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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아들의 꼭 잡은 손.
ⓒ 김지영
그래도 '귀농일기'라는 단어를 쓰려면 한 십여 년 정도는 묵은 후에 시작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니겠냐는 선배의 조언이 진작부터 있었다. 당근 인터넷이든, 종이신문이든, 잡지든 간에 시골생활에 대한 애환들을 풀어쓰는 분들의 내공을 보노라면 역시 보통 세월은 지나간 후에라야 가능한 일인 것도 같았다.

시골로 내려온 지 한 달을 갓 넘긴 내가 감히 '귀농'을 입에 올리는 것이 혹여 장구한 세월을 먼저 살고 계시는 선배 귀농인들에 대한 예의도 예의려니와, 자칫 설익어서 떫거나 신 내 나는 풋과일을 사람들에게 내놓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운 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떫고 신 내 나고 어설픈 이야기일망정, 혹은 굉장히 우울한 현상이겠지만 귀농을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할 상황이 발생할망정,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는 있겠지 싶다. '이렇게 하면 귀농을 실패한다'는 전형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이런 사람은 귀농을 조심해라' 정도의 모범적인 사례가 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참을 더 고달파봐야 하는 시골생활이지만, 그 실패와 성공의 기로에 서기에는 아직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귀농을 2년여 준비하고, 실행하고, 마침내 귀농을 하고, 다가올 미래에 제대로 착근하기까지 그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나의 삶의 모습이 혹시라도 마음 한 자락에 '귀농에 대한 꿈과 희망'을 단단히 여미고 계시는 분들에게 도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굳이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이런 사람도 귀농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내가 귀농을 실행하기 전 대화를 나눈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피드백은 첫째 '부럽다', 둘째 '존경한다', 셋째 '그런데 나는 못하겠다'였다. 사람들의 반응이 첫째가 '부러움'이었던 걸로 보아 나의 '귀농일기'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듯싶다.

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가장 최상의 선한 의지로 취급하고 있음을 꿰뚫었다. 그런 이상, 그 선한 의지들이 실행에 옮겨지거나, 혹은 셋째 '나는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분들에 대한 대리만족을 제공하는데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나 역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아시다시피 귀농을 하는 것 자체가 인생을 바꾸는 일이다. 더군다나 귀농 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만도 크나큰 행복으로 여겨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복으로 알지 못하고 그보다 더한 행복을 찾아 나섰다. 이것에 대한 어리석음의 결과를 치환시킬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귀농을 결심하고 결행한 나의 미래에 대한 좋은 전망일 것이다.

내가 그런 어리석은 결심을 하고 나서 결행까지 가장 먼저 부딪쳐야 할 벽은 '아내'였다. 나는 도시에서 나서 자라고 결혼했으며, 시골이라고는 단 한 달도 머물러 본 일이 없었다. 이런 나와는 달리 아내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다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도회지로 나왔다. 아내는 그래도 방학 때면 착실히 부모님 댁에 내려가 농사일도 제법 돕기도 했다. 그런 착실한 여덟 남매의 막내딸이었던 아내는 그래서 더욱 질색할 일이기도 했다.

아내의 머리 속에는 '농촌은 지독한 몸 고생에 비례해 지독하게 돈은 벌리지 않는 지독한 곳'이란 생각이 남아 있었다. 아내는 내가 말하기 전까지 단 한 번이라도, 꿈에서라도 내가 시골로 내려가 살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시골에 대한 동경'만은 결코 꿈도 꾸지 않았던, 그야말로 전형적인 '강남 아줌마'였던 것이다.

'내가 찾아냈던 생각공동체 교육생태마을에 대한 이야기부터 먼저 할까?', '아이의 미래에 대한 좋은 교육의 본질을 따지고 들까?', '우리 가족의 현실과 진정한 행복에 대한 탐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먼저 시작할까?', 아니면, '가출 먼저 하고 시작해 볼까?' 등 아내에게 어떻게든 귀농 문제를 꺼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직접 말을 던지는 것보다 진심이 담긴 편지가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를 썼다. 2년 전의 일이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과 나,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선웅이를 안고 시작한 서울 살이가 어느덧 만으로 육년이 넘어가 버렸소. 그 육년이란 시간조차도 그냥 흘러가 주진 않았고, 많은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당신이 그 동안 남몰래 흘려보냈을 눈물과 한숨들을 기억한다오. 물론,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이 항상 있어 왔음을 또한 생각하오.

우리가 살을 섞고, 피를 나눈 가족으로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인생이 결코 많은 저축통장과 넓은 평수의 아파트만으로 재단되지 않는다면 행복했고, 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오. 내가 일시적으로 돈의 쪼들림과 생활의 궁핍함을 원망하고 한탄해 본적은 있었지만, 보다 더 큰 행복의 가치를 당신과 선웅이에게 두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소. 당신도 이 부분만큼은 잘 알고 있겠지만….

선웅이가 벌써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 버렸소. 참으로 기특하고 뿌듯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권에서 척박한 교육시스템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만큼은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다오. (중략) 교육의 문제는 선웅이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고 앞으로 펼쳐질 선웅이의 인생을 가늠할 만큼 절대적인 문제라는 거에 대해서 나는 지나온 나의 선험적 결과를 바탕으로 심각하게 생각한다오.

