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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멜로와 환타지  요소가 강한 퓨전사극이지만, 극 초반의 인기몰이에는 역시 허준호와 전광렬 등 중견연기자들의 빛나는 열연이 있었다.
<주몽>, 멜로와 환타지 요소가 강한 퓨전사극이지만, 극 초반의 인기몰이에는 역시 허준호와 전광렬 등 중견연기자들의 빛나는 열연이 있었다. ⓒ MBC
젊은 스타들이 중심이 되는 현대극에 비해 사극은 중견 연기자들의 비중이 높은 장르로 꼽힌다. <대장금> <해신> <다모> <서동요>같은 작품들이 퓨전사극이라면 <불멸의 이순신> <여인천하> <태조 왕건> <연개소문>같은 작품들은 정통 사극으로 꼽힌다.

대사의 정확성과 발성, 눈빛 연기, 동선의 디테일, 육체적 강도 등에서 연기의 난이도가 한층 높은 사극은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세 무게감이 떨어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 사극에선 중견 연기자들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동근, 최수종, 김영철, 김명민, 손창민 같은 배우들은 사극을 통해 '재발견'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현대극에서 주목받지 못하거나 이미지 변신이 요구되던 이 배우들은 주연으로 등장한 사극의 놀라운 흥행에 힘입어 새롭게 평가되거나 성공적인 성인 연기자로 다시 자리매김 했다.

이외에도 사극은 감초 연기자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감초 연기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임현식(허준, 대장금, 서동요)나 이계인(태조 왕건, 주몽),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사랑받았던 박철민(불멸의 이순신), '뭬야'와 '그 입 다물라'라는 유행어로 기억되는 도지원과 최종환(여인천하), '상궁 3인방'으로 시선을 모은 여운계, 견미리, 양미경(대장금)같은 배우들도 사극에서 재발견됐다.

<연개소문>과 <주몽> - 중견 배우의 힘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연개소문>과 <주몽>의 초반 인기몰이에도, 역시 노련한 베테랑 연기자들의 빛나는 호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연개소문>의 유동근(연개소문 역)과 서인석(당태종 역), <주몽>의 허준호(해모수 역)와 전광렬(금와 역)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데 공헌했다.

<연개소문>은 배우들의 친숙한 전작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유동근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용의 눈물>의 이방원으로 대표되는 '제왕적 카리스마'의 이미지다. 유동근이 출연한 작품 속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들은 유독 강력한 힘을 지닌 절대군주이거나, 장군, 정치가 같은 인물이 많았다.

<삼국기>의 계백장군, <파천무>의 수양대군, <용의 눈물>의 이방원(태종), <장녹수>의 연산군, <조광조>의 조광조, <명성황후>의 흥선 대원군에 이르기까지, 유동근이 연기한 역사적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권력지향형 캐릭터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권력의 필연적인 속성과 내면의 고독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외로운 인물들이기도 했다.

서인석은 시대극 속에서 고독한 엘리트 지식인이나 호쾌하고 정의로운 남성상을 주로 연기했던 배우. <삼국기>의 김유신이나, <동의보감>의 허준 등의 배역을 맡아 원리원칙에 충실한 모범적 영웅상을 보여줬다. 2000년 <태조 왕건>에서 후삼국 시대를 풍미했던 호걸 견훤, <무인시대>의 무신권력자 이의방을 통하여 다시 주목받은 서인석은 과거보다는 좀더 마초적이고 약간은 해학이 가미된 개성 있는 캐릭터로 변모한 모습을 보여줬다.

전광렬과 허준호는 <주몽>이 재발견해낸 성과라 할만하다. 사극 이미지가 친숙하지 않았던 허준호는 극 초반 민족의 독립투쟁을 이끄는 전쟁 영웅 해모수 역할을 맞이하여 남성적 카리스마와 애틋한 부성애를 넘나드는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공전의 인기를 기록한 <허준>에서 정의감 넘치는 헌신적인 의원 역할로 사랑받았던 전광렬은 명예와 신의를 중시하는 부여의 군주, 금와왕 역할로 중후한 매력을 보여줬다.

전작 이미지 극복이 최대 과제

정통사극에 가까운 <연개소문>은 90년대 이후, 사극을 대표하는 중견연기자들의 올스타전에 가깝다.
정통사극에 가까운 <연개소문>은 90년대 이후, 사극을 대표하는 중견연기자들의 올스타전에 가깝다. ⓒ SBS
주연배우들을 제외하고도 <주몽>에는 이재용(대사자 역), 김병기(연타발 역) 이계인(모팔모 역), 오연수(유화 역), 권용운(무송 역), 견미리(원후 역) 등의 실력 있는 중견 배우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연개소문>에서는 김갑수(수 양제 역) 장항선(장손무기 역), 이효정(영양왕 역), 최종환(고건무 역), 이정길(을지문덕 역), 박인환(연태조 역), 류태웅(설인귀 역) 등이 출연한다.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나름의 고민들이 있는 상황.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로 넘어온 <주몽>은 송일국(주몽 역)이나 한혜진(소서노 역)같은 젊은 주연배우들이 극의 중심축을 이어받으며 초반 보여준 활력과 극적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반면, <연개소문>은 아직도 전작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전작과의 차별화가 숙제로 제시되고 있다. 주연을 맡은 유동근과 서인석의 경우, 전작과 별 차이 없는 똑같은 연기와 캐릭터가 아쉬움을 준다.

물론 전작에서 높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들의 이미지를 재활용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똑같은 연기와 설정의 반복으로 오히려 '재방송'을 보는 듯한 식상함을 안겨줄 위험도 크다. 실제 역사를 다룬 대형 사극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필요한 반면, 정작 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주조연급 연기자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보니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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