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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쟁이로 뒤덮인 창은 비밀스럽다. 그 '비밀의 정원' 안은 여러 공간으로 가득차 있다.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들.
ⓒ 박태신
창덕궁 옆, '현대' 사옥 앞에 있는 '공간' 사옥을 아시나요? 건축가 김수근의 건축설계 사무소로 1970년대에 지어진 건축 명소입니다. 예전에는 연극 등의 문화공간이었던 '공간사랑'도 있었습니다. 그 건물을 한번 둘러보지요.

'공간' 사옥은 서로 다른 세계를 지닌 두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수근의 작품이자 '공간' 구사옥인 왼쪽 건물과, 김수근의 제자인 장세양이 지은 외벽 전체가 투명유리창으로 된 오른쪽 건물(신사옥)이 그것입니다.

▲ 책 <공간사옥>을 보니, "제1벽면으로서의 입체성 창호가 제2의 스킨(skin)으로서의 담쟁이에 의해 평면성으로 대체된다"라고 되어 있다. 담쟁이가 튀어나온 창들을 뒤덮는다는 말이다.
ⓒ 박태신
김수근의 작품은 건물 크기에 비해 작고 적은 창들을 빼고 전부 검은색 전벽돌로 이루어져 폐쇄적인 느낌이 드는 건축물입니다. 게다가 담쟁이 넝쿨로 또 하나의 두툼한 벽을 더해 더욱 비밀스런 형태를 취했습니다.

대신 내부로 옹골찬 건축물입니다. 층과 층의 구분이 모호하고 다양한 내부공간을 지닌 창의성 넘치는 건축물입니다. 공간 속에 공간이, 공간에 공간을 더한 것 같은 구조입니다.

공간(空間)은 비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형태로 비어 있느냐가 관건인데 김수근의 '공간'은 공간을 창조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 속에서 '공간을 창조하는 작업(건축설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방이 투명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기분은 어떠할까. 그래도 요즘은 브라인드가 많이 필요한 때!
ⓒ 박태신
반대로 오른쪽에 있는, 장세양의 작품 신사옥은 온전히 투명합니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1층 밑은 외부공간) 4층 구조물입니다. 계단길도 다 드러나 보입니다. 게다가 대형 기둥도 노출 콘크리트 형태로 외부에서 내부로 관통하고 있고 그 기둥도 밖에서 훤히 보입니다.

대형 블라인드를 전부 올리면 내부에서 사방을 훤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밖에서는 내부에서 작업하는 모습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건축물의 예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바로 옆으로 창덕궁이 자리 잡고 있어 욕심을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창덕궁의 건축물과 비슷한 키높이를 하고서 서로가 우월감 없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덕수궁 옆의 성공회 성당도 덕수궁의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기와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덕수궁에서 성공회 성당 쪽을 한번 보십시오. 고층 건물 높이에 제한선을 두는 프랑스 파리의 건축법도 어쩌면 비슷한 높이에서의 조화로움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남산의 전경을 가로막는 대형 건물의 존재는 부조화의 한 예입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가 이 건축물이 생기 돋을 때입니다. 세상을 맑게 씻기는 존재가 내릴 때 마치 반딧불이가 서로 만나 빛을 발하듯 그렇게 반응할 것 같습니다. 투명성 때문에요.

▲ 이 가교(전문용어로 '튜브형 브릿지')가 없을 때를 상상하니 무척 삭막하다. 두 건축물을 생기있게 하는 구조물.
ⓒ 박태신
이 두 신사옥과 구사옥의 허리부분에 서로를 잇는 가교가 있습니다. 천장까지 투명유리창으로 된 이 가교는 단지 건축물들의 연결 통로가 아닌, 한 세계에서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이음 건축물입니다.

이 이음 건축물이 없다면 어떨까요. 두 건축물은 그 외부적 차이뿐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별개의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 이음물이 있음으로 해서 불투명과 투명이 반대성을 갖지 않으며, 공간과 공간이 합해진 것보다 더 큰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 공간 내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긴 통나무가 두 개 가로 놓여 있다. 제주도식 대문. 통나무 세 개면 집주인이 멀리 가고 없음을 나타낸다. 이곳엔 두 개만 설치되어 있다.
ⓒ 박태신
그런데 이 두 공간 앞에 전혀 다른 시공간이 존재합니다. 석탑과 한옥입니다. 이 건축물도 같이 조성되었습니다. 바로 구사옥의 안마당 역할을 합니다. 구사옥의 입구는 푹 패어 있습니다. <공간 사옥>이라는 책을 보면 이 부분을 대청마루와 마당의 성격을 지닌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협소한 대지에서 진입부에 별도의 외부공간을 계획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길과 내부공간이 바로 만나는 것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입니다.

이 공간 사옥을 둘러보고 인근 북촌 마을과 창덕궁을, 또 반대방향으로 인사동 주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또 발품을 판다면 경복궁과 삼청동을 둘러보아도 좋겠지요.

아니면 차를 타고 조금 가서 사직터널 주변 인왕산 아래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 주변을 보아도 좋습니다. 이곳에는 북촌과는 달리 소박한 한옥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골목을 여러 번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김수근은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 길은 넓을수록 좋다"(김수근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로를, 골목을 걸어가면서 이 말을 음미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여유가 되시면 김수근 타계 20주년을 맞이해서 열리는 전시회 '지금 여기: 김수근'(7월 28일까지 동숭동 문예진흥원 옆 아르코 미술관)에도 한번 가보십시오. 이 문예진흥원 건축물도 그의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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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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