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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접근해서 본 능소화. 꽃잎 속에 꿀벌 한 마리가 들어가 열심히 밀원을 모으고 있다.
가까이 접근해서 본 능소화. 꽃잎 속에 꿀벌 한 마리가 들어가 열심히 밀원을 모으고 있다. ⓒ 이덕림
안방 창문을 반쯤 가리운 채 붉은 벽돌담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 덩굴에 선연한 색깔의 꽃들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난다.

'장마를 알리는 꽃'이라는 별명처럼 장마 시작과 함께 피기 시작한 꽃들이 우중에도 끊임없이 피고 진다. 화사한 울금색(鬱金色) 꽃송이들을 바라보면서 지루한 장마 속에 찾아드는 짜증을 얼마쯤 덜어낼 수 있어 기쁘다.

비 개인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낙화한 꽃잎들로 마당이 그대로 꽃밭이다. 목련과 달리 능소화는 낙화할 때에도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떨어진다.

능소화는 그 이름(범할 능凌, 하늘 소雨+肖)이 말해 주듯 '하늘을 범한 꽃'이다. 줄기로부터 흡착근(吸着根)을 내면서 줄기차게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려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그래서인지 예전엔 왕궁이나 반가(班家)에서만 기르고 서민 가정에선 못 기르게 해 '양반꽃'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전설에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사는 하늘의 궁전을 '능소전'(凌소殿)이라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그 이름이 결코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능소화는 신비스러운 색을 지녔다. 한 가지 색이 아닌 복합색이다. 꽃잎 바깥쪽은 밝은 오렌지색을 띄지만 꽃술이 있는 안쪽으로 갈수록 붉은 빛이 감도는 금빛을 띈다. 마치 그라데이션(gradation) 기법을 쓴 것처럼 색깔이 점점 짙어지는 것이다.

화심(花心) 쪽은 무지개의 두 번째 색깔을 닮은 선명한 주홍빛이다. 천상의 선녀들이 입는 천의(天衣)가 그런 빛깔이 아닐까? 비 개인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보는 능소화 꽃잎은 한층 눈부시다. 환상적일만큼 선염(鮮艶)하다.

중국 백과사전에서 능소화를 일러 '금등화'(金藤花)와 '자위'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이처럼 신비한 꽃 색깔 때문일 것이다.

붉은 벽돌담을 타고 오른 능소화 덩굴에 선연한 색깔의 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붉은 벽돌담을 타고 오른 능소화 덩굴에 선연한 색깔의 꽃들이 피어나 있습니다. ⓒ 이덕림
무궁화가 그렇듯 능소화 꽃잎도 다섯 갈래로 되어 있다. 꽃부리(花冠)는 나팔 모양이고, 꽃차례(花序)는 원뿔 모양이다. 영어 이름인 'Chinese trumpet creeper'는 원산지와 꽃모양, 덩굴식물임을 함께 알려주고 있다.

능소화는 본래 중국 장강(長江)유역에서 자생(自生)하던 식물이다. 그렇듯 능소화는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식물이라 예전엔 중부 이남에서만 볼 수 있었다. 내 고향 춘천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엔 못 보던 꽃이었는데 겨울이 많이 따뜻해지면서 지금은 우리 고장에서도 능소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양구나 화천 지방에선 아직도 볼 수 없는 꽃이다.

능소화엔 벌레가 안 낀다. 그러나 벌들이 즐겨 찾아온다. 그만큼 밀원(蜜源)이 풍부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꽃잎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도 능소화의 까다로움이다.

꽃술이 눈에 들어가면 따갑고 고통스럽다. 꽃은 약용으로도 쓰여 핏줄이 터져 어혈(瘀血)이 생겼을 때 쓰면 효능이 있다고 한다.

우리 백과사전에는 사실과 다르게 능소화가 8·9월에 핀다고 했는데 기록이 잘못인지, 아니면 기후변화로 능소화도 개화(開花)시기를 앞당긴 것인지 궁금하다. 서울의 경우 장마가 시작되기 조금 앞서 6월 하순부터 봉오리를 연다.

우리 동네 뒷산으로 오르는 길, 어느 암자 마당에 고목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운 능소화 덩굴.
우리 동네 뒷산으로 오르는 길, 어느 암자 마당에 고목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운 능소화 덩굴. ⓒ 이덕림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 원진(元 禾+眞)은 '해추(解秋)'라는 시에서 "가을비 마당 가 한죽(자죽·겉껍질이 적갈색을 띈 대나무)을 적시는데 능소화 꽃잎 느즈막히 지누나"라고 읊은 것을 보면 능소화가 장마를 넘기고 가을빛이 찾아드는 9월 넘어서까지 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입추를 넘겨 처서 어름까지 몇 송이가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능소화 유래에 얽힌 이야기로 궁녀 '소화' 이야기가 떠도는데 논리에 맞지 않는 픽션일 뿐이다. 왜냐하면 능소화 꽃 이름은 '하늘을 범한다'는 뜻의 '능소'에서 유래한 것이지 '소화'라는 인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동네 뒷산으로 오르는 길, 어느 암자 마당에 고목을 타고 올라 꽃을 피운 능소화 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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