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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통대 별관. 위로 여는 창과 처마의 모양새가 이 건물이 오래되었음을 알게 한다.
ⓒ 박태신
저는 '방통대' 학생입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말입니다. 영명 표기에는 'Open University'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이름에 걸맞게 학생으로서는 무척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교입니다.

방통대는 나이에 상관없이 적을 둘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학점이 나빠도 혼날 일이 없고, 장학금의 예를 제외하면 절대평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경쟁의 의미도 적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리어 스터디 형식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지요. 그저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방통대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습니다. 번화한 대학로 거리 너머 예전 서울대학교 자리에 있습니다.

정문으로 들어오면 우측으로 고즈넉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문화재 건물이기도 하면서 방통대 별관으로 쓰는 건물입니다. 작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해서 '나이 든 티'를 없앴습니다.

1909년에 만들어진, 대한제국 유일의 목조 건물입니다. 당시에는 국립공업연구소 격으로 쓰였습니다. 목조 2층 건물로 르네상스식이고, 건물 벽은 독일식의 비늘판입니다. 외벽에 붙인 널이나 판 같은 것을 '비늘판'이라고 하나 봅니다. 조사 덕분에 건축용어 하나 알았습니다.

이곳 2층 강당에서 번역에 관한 강좌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번역에 대한 인식과 번역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문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라도 번역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지금의 외국어 교육이 영어, 일어, 중국어에 편중되어 있는 것은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문제가 큽니다. 제가 듣기로는 고등학교의 불어, 독어 선생님을 연수를 시켜 일어 교사로 활용하기도 한답니다.

▲ 방통대 중앙도서관. 일반 대학에 비하면 왜소하지만,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이 모여 내는 부산한 소리는 방통대만의 모습이다. 키큰 느티나무가 옥상을 넘본다.
ⓒ 박태신
이 별관 뒤로 제가 자주 가는 중앙도서관이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강의가 방송되기 때문에 이곳 1층과 2층에는 수십 대의 컴퓨터들이 놓여 있고, 많은 학생들이 헤드폰을 쓴 채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지금 글 쓰는 것처럼 엉뚱한(?) 곳에 더 잘 사용합니다만.

하루를 도서관에서 보내는 때가 많습니다. 지금은 중간고사 준비기간이라 도서관 안은 분주합니다. 시험 준비하랴, 리포트 준비하랴 다들 열심입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보통의 대학과 조금 다른 분위기입니다. 이곳에서는 만학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연령층이 1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합니다. 그 다양한 학생들이 한 건물에서 북적이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들 열심이고 진지합니다.

기말고사 준비기간에는 도서관이 연장근무를 합니다. 새벽 5시에서 밤 12까지. 원한다면 거의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별관 건물과 마찬가지로 작년에 대대적인 수리를 한 도서관은 한결 깨끗해지고 쾌적해졌습니다. 난방이 전에는 중앙공급형이어서 다른 건물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이 난방장치의 독립화가 공사의 주목적이었습니다.

▲ 방통대 학생회관. 모임을 알리는 동아리 광고가 건물 내 벽면을 장식하는 것은 여느 대학과 다를 바 없다. 투명 엘리베이터도 있는 최신식(?) 건물.
ⓒ 박태신
도서관이 많은 나라는 어쨌든 좋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요즘 '느낌표 도서관'이니 정보도서관이니 해서 도서관이 많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도서관을 이용했습니다. 어릴 때의 추억이 깃든 정독도서관, 동대문 시립도서관, 신내동 구립도서관, 뚝섬 방통대 학습관 도서관, 이곳 중앙도서관 등. 가끔 여행 가서도 그곳 도서관에 들르기도 합니다. 왠지 거리에서 도서관 이정표를 찾아보곤 합니다.

인터넷이 있으니 어쨌든 도서관 안에 있으면 세계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독서를 하는 것도, 물론 세계와 소통하는 것입니다. 학우들끼리의 대화도, 신문과 잡지의 구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 일도 물론입니다.

가끔 불만스러운 것은 이곳 중앙도서관과 달리 많은 시립도서관, 구립도서관의 경우 도서열람실이나 정보열람실 등의 문을 일찍 닫는다는 점입니다. 더 이용이 많을 수 있는 주말에는 더 일찍 문을 닫습니다. 사서의 인력난이나 운영비 때문이겠지요. 학생들이, 또는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주경야독하는 성인들이 좀 더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오래 개방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곳 학생들 중에는 자기 자녀와 비슷한 시기에 시험을 준비하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자녀는 학교에서, 부모 자신은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애씁니다.

옥상은 담소를 나누고 머리도 식히는 공간입니다. 옥상까지 자란 느티나무와 키재기를 하면서,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방통대는 전국 곳곳에 학우가 있는 학교입니다. 캠프나 MT가 있으면 전국에서 모이기도 하지요. 방통대에는 학습관이라고 하는, 도서실 겸 열람실이 전국 곳곳에 있습니다. 그곳 학생들 나름대로 스터디를 조직해서 공부합니다. 때로는 교수님들의 강의를 직접 듣습니다. 한 학기에 몇 시간씩 출석해서 강의를 듣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럴 땐 일반대학생처럼 되지요.

방통대에도 일반 대학처럼 갖가지 동아리들이 있고, 그 동아리들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도 있습니다. 사진, 연극, 종교 등등 다양합니다. 이번 달에는 마라톤 동호회도 생깁니다.

제가 속한 과에는 외국인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이분은 모 여대에도 강의를 나가시는데,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열심히 참여하는 이곳의 강의를 더 좋아합니다. 음식 문제로 속앓이를 자주 하는데, 가끔 그분과 점심을 같이할 때는 맵고 짠 한국 음식을 비켜난(?) 음식을 메뉴로 선택합니다.

▲ 학생 서비스 센타. '토요민원 상황실'이라는 문구가 직장인들을 위한 대학의 특성을 말해 준다.
ⓒ 박태신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 직장인들을 배려한 점들이 많습니다. 등록금도 그리 비싸지 않고,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고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며, 직장 때문에 '출석수업'을 듣지 못하면 시험으로 대체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이곳의 '학생서비스센터'는 아무래도 다른 대학의 학생서비스센터와 성격이 좀 다를 것입니다. 이 안에 들어가면 헤드폰 겸 마이크를 머리에 쓴 여직원들이 전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안내를 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방통대 건너편에 있는 소방서. '9'자의 머릿부분을 닮은 창이 시원스레 보인다.
ⓒ 박태신
대학의 특성상, 도서관은 노는 날이 없고, 학생 식당도 명절 빼고는 쉬는 날이 없습니다. 방통대 식당은 2000원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저는 저만의 공간으로 가서 산책을 합니다. 좁은 캠퍼스 안에서 말입니다.

방통대는 일찌감치 11월이면 내년도 학생을 모집합니다. 벌써 그 광고가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성상 만학을 꿈꾸는 사람이나 주부를, 그러니까 우리 학교 학생을 모델로 삼습니다.

그러나 방통대는 만만치 않은 학업량을 자랑합니다. 4년 만에 방통대를 졸업하는 사람하고는 독하다고 친구 삼지 말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삶의 보람을 학업을 통해서 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학과를 졸업하면 다시 다른 과로 옮겨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실 배움은 끝이 없으니까요.

지금 이 글도 중앙도서관에서 씁니다. 이렇게 공부 안 하고 딴 짓(?) 하는 사람도 방통대는 포용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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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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