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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 1957~2005 ) 표지입니다.
김영갑 ( 1957~2005 ) 표지입니다. ⓒ 김영갑
얼마 전에 큰마음 먹고 디카를 샀다. 디카의 매력은 필름을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현상하지 않고 보관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점이다. 또 디카는 조금만 배우면 자유자재로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디카를 휴대폰처럼 휴대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디카와 함께 하면서 세상이 좀 달리 보인다.

일상의 사소한 것에 의미을 부여하게 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된 것이다. 내가 찍은 이미지가 객관적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지라도 내 주변에 있는 것이고, 내 시선이 머문 곳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한 자락을 담았기에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실 전엔 사진이란 단순히 추억하고 싶은 순간을 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속에 찍는 이의 시선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진작품이란 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현란한 이미지일 뿐이라 생각했고, 순간을 포착하여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까 솔직히 사진 작품 속에 실린 작가정신이랄지,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통 몰랐던 것이다. 그런 내가 생활 주변을 렌즈를 통해 보기 시작하면서 '사진작가에게 작가정신이 필요하구나! 사진작품 속에서도 작가의 모습을 읽어 낼 수 있겠구나!'라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깨달게 되었다.

김영갑의 사진집을 대하고, 48세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불운의 사진작가 김영갑은 무엇을 담았는가? 묻게 되었다. 그는 20여 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제주 오름의 사계를 담았다. 제주의 빛과 그림자를 담았고 바람과 구름을 담았다. 그 속에 숨쉬는 자연의 울림을 담아냈다. 처음 김영갑의 사진집을 받아 봤을 때, 특별할 것 없이 밋밋한 작품들을 보고 잠시 실망했다. 안목이 없는 탓에 글자를 통해서야 비로소 사진들이 새롭게 다가 왔다.

‘아주 평범한 풍경을 제주의 정체성으로 확장했다.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전혀 없는 풍경, 그는 그 평범함을 가장 제주다운 풍경으로 바라보았다. 그랬다. 사진이 그런 말을 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풍경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풍경이라고, 생명을 주는 호흡이 뭐 특별할 게 있느냐고, 맞는 말이다. 사진의 미학은 여기에 있다. 사진도 삶처럼, 호흡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래야 수용되고 오랫동안 품에 안겨지는 사람이 된다. 사진을 사진답게 하는 것은 자연성이다. 미학의 정토는 바로 이것이다. 풍경을 만든 삶. 삶을 만든 풍경을 꿰뚫는 것이 사진의 철학이다. 철학만이 진정한 사진을 만들고 삶을 수용하는 사진만이 미학이 될 수 있다.’

현란한 기술을 자랑하는 자극적인 사진작품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김영갑은 태초의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는 고요한 원시적 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고요한 오름 능선에 펼쳐지는 바람의 모습은 참으로 다채롭다. 나뭇가지를 심하게 흔드는가 하면, 갈대밭을 날카롭게 스치기도 하고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람만이 자연물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채꽃밭에 펼쳐진 역동성은 분명 바람이 아닌 작가의 흥분된 빠른 움직임이었다.

작가 김영갑은 이런 자연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체된 자연물에 빛과 구름이 투영된 전혀 다른 실체를 드러낸다. 이 순간은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 것이리라, 작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수 많은 시간을 기다림 속에서 보냈다. 한번 놓치면 일년을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기다려도 다시 만나지 못 할 때도 허다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0년. 말년에 루게릭 병을 얻어 6년 간 투병생활을 하는 와중에 손수 두모악 갤러리를 만들고 그 마당에 뼈를 뿌렸다.

그가 보여준 제주는 내가 보았던 관광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물도 거부했다. 그가 보여준 것은 제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중간산이다. 그 오름이 그려낸 것은 선이고 색칠한 것은 빛과 그림자, 구름과 안개이다. 그 오름을 들뜨게 하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과 작가였다.

태초의 모습처럼 평화로운 이 원시적 미가 제주도 본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그가 찍어낸 것은 자연이었고 고요며 평화였다. 인공적인 것을 거부하고 오직 자연이 주는 것으로 원초적인 자연미를 드러내 미의 절정에 도달하고 싶어했다. 그는 근원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했던 원대한 꿈을 품은 작가였다.

덧붙이는 글 | 1957~2005 김영갑/ 글-사진 김영갑 /값 4만5000원

리더스 가이드, 알리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


김영갑 1957-2005 - Kim Young Gap, Photography, and Jejudo

김영갑 사진.글, 다빈치(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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