(중략) 과연 2004년 지금 사회는 변화하고 발전했지만 이곳 서울하고도 강남권 학교들의 혹은 도시학교들의 교육시스템은 얼마나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생각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오. 지금도 학생들은 성적으로 줄 세워지고, 학교 내든 외든 폭력 앞에 무기력해지고, 폭력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지고, 일부 자격이 없는 선생들의 횡포와 극성학부모들이 빚어내는 이기적인 그릇된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오.

선웅이가 바르게 자라고 착한 심성을 유지하고 잘하는 것을 개발하고 못하는 것을 수정하는 좋은 교육을 지금 현실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이 사회 시스템 속에서는 대단한 노력과 특별한 행동들이 수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오. 하여, 아직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공교육 시스템은 선웅이에게 전반적으로는 좋은 교육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오.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나는 선웅이가 공부를 잘하고, 서울대학을 들어가는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참된 사람의 가치를 알고 자신의 자아를 개발하고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의 의미를 알아 가는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게 바램이오. 그런 의미에서 선웅이에게 물질적으로 풍부한 삶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라오.

이제 우리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나는 당신이 익히 알다시피 좋은 학벌도, 좋은 재주도, 좋은 집안환경도 갖추질 못한 사람이었소. 지금 역시 그런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아니라오. 다만 더 많이 소비할 수 없는 경제적 상황을 이어가고 있고 더 많이 가질 수 없는 취약한 자본상태라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오.

우리는 매달 현금으로 기백만 원이 넘는 돈을 벌지만, 그 중 태반은 서울시 서초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금융비용으로 쓰이고 있고, 또 나머지는 더 많은 평수의 주택을 얻기 위해(그것이 편리함과 무시당하지 않는 위안을 주는 것 말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것 말고 정작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더 많은 최신식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쓰여지고 있는 현실이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루 중 세 식구 함께 호흡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서너 시간으로 줄여야 하고, 선웅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만화영화에 할애할 수밖에 없고, 주말에나 기껏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여가 시간들을 보내고, 서점에서 9000원짜리 책 한 권조차도 30분을 갈등하고 고민하며 구입해야 하는 등 많은 인내와 현실적인 어려움들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오.

나는 이 모든 것이 더 많은 소비만을 추구하게 하고 더 많은 편리함만을 요구하는 도시적 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오. 이 건조하고 삭막한 도시는 끊임없는 욕심을 가져야 하고,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경제만으로 판단해야 하고, 이 도시에서 인정 해주는 학벌과 재산과 극한 경쟁에서 인정사정 없는 우위를 학보한 사람만이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오.

(중략) 처음 서울에 올라와 내가 가졌던 꿈은 우리 세 식구 마음 편하게 부대끼고 누워 잘 수 있는 전세 칸 마련이었소. 하지만 그것을 이루고 나자 집을 가지고 싶고 집을 가지자 이제 살고 있는 집보다 더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그러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원초적 욕심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소.

우리가 반 농담으로 늙어 시골 가서 살자고 말하던 것이 기억나오? 나는 그 말을 진지하게 했었고 당신 역시 그저 하는 소리만은 아니었을 것이오. 지금 우리가 소비적인 삶을 위해 지불해야할 인생의 가치들을 생각하면 시기는 가능한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오. 시골에서의 삶은 지금과 같은 많은 돈을 벌게 하진 않지만 적어도 당신이나 내가 포기해야하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을 되돌려주긴 할 거라는 결론이오.

물론, 편리함을 포기하는 이상 육체적 노동과 삶의 불편함 들이 당장 앞서겠지만 조금만 욕심을 포기하고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오히려 인생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라오. 시골에서의 삶을 이상향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소. 그곳에도 예측 할 수 없는 어려움들과 불편함들이 불거져 나오겠지만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긍정성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이오.

여보! 솔직히 지금 내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곳 직장이란 곳도 그리 안심할 상황은 아니오. (중략) 도시의 샐러리맨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비루한 상황들을 십분 감안한다 하여도 남은 내 인생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조금 더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 평안하게 대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오.

조금만 욕심을 버리고 살 수 있다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소. 같은 노동력으로 비록 얻을 수 있는 재물은 적어도 편리함을 쫓지 않고, 불필요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면 시골에서의 생활도 부족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오. 다만 우리 세 식구의 남은 인생을 가늠할 만큼 중요한 결정들이니 만큼 신중한 접근과 판단이 필요는 하겠지만, 당신과 원칙적인 공유가 필요할 거라는 판단에 이 글을 쓴다오.

선웅이의 인생을 위해 당신과 나의 인생을 위해…
그리고,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오.

2004년 12월

지극히 사적인 편지이기 때문에 관계자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거친 표현들이 보일 것이다. 아내에게 절박한 심정을 호소하기 위한 약간은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치부하시고 이해를 바란다.

하여간 이 편지는 작성한 날 아내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약간의 두려움과 당황함이 섞여 내게 '교육생태 마을'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다시 읽어보니 상당히 어색한 문장들이 더러 섞여 있지만, 내가 이것을 그래도 끝까지 간직해야 했던 이유는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장이 바로 상기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문장의 유려함을 떠나 말보다는 글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때가 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이 많은 사이일수록 더욱 그럴 수 있는 확률은 많다. 아내는 지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음으로부터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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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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