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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진부면 일대 가오교. 끊어진 다리가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평창군 진부면 일대 가오교. 끊어진 다리가 복구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다. ⓒ 생태지평
우리나라에도 할리우드 영화인 <우주전쟁>과 <화성침공>에서나 나올 법한 끔찍한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70년 살아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는 주민의 말처럼 7월의 집중호우가 지나간 자리는 마치 괴생물체가 지구를 침공한 영화의 한 장면인 듯, 혹은 전쟁터가 강원도로 옮겨진 듯한 착각이 들만큼 심하게 부서지고 파괴되어 있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어 '특별재난지역'으로 분류된 강원도. 하지만 주민들은 복구작업을 진행할 겨를도 없이 8월 하순에 닥칠지도 모르는 집중호우와 내년에 또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물난리 대책마련으로 고심하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 강원도 마을을 쓸어버리다

평창군 거문리 일대는 고랭지 밭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와 호우로 인공 구조물이 가로막았던 하천은 예전 물길로 돌아갔다.
평창군 거문리 일대는 고랭지 밭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와 호우로 인공 구조물이 가로막았던 하천은 예전 물길로 돌아갔다. ⓒ 생태지평
영동고속도로 아래에 자리한 평창군 속사면 마을. 높은 교각과 작은 하천으로 배수가 제대로 이루어지 못해 가옥이 모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다.
영동고속도로 아래에 자리한 평창군 속사면 마을. 높은 교각과 작은 하천으로 배수가 제대로 이루어지 못해 가옥이 모두 잠기는 큰 피해를 입었다. ⓒ 생태지평
강원도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평창·인제·정선 일대에 도착하니 마치 지진이 일어난 곳처럼 도로가 솟아오르거나 붕괴되어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들은 무너져 내려 속살을 모두 그대로 드러냈고 쓸려내려온 토석과 간벌재, 쓰레기는 산 아래 마을과 밭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의 특성상 눈사태라면 좀 더 쉽게 대처가 가능했겠지만, 낯선 7월의 물난리에는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

강원도의 총면적의 90% 이상은 해발 100m 이상의 산야 및 고산지대. 이번 수해피해 지역 대부분도 주민 거주지와 농지였다. 한여름 국민들이 먹는 채소의 73%를 조달하는 강원도 고랭지 밭이 주민들의 주소득원이고, 주민들 상당수가 밭 가까이 있는 산간 계곡에서 마을을 형성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번 수해에서 흘러내려온 토석과 나무들은 하천 콘크리트 다리 교각에 걸려 거대한 댐을 형성했다. 하류로 흐르지 못한 물은 하천 주변으로 범람하거나 하천 폭을 넓혀 주변 밭과 마을·주민·가축들을 모두 쓸려내렸다.

게다가 고랭지 농업을 위해 객토를 산에서 끌어오면서 지력이 약해진 상태. 간벌목과 뿌리째 뽑힌 나무들은 물론 돌덩어리들까지 같이 쓸려 내려오면서 마을이 덮여버린 것이다.

미사일 폭격을 당한 듯한 평창군 속사리·거문리 일대에는 거대한 물길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물길을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하천을 가로질러 공사를 진행한 지역이었다. 하천 폭을 좁히고 인공재방을 높이 쌓아 빗물의 유속을 빠르게 변하자 수압을 견디지 못한 다리가 떠내려가거나, 도로가 붕괴된 것이다.

컨테이너 건물에 머물며 수해복구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수재민들, 어른들은 살아남은 농작물이라도 일구기 위해 밭으로 가고, 낮에는 아이들만 남겨진다.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수재민들, 어른들은 살아남은 농작물이라도 일구기 위해 밭으로 가고, 낮에는 아이들만 남겨진다. ⓒ 생태지평
평창군 재해복구상황실에서 만난 주민은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자원봉사자가 하루에 수천 명까지도 강원도를 찾아왔는데,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인 휴가철과 함께 자원봉사자 손길도 줄어서 복구 일을 도와줄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식사를 제공하던 모 기관마저도 철수하고 나면 이제 어렵게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의 식사나 잠자리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창에서 인제로 넘어가 가리산리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마을 회관이나 학교, 아니면 임시로 마련된 컨테이너 건물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나마 낮에는 남은 밭이라도 살리려고 땡볕아래서 농작물을 돌보며 수해복구를 하고, 저녁에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머물면서 턱없이 부족한 구호물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한 주민은 "구호품은 턱없이 부족한 데다가 그나마 지원되는 구호품도 라면이 대부분이고, 이불·옷·주방기구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이 없어 매우 어렵다"며 "고향을 지키려고 다시 내려왔는데, 정부에서는 이재민들에게 턱없이 낮은 이주비용만 제시하고 정치인들은 얼굴만 내밀고 사라져버린다"며 허탈한 한숨만 내쉬었다.

