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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관심 있는 이라면 기억의 보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한 구절이 떠오를 것이다. 이 구절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봉평을 두 번이나 다녀온 나로선 당연히 달내마을에 이사 온 뒤 메밀꽃밭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른들로부터 이곳에서 메밀을 심는 사람은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런데 어제 아침 산책길에 멀리서 바라보는 내 눈엔 분명히 메밀꽃밭이 들어왔다. 봉평 가서 ‘이효석 문화마을’ 가서 본 바로 그 메밀꽃이었다. ‘어른들이 설마 거짓말?’ 하다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아니었다, 메밀꽃이.
세상에! 바로 메밀꽃을 대신하여(?) 밭을 온통 메우고 있는 건 달걀꽃(개망초꽃)이 아닌가. 개망초는 농부들이 싫어하는 잡초 중 하나다. 이 녀석은 어릴 때는 덜 신경 쓰이지만 가만 놔두면 꽃대가 밭의 작물을 제치고 위로 마구 솟아오른다. 당연히 하늘의 햇빛은 물론 땅의 거름까지 독차지한다.
그때 마침 논의 물꼬를 보러 나온 반장 어른께 여쭤 보았다. 왜 밭에 작물을 심지 않고 묵혀둬 온통 잡초가 무성해졌냐고. 대답은 의외로 빨리, 그리고 간단하게 나왔다.
“갈 사람이 누 있능교?”
그러니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꿀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그곳만이 아니었다. 몇 도가니(산골에서 일컫는 자그마한 논이나 밭의 한 덩어리)가 칡넝쿨, 으름덩굴, 개망초 등의 잡초로 뒤덮인 묵정밭이었다.
시골에 묵정밭이 생기는 이유는 대략 둘로 압축된다. 도시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사 둔 논과 밭을 그대로 묵혀두었을 때와 시골 사람의 일손이 딸려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둬야 할 경우다.
달내마을에서 농사짓는 어른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이래야 예순 여섯이다. 이분들이 그 나이 그대로 있을 리 없으니 해가 갈수록 묵정밭은 늘어만 갈 것이고, 밭은 곧 황폐해져 작물을 심을 수 없는 야산이 돼 버릴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에는 논과 밭이었던 곳이 대밭이 되거나 아예 잡목이나 칡넝쿨로 뒤덮인 야산이 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자식들 중 혹 돌아와 농사를 이어 지을 사람이 있는가 하는 나의 물음에 반장 어른의 대답은 역시 빨리 나왔다.
“누 집이든 하나도 없소.”
달내마을 뿐 아니라 시골의 사정은 대부분 다 이렇다. 마지막 농부들이 사라지면 논과 밭도 서서히 사라져 갈 것이다. 그러면 혹 나처럼 철모르는 도시인이 지나치다가 개망초밭을 보고 메밀밭으로 오해해서 아름답다고 감탄할지도 모르고….
| | 묵정밭의 개망초꽃 | | | | 개망초꽃은 꽃의 모양이 둘레엔 흰자가, 속에는 노란자가 있는 달걀 모양이라 지역에 따라 달걀꽃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름은 된장국 냄새가 나지만 실제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 | | | |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