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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발의 노인이 담요 하나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다.
ⓒ 선대식
18일 밤 11시 강원도 평창군 일대의 이재민 250여 명이 수용된 진부중·고등학교를 찾았다. 이때까지 평창군은 비에 젖어 있었다.

체육관 안에는 은색의 깔개가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폭우로 보금자리를 잃은 백발의 노인들이 가득했다. 많은 노인들은 평창군청과 대한적십자사에서 제공한 이불 한 장을 덮고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몇몇 노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피곤한 모습으로 미래의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체육관 안엔 4대의 대형 온풍기가 있었지만 다소 싸늘했다. 체육관 입구에는 대한적십자사의 급식차량이 서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하루 세 끼를 급식으로 버티고 있다. 체육관 입구 안쪽에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보내 온 응급구호세트 상자들이 보였다. 그 옆에는 컵라면, 음료수, 쌀 등 구호 식량이 쌓여 있었다.

체육관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기자에게 "비가 언제까지 오느냐"고 물었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소망하고 있는 이들은 하루 빨리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일기예보를 볼 만한 TV가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김복순 할머니 사연

▲ 18일 밤 12시 이재민 대피소의 모습. 이재민들이 잠을 자고 있다.
ⓒ 선대식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김복순(75·평창군 진부면 구리) 할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불 꺼진 체육관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김 할머니는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지금 3일째 뜬눈으로 할아버지와 손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 할머니는 집중 호우만 생각하면 몸서리를 친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고통이다.

"지난 토요일, 집이 인근 야산에서 떠내려 온 토사에 완전히 묻혔어. 잠을 자다 물과 토사가 덮치는 순간 할아버지, 손자와 함께 겨우 몸만 빠져 나올 수 있었지."

할아버지는 지병이 악화돼 원주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곳에는 둘째 아들과 손자가 함께 가 있다. 김 할머니 역시 골다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김 할머니에게 가장 힘든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다.

김 할머니는 "작년 강릉에서 죽은 막내아들이 생각나서 힘들다"며 "지난 15일 흙더미에 묻힌 집은 최근 생활이 어려워진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손주를 맡겨와 함께 살아 온 집이었다"며 울먹였다.

김 할머니는 얼마 전까지 직접 만두를 만들어 인근 가게에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 김 할머니는 돌아갈 곳이 없다. 또한 현재 김 할머니의 재산은 입고 있는 옷 한 벌이 전부다. 이런 할머니의 생활이 언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김 할머니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손자 박원빈(7)군 이야기를 꺼냈다. 박군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박군이 얼마 전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하며 박군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

"제가 이다음에 커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좋은 옷 많이 사드릴게요. 그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야 돼요."

30대 마을 주민 대표의 고단한 일상

"지난 토요일부터 지금까지 새벽 3시에 누워 오전 5시에 일어난다."

19일 새벽 2시, 체육관 입구에서 수해 임시대책본부의 마을 주민 대표인 황정구(36·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씨를 만났다. 황씨를 비롯해 40~50대 '청년' 10여 명이 200여 명의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황씨는 이재민 대피소의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 황씨는 이재민들 중 가장 늦게 자고 가장 빨리 일어난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집이 무너지거나 물에 잠긴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이 분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모두 60~70대 노인들이다. 하루 빨리 삶의 터전이 복구되길 바라고 있다."

황씨 역시 이번 수마의 피해자다. 황씨의 집은 물에 잠겼고 감자와 배추가 심어져 있던 밭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황씨 역시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 걱정부터 앞선다.

황씨는 폭우로 사망한 친구의 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동생이 강릉의 한 병원 영안실에 있는데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 황씨는 자신의 피해보다도 동생과 집을 함께 잃은 친구를 안타까워 했다.

"지금 하늘을 바라보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비가 그쳐도 문제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흙더미에 묻힌 집들은 대부분 30~40년 된 황토집인데 이런 집들은 복구를 못한다. 황토가 약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황씨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잠든 새벽 2시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황씨는 전기시설을 점검하고 강당 내 주민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황씨는 "오늘도 3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 이재민 대피소로 지정된 진부중고등학교 체육관 입구에 쌓인 구호 물품 및 식량.
ⓒ 선대식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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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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