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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새만금간척사업 추진세력이 새만금간척사업과 새만금방조제 앞에 접두사처럼 즐겨 쓰는 말이 '세계 최대'와 '세계 최장'이라는 수식어다.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는 스스로 '보통사람'이라 강변했지만 호남 인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보통' 개발공약으로는 안되었다. 경천동지할 개발공약이 필요했다.

▲ 87년 대선국면에서 농림부가 발표한 새만금간척사업. 방조제가 비안도를 경유하도록 하여 ‘세계 최장’을 도출하였다. 87년 12월 12일자 <서울신문>
ⓒ 한국언론재단 데이터베이스
'세계최대의 간척사업'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품고 노태우 후보는 전북지역 유세에 나섰다. 1987년 12월 10일로 선거일을 불과 엿새 앞둔 시점이었다. 유세를 마치고 무개차에 올라 유세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돌멩이와 벽돌조각이 날아들고 사제폭탄이 터졌다. 도망치듯 군산을 빠져나온 노태우 후보는 전주로 향했다. 그러나 유세장인 전주역 앞 광장은 이미 돌멩이와 화염병이 난무하고 있었다.

노 후보는 연단에 서보지도 못하고 전주 시내 모 호텔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어 '새만금간척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빅카드를 발표하였다. 이 사업은 이로부터 1개월 전인 87년 11월 11일 당시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후보가 전북도민의 숙원을 수렴한다며 발표했었으나 경제기획원 등 관계부처에서 '경제성이 적다'는 이유로 반대하여 '군산․장항광역산업단지' 건설사업이 끝나는 2000년 이후에나 재론키로 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코앞에 두고 뒤집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발표는 '전주유세 무산' 기사에 묻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언론에 대서특필 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노 후보의 전주 발표 이튿날 당시 김주호 농림부 장관은 노 후보의 전주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서해안 시대의 개막에 발맞추어 동진강 만경강 하구에 4만2000ha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대 중국 무역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내용의 새만금지구간척사업을 시행한다고 확정 발표한 것이다.

이 때 발표한 새민금방조제는 군산산업기지에서 출발하여 오식도-비응도-야미도-신시도-비안도-가력도-변산의 대항리를 연결하는 길이 34km로 세계최대인 네덜란드의 주다찌 방조제 32.5km보다 더 길었으며, 현재의 방조제에서 바깥쪽으로 4km 떨어진 비안도를 경유하고 있다.

▲ 91년 새만금간척사업 착공당시 동진강 휴게소에 걸린 조감도. 방조제가 비안도를 밖에 두고 있다.
ⓒ 허정균
그런데 내초도와 오식도, 비응도를 포함한 지역은 토지개발공사에서 군장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지로 계획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만금방조제의 출발은 비응도에서 출발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아무리 자를 대고 그어 봐도 '세계최장'이 도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91년 방조제공사가 시작될 무렵의 조감도에는 방조제가 비안도를 거치지 않고 신시도에서 가력도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 최장을 위해 방조제가 지나치게 외해로 멀리 나가있어 사실상 공사가 불가능함을 알고 이를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장'은 완전히 물 건너 간 꼴이다.

1구간:변산면 대항리-북가력도(4,694m)
2구간:북가력도-신시도(9,936m)
3구간:신시도-야미도(2,693)
4구간:야미도-비응도(11.436m)

전부 합해도 28.759km이다. 세계최장 주다찌 방조제에 훨씬 못미친다. 그래서 토지개발공사가 매립한 군장국가산업단지 내초도-비응도 구간 5.1km 구간을 포함하기로 하여 현재 새만금방조제의 길이는 공식적으로 33.8km이다. 이처럼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억지로 태어난 것이다.

최근 <오마이뉴스>의 보도로 방조제의 실거리가 논란이 되자 한국농촌공사는 "새만금 방조제 착공 이후 새로 건설된 새만금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방조제의 총 길이는 33.8km"라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비응도-내초도 구간(5.1km)은 새만금 지구내 토지 및 담수호를 바닷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방조제)으로 이미 축조되어 있어 시행주체(토지공사)가 다르더라도 새만금 방조제 길이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조제란 바닷물을 차단해 둑을 쌓는 것인데 비응도-내초도 구간은 육지와 담수호를 구분하는 것으로 방조제로 볼 수 없다. '군장국가공단개발사업 실지설계 보고서'(한국토지공사, 1991.10)에는 "공단의 외곽시설인 서측호안공(연장-2,548m), 남측호안공(연장-5,205m) 및 부대공에 대한 설계계획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어 시행주체인 토지공사는 방조제 공사가 아니라 호안공사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전북 인터넷신문 <참소리> 7월 26일 보도). 농촌공사의 주장대로라면 방조제는 비응도에서 군장산업단지 서측 호안공과 북측 호안공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렇게 계산하면 새만금방조제는 33.8km보다 훨씬 더 길어지게 될 것이다.

▲ 토지공사가 매립한 군장산업단지
ⓒ 구글어스
이처럼 새만금간척사업은 '세계 최대', '세계 최장'을 목적으로 태어난 사업이며 어떤 제동장치도 듣지 않고 듣지 않고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와도 같다. 그 동력은 정치인들이 전북 도민에게는 심어준 '새만금=전북발전'이란 환상이다. 이 등식은 아직도 전북 도민들에게 신앙처럼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황우석의 줄기세포와 닮은꼴이다. 지난 15년간 무수한 정치인들이 '새만금환상곡'을 부르며 자신의 정치 목적 달성에 이용해 왔다. '국내최대의 국가산업단지', '세계최대의 골프장', '세계최대의 타워' 등이 여과없이 언론에 굵직한 활자로 박혔다.

지난 1월 24일 새만금 전시관을 방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정한수 새만금사업단장의 브리핑을 듣고는 "앞으로 새만금으로 전국민이 먹고 살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였다. 자신의 고향사람들이 새만금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이제 '새만금폭주기관차'는 끝물막이공사라는 반환점을 돌아 '세계 최대'의 환경재앙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새만금방조제는 '세계최대'를 위해 해안선으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나가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간척지는 평균해수면보다 낮으며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외해로 방출되는 홍수량은 배수갑문의 개방시간이 짧아 크게 제약을 받고 있어 거대한 환경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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