이틀 간격으로 줄초상을 치르고 있는 덕적리.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지진 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눈 앞에 바위들과 나무들이 물줄기를 타고 쏟아져내려와 산으로 도망쳤다는 주민들과 눈앞에서 남편을 잃은 어르신의 이야기는 매우 안타까웠다.

가루처럼 부서진 아스팔트... 한계령은 건널 수 없었다

집 뒤쪽에서 흘러내린 산사태로 반쪽만 남은 민가의 처참한 모습.
집 뒤쪽에서 흘러내린 산사태로 반쪽만 남은 민가의 처참한 모습. ⓒ 생태지평
이런 산사태를 경험한 주민들은 집을 잃은 슬픔보다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더욱 크다.

정부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토대로 주민 보상대책을 발표했는데, 농경지 복구비용은 평당 2천원선에 불과하며, 경운기·이양기 등 농기계는 구입시 정부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이유로 중앙정부 지원 대상에서 아예 제외되어 있다. 이재민 응급구호비는 하루 5천원으로 한 끼 식사정도밖에 해결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주택이 전부 파손된 경우 1400만원, 반파의 경우 700만원이 나온다. 사망·실종자 가족에게는 2천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된다. 하지만 별다른 대책 없어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주민들의 삶을 턱없이 부족한 이주비용이 채워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올해부터는 재난 피해 수해보상 절차가 직접 재난피해신고서를 작성하여 시·군에 제출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인 시골에서는 서류신고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평창에서 인제를 지나 호우로 도로가 끊겼다는 한계령 44번국도 앞 '위험' 표지판 앞에서 멈춰섰다.

통제선 앞에서 여러 가지 고민이 교차했지만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아스팔트가 모두 쓸려내려가 울퉁불퉁한 돌길만 남은 국도를 운전해가는 내내 낙석과 쓰러진 전신주, 떠내려온 나무들이 덮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진땀이 났다.

결국 몇km 가지 못하고 운전을 멈췄다. 아스팔트 도로가 계곡 아래로 가루처럼 부서져 떨어져나갔고.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 패인 것 같은 정말 커다란 구멍만 남아 있었다. 산길을 통해 도보로 넘어가 보았지만 또다시 마주친 운석 구멍 앞에서 한계령을 넘어보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복구인가

한계령 44번 국도는 마치 미사일 폭격을 맞은 듯 도로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한계령 44번 국도는 마치 미사일 폭격을 맞은 듯 도로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 생태지평
16km에 달하는 한계천 주변에 난립해 있던 위락시설들은 집중호우시 피해를 더욱 증가시킨다.
16km에 달하는 한계천 주변에 난립해 있던 위락시설들은 집중호우시 피해를 더욱 증가시킨다. ⓒ 생태지평
이번 집중호우로 강원도는 8240ha가 물에 잠기거나 유실되었고 그 복구비용도 수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매년 반복되는 물난리는 단편적인 구호활동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하청업체들만 신이 나서 일하는 복구사업, 도로건설으로도 안 된다. 국민들에게 수조원에 달하는 복구비용을 손 벌리는 것도 해결책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는 기후변화와 기상이변으로 인해 가뭄과 홍수로 사람이 죽어가고, 우리나라의 집중호우도 매년 같은 피해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고 산을 파헤쳐 인공구조물들을 마구 세우고, 인공재방과 대형댐 속에 자연을 가두려고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재해'라는 말이 인간사회에 대한 피해와 현황조사에만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미안함이 든다. 그동안 자연이 입은 피해와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고, 인간의 관점만이 존재한 것은 아닐까.

과연 이번 피해로 생겨난 도로들을 똑같이 복구하고, 하천가에 있는 펜션같은 위락시설을 그대로 복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복구사업인지 의문스럽다.

다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에 대해 자연하천을 확장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불필요한 대형댐 논란보다는 수해피해에 대한 자료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위의 글은 생태지평 이승화 연구원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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