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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붉은사슴뿔버섯 1
ⓒ 고평열
올해의 장마는 유난히도 길다. 7월 내내 비만 오는 날씨로 채워진 여름의 초입을 지나 이제 바야흐로 여름다운 여름을 느낄 시간이 무르익고 있다. 축축한 습기와 후텁지근한 바람에 끈끈한 땀방울이 겨드랑이에서 배어나는 날들이 8월 내내 이어질 것이다. 불쾌한 듯하면서도 또한 겪어 내고 싶은 오기가 드는 여름날들을 한편 기다리고 있다.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하는 아주 단순한 명제를 가끔 무시하고 싶어서 에어컨으로 여름을 겨울답게 하고, 난방으로 겨울을 여름답게 만들어 내지만,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익혀놓지 않는 인간의 육체는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버섯들만큼 건강한 진화를 해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 주 며칠은 심한 비가 내릴 날씨로 긴 옷을 입어도 덥지 않을 만큼의 서늘한 날씨가 2, 3일 이어졌다. 버섯관찰을 나선 물찻오름 인근에는 버섯 발생량이 더운 날씨의 20~30%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장마 때여서 습기가 많은 계절이니까 당연히 많이 돋아나 있을 것이란 걸 믿고 나선 관찰이어서 사뭇 의외였다. 몇 시간을 별 소득 없이 돌아다니면서 그때서야 내가 덥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고, 온도를 체크해 보니 한낮의 기온이 섭씨 23도이다.

그러니 버섯이 한창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할 새벽녘에는 제법 서늘했을 것이다. 버섯들은 자신의 원하는 지상의 온도를 기다려 하루나 이틀 쯤 더 지하의 세계에서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 붉은사슴뿔버섯2
ⓒ 고평열
버섯을 찾을 수 없어 가난해지려던 나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오름 정상주변에 무리를 지어 있다가 나를 반기는 사슴뿔버섯의 균륜을 만났다. 갑자기 마음이 행복해지고 풍요로워 진다.

작년에 사슴뿔버섯을 만났을 때는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던 시간 중에 엉겁결에 만나서는, 조바심이 생겨 사진도 제대로 한 컷 찍을 수 없을 만큼 서둘러야 했었다. 아주 펑퍼짐하게 퍼질러 앉아 버섯을 반기는 이 기분은 좋아하는 자기만의 일에 빠진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리라. 편안하게만 지내는 시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도전하고픈 마음 같은 것이 가끔 가슴 속에 똬리를 틀었다가 고개를 쳐든다.

행복하고 싶지만,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행복이란 안일함과는 다른 그 무엇임을 나잇값을 하려는지 이제야 비로소 절감하고 있는 탓이다. 몰두에서 얻어내는 열정의 땀 냄새가 향수냄새보다 더 좋게 느껴지고, 흙 묻은 운동화가 아무렇지도 않고, 그을린 얼굴이 부끄럽지 않은 그 모든 변화의 한 가운데에 진화라는 이름의 과실이 있다. 그 과실을 품어 키우는 유기체로서의 나로 살고 싶은 욕심이 난다.

▲ 붉은사슴뿔버섯 3
ⓒ 고평열
진화란 안주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아가려는 몸부림의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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