소득이라는 허수가 가져다주는 패권적 경제학은 이미 남성주의 시각에 강하게 경도돼 있어 살림의 문제나 식생활의 문제를 들여다볼 만한 생각도, 방법론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 시대의 아수라장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아이들이고 여성이고 이 땅의 생태계이며 뭇 생명체일 수도 있다. 3000달러 시대의 개발경제학과 개발의 논리를 1만 달러 시대에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사람들은 결코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여성의 눈으로 들여다본 경제학, 그 출발은 어쩌면 음식국부론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153쪽)
그간 음식의 기원과 유래, 문화 등을 다룬 서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처럼 국가간의 권력과 음모, 정치사회학의 매체로서의 음식을 현실적으로 다룬 서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제학을 전공했고 현대환경연구원, 국무조정실,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생태와 관련된 실물경제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지은이의 이력답게 이 책에는 경제학과 경제이론, 행정, 역사, 정치에 관한 내용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책 내용은 다소 전문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꼼꼼하게 조목조목 풀어가는 지은이의 글 솜씨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 끝부분에는 아토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내용도 함께 소개되어 있다. 아토피로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뿐 아니라 내 가족의 먹을거리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 | "한국시장을 겨냥한 미국의 쌀농사" | | | | 이 책의 본문 중간중간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상식이나 알아두면 좋을 음식과 관련된 정보가 소개되어있다. 예를 들면 화학조미료로 인한 쇼크 현상을 일컫는 '중국음식증후군'이라든지 '영국의 유기농'과 관한 것들이다.
미국의 농업회사들이 우리나를 대상으로 쌀 생산을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원조법 기간인데 안남미라고 불리는 바튀바 종과는 다른 우리의 입맛에 맞는 자포니아 종을 재배하면서 우리나라 농업의 비극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조법과 각종 농업촉진기금의 지원을 통해서 순전히 우리나라 시장을 겨냥한 쌀농사를 시작한 곳이 캘리포니아이다. 자포니아 종은 미국의 자체 소비가 거의 없는 종이다. 자신들이 먹지도 않는 품종을 순전히 원조법에 의해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원조로 시작한 미국의 쌀 생산은 점차로 정상적인 수출 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곡물메이저인 코넬과 컨티넨털이 한국시장을 놓고 사활을 건 경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살아남은 회사는 한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독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루이지애나 주는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까지 개입할 정도로 이 문제가 지역의 주요 선거 이슈가 됐다. - 본문 중 | | | | |
덧붙이는 글 | 음식국부론/ 우석훈 지음/ 생각의 나무/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